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전유성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보니, 예전에 사다 놓은 책들 중에 그의 인터뷰집도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원래 꽂아 두었던 옥탑방 계단 책장에는 없는 것 같았으니, 마루의 버릴 책더미에 섞여 들어갔는지 어쨌는지 몰라 차마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며칠 전 옥상 올라갔다 내려오며 살펴보니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이 책은 그의 인터뷰집도 아니고 무려 남이 그에 대해서 쓴 책이었다. 말하자면 "인물 평론"이라고나 할까. 제목부터 <전유성론>(신동호 지음, 형상, 1997)인데, 부제가 "디오게네스와의 희극적 만남"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대담집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터뷰가 전혀 들어 있지 않고, 그의 저서 위주로 참고하고 인용해서만 쓴 책이다.


"형상대중문화총서"의 제1권인 이 책의 뒷날개를 펼치면 전유성, 주철환, 이현세, 강우석에 관한 책 네 권이 한꺼번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1990년대 후반에 주목받은 대중 문화 인물에 대한 평론 시리즈라고 해야 맞을 듯한데, 심지어 알라딘에도 서지 정보가 등록되었지만 근간 예정되었던 김수현, 박중훈, 산울림에 관한 책은 결국 간행이 불발된 듯하다.

 

특정 코미디언에 대한 평론서라고 하니 그 출간 자체에서 의의를 찾을 수도 있어 보이지만, 사실 자료로서는 가치가 별로 없다고 봐야 할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내용을 발굴한 것도 아니고, 기존 저서를 활용했지만 정확한 출처 표시까지는 없고,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이력에 대한 서술도 없이 저자가 받은 인상만 나열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코미디언에 대한 평론서라면 선례도 없지는 않다. '코미디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이주일을 소재로 한 <삐딱한 광대>라는 책이 있기 때문인데, 신문 연예부 기자 둘이 공저해서 이주일의 등장이 당시의 사회에 던진 파장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특히 당시의 주요 신문 기사를 전재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지금 와서는 자료로서 오히려 유용해 보인다.


인기 연예인의 에세이나 자서전이야 예나 지금이나 흔한 편이지만, <삐딱한 광대>처럼 남이 써준 전기나 평론은 드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성격의 평론서라면 "최진실 신드롬"을 다룬 것과 드라마 <애인>을 다룬 것이 생각나는데, 양쪽 모두 가히 사회 현상이라고 일컬을 만큼의 인기와 영향이 있었던 사례이니 충분히 단행본 형식의 평론이 나오고도 남을 만했다.


이에 비하자면 전유성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일 수밖에 없으니, 최근 그의 부고 기사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했듯이 오랜 이력에도 불구하고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활동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책이 나온 당시에는 무대 위보다 오히려 밖에서의 활동으로 더 주목을 받으면서 명성이 오르면서 결국 재평가의 대상이 되었다고 봐야 할 법하다.


지금도 인기 좀 얻었다는 코미디언이라면 에세이를 한두 권 내기도 하는데, 전유성은 컴퓨터 입문기와 해외 여행기 등 다양한 주제로 저서를 펴내 주목을 받았고, 카페 운영 등의 사업도 병행하면서 뒤늦게야 그 팔방미인다운 역량이 주목받은 경우였다. 그의 대표 방송을 꼽아 보라면 대부분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처럼 무대 밖의 명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후배 홍윤화가 선배 김영철을 향해 '너는 이놈아 코미디언인데 남을 웃기지는 못하고 영어만 잘 한다니 말이 되니?' 하고 엄마 잔소리 버전으로 내놓았던 '디스'라든지, <무한도전> 시절 정형돈이 받았던 '웃기는 것 빼고 다 잘 하는 개그맨'이라는 평가는 사실 전유성에게도 비슷하게 적용가능해 보인다. 어찌 보면 한계이기도 했지만 특징이기도 했다. 


전유성이라면 '코미디언'과 구분되는 '개그맨' 1세대로 분류되고, 특히 그 명칭의 창안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나귀님 기억에는 1980년대에만 해도 전유성과 고영수 가운데 과연 누가 '개그맨'의 원조인지를 다루는 기사가 여러 건이었다. '개그맨'이란 명칭의 고안자는 전유성이지만, 방송에서 스스로를 '개그맨'으로 소개한 사람은 고영수라고 했었던 모양이다.


나귀님 생각에 '코미디언'과 '개그맨' 구분의 기준은 이른바 악극단 경력 유무가 아닐까 싶다. 과거의 코미디언은 악극단에서 활동하다가 방송국에 정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후에는 악극단 경력 없이 방송국에서 선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악극단 출신으로 방송국에서 포텐을 터트린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은 이 두 가지 흐름의 전환점에 해당한다.


