




뉴스에서 US 스틸 매각설을 접하고 나니 문득 예전에 뒤적여 본 모건 관련 자료가 생각나서 옥탑방에 올라갔다가, 마침 책더미에서 <청년 고리끼>(필리아 홀츠만 지음, 이강은 옮김, 푸른산, 1989)가 눈에 띄기에 그것까지 꺼내서 내려왔다. 지난 여름 물난리에 책더미를 크게 한 번 뒤집어 엎었더니 평소 안 보이던 책도 눈에 보인다.(근데 <규합총서>는 왜...)
<청년 고리끼>는 1980년대의 전형적인 사회과학 출판사 책이다. 나귀님은 이걸 '이론과실천 계열 디자인'이라고 분류하는데,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론과실천, 이성과현실, 동녘/친구 같은 예전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디자인이 어쩐지 유사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종의 계열사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외주 디자이너가 똑같았을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책을 뒤적이다 보니 역시나 예전 사회과학 책답게 역자 후기도 없고, 따라서 저자나 원제에 대한 정보도 없기에 뒤늦게야 구글링 끝에 기본적인 서지사항(The Young Maxim Gorky 1868-1902 by Filia Holtz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48)을 알아냈다. 저자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학자라지만, 옛날 책이다 보니 지금은 거의 잊힌 듯하다.
지난번 체홉에 대한 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최근 들어 고리키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원인은 바로 단첸코의 회고록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전부터 이 작가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물론이고 전기까지도 꾸준히 구입해 왔다. 한때나마 <어머니>가 대학생의 필독서로 여겨진 까닭인지, 다른 작품들도 우후죽순 격으로 잔뜩 나와서 헌책방에 흔히 널린 까닭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지난번 체홉을 읽었을 때처럼 고리키 관련서를 싹 모아서 전기부터 장편과 단편과 에세이와 회고록까지 독파해 볼까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하다 보니 이제 겨우 전기와 단편집 몇 권을 한 자리에 모았을 뿐이다. 그 사이에 단편집 몇 가지도 새로 나온 모양이니, 체홉 때처럼 겹치는 작품이 있는지 비교 분류하는 것부터 만만찮은 일이 되겠다.
고리키의 단편 중에서는 황장엽이 회고록에서 인용했던 "매의 노래"가 기억나고, 창비의 러시아 단편집에서 처음 읽은 "남자 스물여섯과 여자 하나"도 기억난다. 특히 후자는 뭔가 좀 기묘한 내용이기 때문에 더욱 인상에 깊이 남았는데, 필리아 홀츠만의 전기에 따르면 고리키가 젊은 시절 어느 빵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삼았다고 한다.
이 단편에서는 빵공장의 허름한 지하 작업장에서 싸구려 과자를 만드는 남자 스물여섯 명이 등장한다. 다른 노동자들의 외면과 경멸 속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까닭에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그들이었지만, 매일 한 번씩 그곳에 찾아와 창문 너머로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과자를 하나씩 얻어 먹는 발랄한 재봉사 아가씨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급기야 남자들은 그녀에게 단순한 연모를 넘어서 우상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녀에게 따끈한 크렌젤리를 대접하는 것을 의무처럼 여겼고, 우리에게는 [그 과자가] 우상에게 바치는 매일매일의 제물과도 같은 어떤 것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거의 거룩한 의식처럼 되었고, 날이 갈수록 우리를 그녀에게 더욱더 밀착되게 했다."(134쪽)
그런데 다른 작업장에 새로 온 제빵사가 '어떤 여자든 금방 유혹할 수 있다'고 자랑하자, 불쾌해진 지하 작업장의 남자들은 '우리 아가씨는 못 건드릴 걸'하고 장담하고, 급기야 바람둥이가 시한 내에 그녀를 유혹할 수 있을지를 놓고 내기한다. 불안과 초조 속에 기다리던 스물여섯 명은 자기네 우상이 바람둥이와 밀회하고 걸어나오는 광경에 그만 눈이 뒤집힌다.
분노한 남자들은 지하 작업장에서 뛰쳐나와 아가씨를 에워싸고 그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쌍욕을 퍼붓는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아무 말 못하던 그녀였지만, 남자 중 하나가 손을 뻗자 격분해서 뿌리치며 '더럽고 천한 것들'이라고 불쾌와 경멸을 드러낸다. 아가씨의 당당한 태도에 남자들은 비로소 자기 신세를 자각한 듯 쓸쓸히 지하 작업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상에 대한 환멸과 현타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씁쓸한 편인데, 어찌 보면 지난번 카리나 연애 논란 당시 팬들의 반응도 이 스물여섯 명의 남자와 유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일인데도 팬들은 분노하며 사과를 요구했고, 결국 당사자가 결별과 사과까지 내놓고 나서야 성난 팬심이 잠잠해졌다니 말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팬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쌍방 소통이 원활한 까닭인지 그 파급력도 훨씬 커진 듯하다. 일각에서는 라이브라는 명목으로 사생활을 일부 공개함으로써 마치 유사 연애의 느낌을 강조하는 행태가 문제라고도 지적하니, 그 모두의 배후에는 결국 상업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해도 무관하겠다.
