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사망 소식과 대한극장의 폐관 소식을 나란히 접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일단 오스터부터 정리해 보자. 어떤 면에서는 차일피일 하던 숙제 검사를 갑자기 받는 느낌인데, 일전에 안방 작은 책꽂이에 줄줄이 꽂혀 있던 그의 책들을 모두 꺼내 마루로 내놓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다만 놓고 읽지 않은 채로 오래 방치하다 보니 차라리 다른 책을 꽂을 자리나 만들자 싶은 생각에서였고, 그 와중에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해서 후자부터 먼저 읽으려다가 몇 가지를 메모해 두었던 것이다.


작가 경력 초기에 대한 회고록인 <빵굽는 타자기>를 뒤적이다 보니 20대와 30대에 하는 일마다 죽쑤는 바람에 좌절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논란의 작가 저지 코진스키의 원고 교정을 도우면서 느낀 심정을 회고한 대목도 있었다. 내친 김에 대담집인 <글쓰기를 말하다>까지 뒤적이다 보니, 컬럼비아 대학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도 하에 석사 과정을 밟던 시절에 그곳을 방문한 프랑스 작가 장 주네의 연설을 통역했고, 훗날 이 일에 대한 사이드의 잘못된 회고 때문에 억울한 오해를 받았다고 토로한다.


우선 오스터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의 연설 통역은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지만,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수록된 에세이 "장 주네에 대하여"에서 이 프랑스 작가가 미국 방문 당시 점잖은 말투로 했던 연설을 자기 제자가 육두문자까지 섞어 가며 저속하게 번역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훗날 오스터가 이 글을 접하고는 놀랍고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 사이드의 저서 편집자에게 항의하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알잖아요. 에드워드가 매사에 잘못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꽤 높다는 거."


나귀님으로선 오래 전부터 저 유명한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어 왔는데, 오스터의 증언을 듣고 보니 그가 만났던 또 다른 기인 저지 코진스키와 에드워드 사이드가 결국 비슷한 심성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즉 자기가 가진 것을 실제보다 더 과장하는 버릇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남의 기분이며 심지어 진실 여부까지도 딱히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에고가 강한 사람들인 셈이고,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이드에 대한 비판은 중동 전문가인 버나드 루이스도 이미 내놓은 바 있는데, 쉽게 말해 본인이 팔레스타인 출신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중동학계 전체를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처럼 매도했다는 것이다. 즉 '오리엔탈리스트'라는 용어 자체는 문자 그대로 '동양학자'라는 뜻에 불과했건만, 마치 동양학/동양학자/동양주의 자체가 인종차별적이고 문화제국주의적인 것처럼 대중을 오도했다는 것이다. 당장 사이드의 글을 읽어봐도 그의 '오리엔탈리즘' 개념이 딱히 명료하지 않고 모호한 이유도 그래서이다.


저지 코진스키도 비슷한 맥락인데, 폴란드에서의 유년기에 갖가지 폭력과 참상을 목격하고 미국으로 이민하여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는 본인의 주장도 나중에 가서는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비판을 받았고, <색칠 당한 새>와 <챈스 박사> 같은 대표작들 역시 외부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소설의 표절이거나 대리 저술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폴 오스터의 회고대로라면 거짓말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그 거짓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까지도 즐겼던 그 인물의 최후가 자살이었다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오스터의 어떤 책을 보니 우연의 일치, 또는 믿기 힘든 예화의 사례를 여럿 적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매료나 감탄이 그의 작품 세계 전반과 적극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 여부는 나귀님도 잘 모르겠다.(왜냐하면 아직 그의 책을 다 읽은 것이 아니므로). 하지만 흔히 접할 수 없는 기이한 심성의 소유자들까지도 그런 불가사의한 힘의 사례에 속한다고 가정하면, 사이드와 코진스키에 대한 일화가 오스터의 회고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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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그린비에서 나온 마르셀 모스 전기를 재정가로 무려 60%나 할인 판매하기에 깜짝 놀라 구매하면서, 혹시 같은 시리즈에 비슷한 분량 및 가격인 데리다 전기도 결국 비슷한 운명이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재정가 도서 코너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비슷하게 할인 판매하기에 원래 정가 48,000원에 재정가 18,000원에 구입했다.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지만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에 얼른 구입했던 독자라면 상당히 불쾌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 지난번 맑스와 톨킨의 책값 종말 전쟁에서 언급한 것처럼 애초부터 살 놈만 사라는 식으로 가격을 확 높여버리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데리다 정도라면 나귀님처럼 호기심에 한 번 사볼 만한 평범한 독자도 적지 않을 테니.