물론 '개그맨'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콩글리시 논란이 줄곧 따라다녔으니, 대표적인 비판자가 번역가 안정효였다. <가짜영어사전>에서 '개그 콘서트'는 '구역질 공연'이라는 뜻일 뿐이라며 과격한 비판을 쏟아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심슨 가족>의 도입부도 '소파 개그'(couch gag)로 지칭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안정효 쪽에서 오해를 하지는 않았나 싶다.


역시나 '개그맨' 1세대로 꼽히는 고영수만 해도 뛰어난 언변으로 방송에만 나왔다 하면 무대를 쥐락펴락했었지만, 전유성은 항상 조연으로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다 마는 수준이었으니, 제아무리 배후의 기획자로 뛰어났다 하더라도 그의 현역 시절을 기억하는 나귀님으로서는 언제부턴가 '코미디의 대부'로 평가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또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훨씬 더 잘 나갔던 심형래나 임하룡 같은 주연급이 방송에서 모습을 감춘 뒤에도 전유성만큼은 꾸준히 등장했었으니 역전인 셈이다. 그 다음가는 '대선배'인 이경규만 해도 5인조 (김창준, 조정현, 김정렬, 이경규, 김보화) 중에서는 오히려 처지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전유성 장례식에서 '숭구리당당' 춤을 춘 김정렬이 누군지 모를 사람이 더 많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유성이라면 코미디보다는 오히려 책으로 더 성공한 코미디언인 동시에, 실제로도 책을 좋아한 것처럼 보인 코미디언이기도 했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독서에 관해 다루면서 (아마도 하하의 "오펜하이머" 독후감이 나온 회차가 아니었나 싶은데) 방송국 구내 서점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더니, 가장 많이 찍힌 사람이 바로 전유성이었다.


어쩌다 한 번 들른 것도 아니고 거의 매일같이,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 들러서 새로 나온 책을 뒤적이는 모습이 찍혔고, 서점 주인 말로도 단골 손님이라 했으니, 이래저래 남다른 사람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조동아리" 유튜브에 나온 코미디언 이홍렬의 증언에서도 책에 대한 전유성의 애정과 아이디어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나왔었다.


이홍렬이 후배들을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해볼까 고민하자, 전유성이 대뜸 '지금까지 코미디언이 쓴 책들만 한 자리에 모아 보라'고 제안했다는 거다. 이에 이홍렬이 무릎을 탁 치며 책을 수집하는 동시에, 그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남산시립도서관에 무작정 찾아가서 부탁했더니만, 결국 내부에 '코미디언 서가'라고 별도의 컬렉션을 만들어주기로 했다는 거다.


도서관 중에는 특정 주제나 인물에 관한 문고(컬렉션)를 별도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으니, 잘만 하면 '코미디언 서가'도 대중 문화 분야에서 특이한 기록물 보관소의 역할을 담당할 만하다. 물론 코미디언의 저서 대부분은 <전유성론>처럼 자료 가치가 미미할 수 있지만, 훗날 누군가가 한국의 코미디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려 하면 나름대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유튜브에서 해당 회차를 찾아보니, 이미 지난 여름에 '코미디언 서가'를 열었다고 한다. 남산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큐레이션 > 북큐레이션 > 코미디언 서가' 메뉴로 들어가 보니 김영철의 영어 교재며, '옥동자'의 요리책이며, 심지어 개그맨 출신 치과의사이며 사랑니 전문가인 김영삼의 <(쉽고 빠르고 안전한) 사랑니 발치>라는 전문서까지도 망라되어 있었다.


다만 그 숫자가 적어서 아직 100권이 못 되는 초라한 모습인 듯하고, 전유성의 책은 다 있지만 <전유성론>은 없으며, 그나마도 현역 코미디언 위주이다 보니 나귀님이 소장한 구봉서, 남보원, 이주일의 저서 같은 것은 없다. 지난번 유튜브를 보고서도 기증을 해 볼까 하다가 어디 연락해야 할지 몰라 포기했는데, 이번 기회에 도서관에 연락해 볼까 싶기도 하다.