지난번 김호중 음주 운전 논란에서도 연예인의 위법 행위조차 두둔하는 비뚤어진 팬심을 향한 비판이 많았는데, 카리나 연애 논란은 바로 그런 무조건적 애정이 여차 하면 무차별적 분노로 변모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는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나귀님 입장에선 영화 <그녀>에서처럼 일대다 소통이 일대일 소통으로 오인되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연예인의 경력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못하니, 언젠가는 인기도 시들고 관심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보이그룹 멤버도 지금은 처량한 노총각 신세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던데, 한번은 그 어머니가 '예전에 집 앞에서 기다리던 그 많은 아가씨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느냐'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한때 '우리 오빠'의 연애와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우기던 팬들도 지금쯤은 대부분 가정을 꾸렸을 법하니, 이쯤 되면 시누이의 입장에서 제발 누구라도 '우리 오빠' 좀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태세가 역전되지 않았을까. 물론 팬들이 호시탐탐 지켜보는 중에도 혼전 임신 '사고'로 은퇴하는 아이돌도 줄곧 있었으니, 결국 할 사람은 알아서 하는 모양이지만.
인생 전체를 살펴보면 연애나 결혼이나 출산 같은 단계도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인데, 연예인의 경우에는 이를 애써 은폐해야 한다니 이상하다. 조용필의 첫 결혼이 비밀리에 거행되어 뒤늦게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일을 기억하는 나귀님으로서는, 지금처럼 남녀관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세상에도 연예인만큼은 예외로 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에는 열성 팬들의 행태가 문자 그대로의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듯하니, 급기야 김호중 사건에서처럼 팬심이 '신앙'의 단계로 고양되기까지 하는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최근 깨닫게 된 정의에 따르면 '팬'은 사실상 '신자'나 다름없어야 한다니까, 그런 맥락에서 나귀님 같은 사람은 평생 그 누구의 팬도 될 수 없다고 봐야 될 듯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말하는 우상은 그리스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쾌활한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네팔의 쿠마리처럼 음울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지 않다. 그 전통에서는 어린 소녀를 눈 셋 달린 여신의 현현으로 간주해 숭배하다가 월경이 시작되면 신성이 사라졌다며 내치는데, 문제의 소녀는 이후 불길하다 간주되어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배척당하며 산다.
마치 쿠마리 전설을 각색한 만화 <3X3아이>처럼 지나치게 잔인한 비유가 아닌가 싶지만, 아이돌 범람 시대에 7년 계약을 다 채우지 못하는 팀들이 즐비한 상황에서는 제법 의미심장해 보인다. 하긴 늙고 초라한 우상을 섬기는 신자는 없을 터이니, 어쩌면 '우상'이라는 이름 자체에서부터 젊음이 전제되어 있는 셈이고, 늙음이 시작되면서 퇴출되는 것은 아니려나.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징이자 어떤 면에서는 특권인 까닭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어차피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하고, 누가 하라고 해도 못하게 마련이니까. 그 시기를 넘어서도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 늙어가는 보기 드문 연예인과 팬이라면, 이미 단순한 팬심을 넘어서서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법하다.
우상의 몰락은 씁쓸한 일이다. 물론 연예인 걱정이 제일 부질없다지만, 늙어서라도 활동하면 다행일 수 있다. 20세기에 활동한 아이돌 가운데 큰 사건사고 없이 연애나 육아 등으로 방송에서 사생활을 판매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폭력이나 음주운전이나 도박이나 마약 같은 범죄에 휘말린 경우는 물론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니 고리키의 소설에서 우상처럼 숭배했던 여자에게 실망을 느끼고 커다란 분노를 표현했던, 하지만 상대방의 매몰찬 태도에 자신들은 그간 그녀의 안중에도 없었음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쓸쓸하게 지하로 숨어들었던 스물여섯 명의 남자들처럼, 어쩌면 현재 아이돌 산업을 소비하는 팬들도 그런 실망과 환멸의 가능성을 줄곧 안고 살아가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군통령 카리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라도 했지, 대통령 윤석열은 도대체 무엇을 주었기에 구속 영장 발부에 지지자들이 법원 난입까지 불사하며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카리나는 사과라도 했지만, 윤석열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버틸수록 팬심이 비등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이 시대의 진정한 아이돌은 카리나가 아니라 윤석열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