원래 정가가 좀 과도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품게 되는 까닭은 모스 전기도 그렇고 데리다 전기도 글자가 크고 여백이 많아서 비교적 성글게 조판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리다 전기는 본문이 23행인데, 어제 뒤적인 <특집, 한창기>는 무려 32행이다! 무려 1,000쪽이 넘는 전자를 후자처럼 조판했었다면, 현재 아예 누락된 색인까지 만들어 넣어도 700쪽 내외이지 않았을까.


데리다라고 하면 프랑스 철학자로서 이름은 유명하지만 저작은 난해하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생각해 보니 나귀님도 그간 이것저것 사다 놓은 것은 많아도 완독한 것은 얼마 되지 않고, 그나마도 맥락 없이 읽은 까닭에 제대로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는 <그라마톨로지>를 비롯한 주요 번역서가 출간 이후 줄곧 오역 논란에 휘말렸다는 점도 선뜻 읽기 꺼려지는 이유다.


이 철학자에 대한 전기적인 차원에서의 관심은 지난번에 구입한 '하룻밤의 지식여행' 가운데 한 권인 <데리다>의 도입부를 보면서부터 생겨난 셈인데, 아마도 낭트 대학에서 리쾨르 후임으로 교수를 선발할 때에 지원했다가 무례하고 불쾌한 대접을 받았던 일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프랑수아 도스의 리쾨르 평전에서도 읽은 것 같은데 또 까먹었다!)


이번에 구입한 데리다 전기는 비교적 방대한 내용 속에서 해당 사건을 비롯해서 데리다가 겪은 갖가지 공적이고 사적인 논란, 저술 과정, 교우 및 반목 관계 등의 행적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종종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보니 구입 직후에 대강 훑어보다가 여기저기 나중에 다시 보려고 연필로 표시해 둔 대목이 적지 않다.(예를 들어 체코에서의 "카프카 체험" 같은 것).


다만 생애 서술에 집중한 까닭인지 핵심 사상에 대한 설명 면에서는 살짝 미진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무조건적 환대"의 개념처럼 나귀님이 최근에야 주목하게 된 데리다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째서인지 자세한 언급이 없었다.(물론 그의 옛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사람이 이 개념을 "까는" 기고문에서 인용한 구절은 상당히 예리해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에 "피라미드"를 "파리미드"로 쓰는 등의 희한한 오기도 몇 가지 눈에 띄고, 칸트의 <학부들의 다툼>을 <능력들의 갈등>으로 오역한 부분도 있으니, 좀 더 섬세한 교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아울러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무려 1,000쪽이 넘는 책에 색인조차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고 말이다.


그나저나 처음에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몰랐다가, 구입 후에야 책날개의 약력을 살펴보다가 만화와 만화 비평 작업도 했다는 구절을 보고서 비로소 누구인지 깨달았다. 바로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를 만든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다른 번역서로도 검색해 보니 그의 이름은 "브누아 페터스"와 "베누아 페터즈"와 "보누아 페테르스"로 정말 제각각 표기되었다.


그중에서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는 "보누아 페테르스"라는 희한한 표기로만 검색되는데, 이건 책에 "브누아 페테르스"라고 제대로 나온 것을 굳이 "알라딘 단독"으로 잘못 입력해서 오타를 낸 것이다.(Yes24는 "브누아"라고 제대로 입력했다. 멍청한 알라딘!) 출판사마다 인명 표기가 제각각이더라도, 그 책들을 모두 받아 판매하는 서점에서는 좀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나귀님의 입장에서 브누아 페터스는 당연히(!)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의 저자로 가장 먼저 기억된다. 그중 <기울어진 아이>는 예전에 교보문고에서 내놓았던 그래픽노블 시리즈 가운데 한 권으로 나왔었는데 (그 시리즈에 포함된 다른 작품으로는 저 유명한 <잉칼>과 게이먼/맥킨 콤비의 <흑란>이 있다) 나중에 세미콜론에서 전12권으로 예정했다가 네 권만 내고 절판되었다.


역시나 교보문고에서 나온 <이미지, 모험을 떠나다>도 "어둠의 도시들"의 그림 작가와 공저한 만화 이론서이고, 특이하게도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대담집 <그림 그리는 사람>도 번역되어 있으니, 브누아 페터스는 정말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저술가인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절판과 재정가라는 가혹한 운명을 피해가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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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북펀드에서 <아틀라스 오브 뷰티>라는 책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미 출간된 모양이었다. 루마니아의 한 사진가가 10년 넘게 세계각국을 누비며 만난 50개국 여성 500명의 사진을 담았다는데, 미리보기로 살펴본 내용만 봐도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흑과 백, 선과 악, 정상과 병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것이 유행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굳이 강조하는 풍조가 자리잡은 듯한데, 이 책을 일별하다 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비례와 균형 같은 미학적 요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쉽게 말해 예쁜 것이 예쁜 것이고, 못난 것은 못난 것이다. 있을 데에 있는 것이 아름답고, 비뚤어지거나 빗나간 것은 추악하다. 세상만사가 후천적이고 인위적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과도하게 늘린 목과 입술 같은 예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인지하지 않나 싶다. 