물론 작년에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비매품 도서를 기증하려고 연락했더니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이어서 결국 헌책방에 처분하고 말았던 것을 기억하자면, 애초부터 남 좋은 일일 뿐인 기증 따위 생각하지 말고 제값에 매각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주일 책도 희귀본이지만 중고 가격이 몇만 원 수준인데, 생각이 있다면 연예인들이 그것 하나 못 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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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에 <티무르 승전기>라는 것이 있다기에 눌러 보니, 이전에 나온 김호동 교수의 <집사> 완역본에 이어서 나오는 몽골사 원전 번역서 가운데 하나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광고 문구를 대강 살펴보니 "완역, 축약본"이라는 표현이 나오기에 문득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완역이면 완역이고, 축약이면 축약이지, "완역, 축약본"은 도대체 뭣이냐 싶었던 거다.


"완역"은 문자 그대로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번역했다는 뜻이고, "축약"은 전체 내용 가운데 일부만 고르거나 압축했다는 뜻이니, 사실은 서로 모순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런데도 책 소개글에서는 스승 김호동이 "<집사> 완역, 축약본"인 <몽골 제국 연대기>를 내놓았고, 제자 이주연은 "<승전기> 완역, 축약본"인 <티무르 승전기>를 내놓았다고 적었다. 


<집사>는 김호동 교수가 무려 20년 넘게 걸려서 전5권으로 완역했고, 그 방대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 한 권짜리 <몽골 제국 연대기>이니, 결국 <승전기>와 <티무르 승전기>도 비슷한 관계라는 뜻인 듯하다. 하지만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승전기>의 완역본은 찾을 수 없었고, 이 작품의 번역서로는 이번에 간행이 예정된 축약본 <티무르 승전기>가 처음인 듯했다. 


뒤늦게야 책 소개글의 작은 글씨까지 다 읽어보니, <승전기>의 완역본은 아직까지 단행본으로 간행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사실은 이주연이 김호동의 지도로 쓴 박사 논문 자체가 <승전기>의 완역본이라고 한다. 즉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논문 형태로는 있으니까, 그 내용을 축약한 <티무르 승전기>를 간행하면서 굳이 "완역, 축약본"이라고 지칭한 듯하다.


하지만 "완역, 축약본"은 결국 "축약본"이지 "완역본"이 아니다. 따라서 "축약본"에 불과한 <몽골 제국 연대기>와 <티무르 승전기>를 굳이 "완역, 축약본"이라고, 또는 "교감, 완역, 축약 편집본"이라고 지칭하면 나귀님 같은 순진한 독자는 혼동만 겪을 뿐이다. 굳이 "완역"을 언급하고 싶었다면 역자 약력이나 일러두기 정도에서나 명시하고 넘어가도 그만 아닐까.


여기서 하나 의아한 점은 왜 <승전기>의 단행본 중 완역본보다 축약본이 더 먼저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의 완역 자체가 '사건'이다 보니, 박사 논문이 완성된 2020년에 이미 주요 언론에서 이주연을 인터뷰했고, 인터뷰 말미에 완역본이 그해 안으로 간행될 예정이라는 설명까지 있었는데, 어째서 5년이 지나서야 축약본 형태로만 먼저 나오게 된 걸까.


서울대 사이트에서 이주연의 박사 논문 "티무르朝 史書, 야즈디 撰 『勝戰記』(Ẓafar-nāma)의 譯註"를 다운로드해 읽어보니,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고충이 있겠거니 짐작할 수 있었다. 몽테뉴의 <수상록>처럼 수시로 시(詩) 인용문이 끼어드는 방식의 구성이다 보니,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시와 각종 미사여구를 제외한 사실 위주의 편역서라야 더 유용할 법하다.


해당 논문의 연구사에도 나왔듯이, 18세기에 나온 불역본이나 영역본이 완역까지는 아닌 발췌에 머물렀던 것도 충분한 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런 난점을 감안하면 축약본 <티무르 승전기>는 가치가 높아지는 반면, 완역본 <승전기>는 오히려 가치가 줄어드는 셈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껏 완역을 했더라도 실제로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은 축약본뿐이니까.


<집사>처럼 상업 출판사에서 나오지 못하더라도, <승전기> 정도면 한국연구재단 번역총서 같은 데에라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데,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완역은 했지만 완역본은 없는' 셈이 되어서 '홍철 없는 홍철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인터뷰에서 <승전기> 외에도 중앙아시아 역사서 원전 번역을 몇 가지 더 했다던데, 그건 또 어떻게 되는 걸까.


물론 <승전기>도 축약본을 보고 나서 완역본이 궁금한 독자라면 박사 논문을 공짜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이익일 수 있지만, 무려 11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논문을 뒤적이다 보면, 적어도 편집 면에서는 띄어쓰기 오류, 오타, 수정 실수, 용어 선정 등 아무래도 일반 단행본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점들이 여러 가지 눈에 띈다.


나귀님의 관심사와 연결된 오류를 하나 지적하자면, <승전기>의 유럽 최초 번역가인 프랑스 동양학자 들라크루아(François Pétis de la Croix)에 관한 오타이다. 논문에서는 "프랑소와 페티스 델라 크로와"(F. Pétis de la Croix)로 적고, 그의 자료를 "프랑소와 사본"(Manuscript Francais)(62쪽)이라 했는데, Francais가 아니라 François라고 써야 맞을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천일야화> 계열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천일일화>의 번역자로도 유명한데,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바 있다. 물론 갈랑이나 버턴의 방대한 <천일야화>에 비하자면 덜 유명한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 이야기는 훗날 오페라로 각색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니, 바로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원작인 "중국 공주 투란도트 이야기"이다.)


같은 페이지 각주 222번의 프랑스어 자료 제목에도 알파벳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오타가 있던데 (예를 들어 françcais, sièecle, Méediterranéee) 십중팔구 c와 e를 ç와 é와 è로 수정하라는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서 생긴 오류인 것으로 짐작된다.(예전에 여진어 연구서에서 "일말사전"을 "일-말사전"으로 고치려다 "일가운데점말사전"이 된 것이 생각난다).


아울러 본문 도입부에서 점성술에 의거한 천체의 변화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데, 여기서 몇몇 용어를 오늘날의 영어식 표기로 (예를 들어 "하우스"와 "쿼드런트 시스템"과 "홀사인 시스템"으로) 번역한 것은 영 어색하다. 어디까지나 현대식/영어식 표기에 불과한 그런 용어는 각주에나 참고용으로 적고, 차라리 신조어를 만들거나 음역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이걸 완역본으로 만든다고 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역주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것도 만만찮아 보이고, 수많은 페르시아어의 로마자 표기를 일일이 살펴보는 것도 역시나 만만찮아 보인다. 그러니 박사 논문을 뒤적인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완역본을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축약본이든 "완역, 축약본"이든 먼저 나와주는 편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은 "완역, 축약본"보다 "'몽골제국사 연구의 대칸'으로 불리는 김호동"이라는 구절도 낯간지럽고, "북펀드 굿즈"라며 선전하는 "<티무르 승전기> 수면안대"도 역시나 낯간지러워서 한 마디 꼬집어 줄까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인데, 박사 논문까지 뒤적이고 보니 새삼스레 번역자를 응원하고픈 마음이다. 물론 쓰다 보니 응원보다 '디스'가 더 많기는 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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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온 모양이다. 그의 에세이는 좋아해서 대부분 갖고 있지만 소설은 장편이건 단편이건 영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귀님인데, 제목이 특이해 보이기에 혹시나 지난번 단편집인가의 제목을 슬그머니 따라했던 것처럼 헤밍웨이나 뭐 비슷한 작가의 흉내인가 싶어 클릭해 보니, 오랜만에 나온 재즈 에세이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제목에서 가리키는 인물은 유명한 재즈 음반의 표지 그림을 담당했던 삽화가라는데, 표지를 확대해 보니 만화와 수채화를 섞은 듯한 그림체가 확실히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바로 구글링해 보니 찰리 파커와 레스터 영을 비롯해서 버브 음반 표지 여러 장이 나온다. 음악가 사진이나 기타 도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디자인이다 보니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달까.


그러고 보니 벌써 10여 년도 더 전의 일인데, 씨디 박스세트 붐이 일면서 재즈 분야에서도 블루노트를 시작으로 주요 음반사의 대표작을 20-30장씩 묶은 저렴한 박스세트가 여러 종 출시된 적이 있었다. 국내 제작의 한계로 슬리브 규격도 제멋대로이고 표지 그림의 화질도 떨어져서 영 조악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요 명반을 모았다는 점은 매력이었다.


그중 '재즈 트레인'이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온 박스 세트중에 버브 음반을 30종 모아 놓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찰리 파커와 레스터 영을 비롯해서 데이비드 스톤 마틴이 표지화를 맡은 음반도 여러 장 수록된 모양이다. 여전히 대중적이지는 않은 재즈 분야에서도 특히나 이례적인 음반 표지 디자이너의 이야기라니, 이래저래 특이한 책인 듯하다.


최근 가을이 되니 캐논볼 애덜리의 시꺼먼 앨범이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블루노트 박스 세트를 꺼내 완주하고, 지금은 또 다른 박스로 건너간 상태인데, 한동안 먼지 쌓여 있던 음반들을 꺼내 뒤적여 보니,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어도 그때 사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음반 가격도 대폭 오른 다음이니.