<아틀라스 오브 뷰티>에 수록된 사진 속 여자들만 해도 하나같이 미인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그 이목구비의 자연스러움이다. 크기와 형태와 색깔과 배열은 제각각이지만 얼굴의 형태와 맞물려 섬세하고도 독특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원천일 것이다.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예전에 나왔던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의 전설적인 표지 사진이다. 발행인 한창기는 옛 그림 속 여성의 얼굴을 싣고 싶었다지만, 편집부에서는 복고라 오해받는 것을 우려해 "이목구비의 비례가 좋은" 젊은 여성의 얼굴 사진을 찍어 매호 표지에 실었다는 것이 편집장 설호정의 회고다.



>>> 그러나 '유명하지 않으면서 사진이 잘 받고, 샘이깊은물의 독자층에 걸맞은 지성을 갖춘 여성'을 찾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얼굴에 칼 댄'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여기저기서 노골화한 잡지였던 만큼 성형의 의혹이 제기되기만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지조차 않았으니 더더욱 지난한 과업이었다. 털어놓건대, 발행인을 비롯해 기자,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스쳐지나는 여자조차 무심히 보지 않는 버릇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설호정, "가정 잡지 또는 여성 잡지? 아니...", <특집 한창기>, 89쪽) <<< 



쉽게 말해 요즘 식으로 길거리 캐스팅까지 불사하면서 모델을 찾아냈다는 이야기인데, 일설에는 잡지가 나올 때마다 편집부에 해당 모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기업이며 개인의 연락이 빗발쳤다고 한다. 나중에 한 신문에서 조사해 보니 일부는 상업 광고에도 출연했지만 대부분은 일반인 신분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샘이 깊은 물>의 표지 사진을 보면, <아틀라스 오브 뷰티>와 유사하게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갖춘 여자들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다. 비록 수십 년 전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지금 와서도 딱히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세월조차 뛰어넘는 비례와 균형 같은 미적 가치 덕분일 것이다..


물론 어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했다는 말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살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고 싶은 뜻은 결코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당연하지 않은가? 그게 왜 이상하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오래 전부터 들었기에 해 보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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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메리와 메리>라는 것이 있기에 뭔가 싶어 살펴보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모녀의 공동 전기였다. 이미 따로따로 전기가 간행된 적도 있었고, 심지어 어머니의 중편 소설 두 편과 딸의 중편 소설 한 편을 엮어 만든 <메리/마리아/마틸다>라는 번역서도 나온 적 있었으므로, 공동 전기도 충분히 나올 만해 보인다.


일단 엄마 쪽 전기로는 <세상을 뒤바꾼 열정>이라고 제법 두꺼운 책이 나왔다가 절판되었는데, 지금 다시 알라딘에서 "울스턴크래프트"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살펴보니 부제인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턴 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에서 띄어쓰기를 잘못해서였다. 즉 알라딘에서는 "울스턴 크래프트"로 검색해야 나온다.


딸 쪽으로는 비록 본격적인 평전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프랑켄슈타인>의 배경과 집필에 관한 책으로 <괴물의 탄생>이란 것이 나와 있기에 사다 놓았는데 역시나 절판이다. 예전에 읽은 만화 <메리 고드윈>도 함께 다시 살펴보고 버리려고 나란히 놓아 두었는데,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는 공동 전기까지 읽고 나야만 처분이 가능하겠다.


<메리와 메리>의 도입부를 보면 엄마가 딸을 낳다 사망함으로써, 이후 딸이 평생 엄마의 그늘 아래에서 그 존재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듯한 서술이 등장한다. 이 전기에서도 그렇지만 남편/아빠인 윌리엄 고드윈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 지금은 일반화된 모양이기도 하다.(이 사람 저서인 <최초의 아나키스트>도 역시나 절판이다).


그런데 고드윈이 바람직한 남편/아빠가 아니었다 해서 욕을 먹는다면,[*] 메리 모녀의 행적 역시 딱히 더 칭찬받을 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양쪽 모두 유부남과 사귀고 사생아를 출산한 이력이 있으니, 제아무리 "사빠죄아"라 하더라도 이런 행적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사회 통념상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메리 셸리가 어렸을 때 고드윈을 찾아온 손님들은 저 유명한 메리의 딸 메리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는데, 그 묘사만 놓고 보면 마치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를 보고 감탄하던 사람들의 호들갑을 떠올리게 될 정도다.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딸도 엄마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셸리"라는 성은 훗날 딸 메리의 남편이 되는 유명한 시인에게서 유래한 것이니만큼, 공동 전기에서 "셸리는..." 운운 하는 대목을 접할 때마다 살짝 생소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득 예전에 사다 놓은 트렐로니의 회고록 <셸리와 바이런과 저자에 관한 기록>을 꺼내 보니, 메리를 처음 봤을 때에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 윌리엄 고드윈의 아내인 (여류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에 출산 도중 사망했는데, 이들 부부의 외동딸 메리는 시인 셸리와 결혼했다. 그리하여 내가 이야기하는 시기에 셸리 여사는 27세였다. 여류 작가로서 본인의 장점은 둘째 치고, 그토록 보기 드문 천재의 혈통만으로도 나로선 충분히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은 차분한 회색 눈이었다. 영국 여성의 평균 신장에는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지만, 매우 피부가 하얗고, 머리색이 옅었으며, 재치 있고, 사교적이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울적하기도 했다. 셸리와 마찬가지로 (비록 정도는 더 낮았지만) 그녀는 다양하고도 적절한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말들은 우리의 뛰어난 옛날 작가들의 저서에 정통한 데에서 나온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어나 외국어는 쓰지 않았다. 우리말을 그렇게 구사하는 능력이 내게 더욱 놀라웠던 까닭은, 사교계의 귀부인들이 사용하는 빈약한 어휘들과 대조적인 까닭이었다. 귀부인들의 어휘라야 말하기에 적절하다고 느껴지거나 간주되는 온갖 표현에다가 어설프고도 진부한 관용구를 다수 곁들일 뿐이었으니까. <<<



영국의 군인인 에드워드 존 트렐로니는 셸리 부부며 바이런과 그리 오래 교류하진 않았지만, 익사한 셸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한 것은 물론이고 사망한 바이런의 시신을 확인한 등의 인연으로 두 시인의 최후에 대한 증언을 남겨서 문학사에 덩달아 기록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메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증언이 제법 되는 듯하고...




[*]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편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아닐까. 마누라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끝까지 감싸주는 모습만 보면 세상 모든 여성이 그를 좋아해야 마땅할 것 같다. 심지어 장모의 비리에 대해서도 최대한 무마하려 노력했으니, 세상 모든 장모들은 물론이고 장인들(물론 의외로 일부일 수 있지만)이며 처가 식구들 역시 윤석열을 지지해야 옳을 것만 같은데, 왜 지지율은 항상 이렇게 낮은지...


[**] 엄마 메리의 저서는 <여권의 옹호>가 대표적이지만 <길 위의 편지>라는 여행기도 번역된 모양이다. 딸 메리의 소설은 <프랑켄슈타인> 외에도 <최후의 인간>이 번역되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의 효시로 여겨지는 작품이라는데 현재는 역시나 절판이다. 그 외에도 "수상쩍을 정도로 고딕에 진심인 출판사"인 고딕서가에서 나온 단편집에도 작품이 하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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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락의 에세이를 보니, 1970년대에 박정희가 외화 획득을 위해서 기생 관광을 활용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언급이 있다. 즉 화대를 1인당 60달러로 공식 책정하고, 관광 요정에 관대한 처우를 베풀었으며, 심지어 저축을 많이 한 기생들에게 퇴역식까지 열어주기도 하면서 성매매 산업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이때 최중락을 비롯한 경찰의 역할은 기생 관광의 질서 유지를 위해 여행사와 요정과 호텔 등의 관련자들이 화대 가운데 일부를 착취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서울의 관광 요정 11개소(교북동 풍림각, 종로 3가 대하와 청풍, 성북동 삼청각 등)에는 기생 수만 3000명에 달했다고 전한다.


급기야 기생의 친절 서비스와 위생 관리(성병 예방)를 위해서 현직 의사는 물론이고 <수사반장>의 주인공 최불암까지 동반해서 강연을 다닌 끝에, 책임자였던 최중락은 "관광 산업" 진흥 공로로 표창까지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광부와 간호사까지 수출할 만큼 가난했던 나라 시절의 서글픈 일화라고나 할까.


일본인의 한국 기생 관광은 실제로 과거에만 해도 종종 사회 문제로 지적된 바 있었다. 88년 올림픽 이전까지는 굳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자체가 드물었으니, 정부에서도 실상을 알면서도 묵인했을 법하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외교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거사다.


그러다가 경제 상황이 나아지며 해외 여행이 쉬워지자, 이제는 한국인도 동남아시아 등지로 성매매 목적의 관광을 다녀오는 모양이니, 역사란 결국 반복되고 악행은 다시 모방되나 싶은 느낌도 없지 않다. 따지고 보면 가라유키상의 해외 원정 성매매로 외화를 벌어들였던 일본이야말로 기생 관광의 원조니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어느 후보의 과거 발언 중에 육이오 당시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이 제자들을 성 상납에 동원했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되었다. 아마도 모윤숙 등이 조직한 낙랑 클럽이라는 것을 가리켜 한 말인 듯한데, 관련자들은 어디까지나 품위 있는 사교 클럽이었다고 주장하여 증언이 엇갈린다.


다만 교양 있는 여대생을 모아서 건전한 의미의 접대에 집중했다 하더라도, 피차 청춘 남녀들인데다가 전쟁 중이라서 생활이 궁핍했음을 감안하면, 단순한 사교적 만남 이상의 깊은 관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빨간 마후라>와 <마부>에 나온 영화배우 윤인자의 사례가 딱 그러했다.


말년의 회고록 <나는 대한의 꽃이었다>에서 밝혔듯이, 윤인자는 피난지 부산에서 해군 제독 손원일의 소개로 미 해군 장교 마이클 J. 루시(Micheal J. Luosey, 1912-1998)를 만났다. 이후 그녀는 손 제독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루시와 계속 교제하면서 한국군에 유리하게끔 일종의 로비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손원일의 부인 홍은혜가 모윤숙과 함께 낙랑 클럽의 핵심이고, 윤-루시 커플이 손-홍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음으로 미루어, 윤인자의 활동 역시 넓게 보면 낙랑 클럽과 연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접대에 동원된 사람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은 미군의 애인, 또는 현지처 노릇을 했던 셈이다.


물론 윤인자의 사례 하나만 가지고 낙랑 클럽 전체를 위안부나 양공주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단순히 "사교"나 "외교"나 "로비"라는 단어만으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는 더 깊은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 (아울러 국가 차원의 적극적 개입이) 있었음을 아주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전시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자면, 지금 와서 그들의 활동을 "성 상납"이나 "몸 로비"라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러워진다. 훗날 박정희의 기생 관광 묵인 및 활용이 부도덕하나 부득이했던 외화 벌이 수단이었던 것처럼, 낙랑 클럽의 활동 역시 당시의 맥락에서 상황을 참작할 여지가 있지는 않을까?


윤인자의 "로비" 상대였던 루시 대령은 훗날 "한국 해군의 은인"으로 추앙되어 2017년에 해군사관학교에 흉상이 놓였다. 반면 한때 이승만으로부터 "당신의 대한의 꽃"이라는 찬사를 얻었던 윤인자에 대해서는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루시가 은인이라고 치면, 윤인자는 뭐였다고 평가해야 맞을까?


이 대목에서 문득 (모파상의 "비곗덩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랍인 조르바>의 여관 주인 오르탕스가 생각난다. 프랑스인인 그녀는 젊은 시절 크레타를 위협하던 4개국 전함의 함장들과 번갈아 잠자리를 같이 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에게 피해가 없도록 나름의 로비 활동을 벌였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에게 말했어요. 그가 제일 용기가 있었거든요. 그의 수염을 만지면서 말했죠. '카나바로.' 그게 그의 이름이었죠. '나의 사랑하는 카나바로, 쾅! 쾅! 하지 말아요. 제발 쾅쾅! 하지 마세요.' 


내가 몇 번이나 크레타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줬는지 아세요? 얼마나 많은 대포들이 준비되었고, 그때마다 내가 '째독' 수염을 붙잡고 쾅쾅 하지 못하게 한 줄이나 아세요? 하지만 누가 내게 고마워나 하나요? 당신들은 훈장을 본 적이 있겠지만, 나는 본 적도..."


마담 오르탕스는 사람들의 배은망덕에 화가 나서 부드럽고 주름이 많은 조그만 주먹으로 식탁을 때렸다. 


(유재원 번역본, 78-79쪽)




크레타 출신도 아닌 외국인이 이웃들을 생각해 호의를 베푼 것은 갸륵한 일이었지만, 소설에서는 외국 전함이 떠난 뒤에 섬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가벼운 여자 취급을 받고 멸시당하며 살아갔다고 묘사된다. 어쩐지 그녀의 삶이야말로 앞에서 말한 여러 "그녀들"의 삶의 축소판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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