역시나 몇 년 전에 유명 재즈 음악가들의 음반을 다섯 장씩 엮어서 염가로 판매하던 세트도 있었는데, 앞서 말한 수십 장씩의 박스세트에는 들어 있지 않은 음반도 있어서 제법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음반 표지 재현의 측면에서는 거의 처참할 정도의 화질과 지질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다시 구하기도 힘드니 어쨌거나 그때 무리해서 짬짬이 구해 놓기 잘했다 싶다.


음반을 많이 가진 선배 한 사람은 나귀님의 이런 싸구려 취향을 싫어해서, 이번에 무슨 박스가 나왔다고 알려주면 왜 그런 걸 사느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때로는 어떤 음반이 괜찮더라고 칭찬하면, '그래, A도 좋지만 B도 역시나 좋은데, 아마 그건 싸구려 박스세트 따위에는 들어 있지 않을 거야' 하고 말을 얹었다가, 그것도 들어 있다고 말해주면 짜증내곤 했다.


나름 고급 수집가의 입장이다 보니 초보 수집가의 행보가 우스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긴 음반보다 책을 많이 수집한 나귀님의 입장에서도, 을유문화사 80주년을 맞이해 <큰사전> 전6권부터 최민순 <신곡>과 <지봉유설> 같은 유명 절판본을 재현한 30권짜리 미니북 박스세트가 나왔다 치면, 이미 다 가진 수집가 입장에서야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서운했을 테니까.


비록 저렴한 박스세트의 울타리 안에서 맴도는 나귀님이지만, 그래도 반복 청취하다 보니 의외로 새로운 호기심의 단서를 찾아내곤 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블루노트 박스세트에 들어 있던 소니 롤린스의 빌리지 뱅가드 실황 음반에서 베이시스트의 즉흥 연주 가운데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다른 박스세트의 셀로니어스 몽크 음반에도 똑같이 나왔다.


구글링해 보니 롤린스 음반에 참여했던 윌버 웨어(1923-1979)라는 베이시스트가 몽크의 콜트레인 합작 음반에도 참여했었다고 나오니, 아마도 그 사람의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이 사람이 참여한 다른 음반은 또 뭐가 있나 구글링했더니, 역시나 지금까지 모은 박스 세트에 들어 있는 몇 가지가 눈에 띄니, 다음번에는 베이스 연주에 유의해서 들어보아야 되겠다.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라는 희한한 물건이 있어서, 충분한 시간과 호기심만 있다면 이전에 몰랐던 많은 것을 배워가는 각별한 재미가 있다. 이른바 '김나박이' 가운데 하나인 (하지만 '장카설유'까진 아닌) 나얼이라는 가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엘피를 골라 틀어주는 시리즈가 있는데, 나귀님으로선 영 생소한 곡들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한때 유행한 지브리풍 사진 만들기처럼 AI를 활용해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든 사이비 음악도 유튜브에 많이 올라온다. 어쩌면 이런 가짜 음반과 가짜 음악가의 범람 때문에라도, 아예 엘피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과 음반 표지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아날로그 콘텐츠가 더 유행하는 것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도 어쩌면 그 연장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전설적인 삽화가 아서 래컴, 노먼 록웰, 조지프 크리스천 레이엔데커의 도록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상업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에 관한 책도 여럿 번역된 모양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은 또한 그쪽의 연장이기도 한 듯하다. 아니면 <레코스케>라는 기묘한 만화와 마찬가지로 살짝 맛이 가 있는 수집광만을 열광시킬 극도의 마니아적인 책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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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복기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에 그건 또 무슨 신조어인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의외로 사람 이름이었다. 무려 현역 국회의원이고, 심지어 재선 의원이라는데도 불구하고 나귀님으로서는 전혀 몰랐던 셈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바둑이나 뭐 그런 데에서 쓰는 뜻처럼 이미 진행된 뭔가에 대해 '복기'를 잘 하는 사람 정도의 뜻은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또 어제인가는 뉴스에서 어느 공직자를 거론하며 '이억원' 운운하기에 누군가가 또 그 액수만큼의 뇌물을 받아 먹었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이번에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름이었다. 한편으로는 우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저 양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놀림과 웃음을 겪어야 했을지 생각해 보면 뭔가 측은하고 숙연한 마음마저 들어 미안했다.


이처럼 이름 중에는 유사한 의미나 야릇한 발음 때문에 자연스레 웃음을 유발하는 것들이 없지 않다. '궉'이나 '팽'처럼 희귀한 성씨도 비슷한 상황인데, 정작 본인들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니 한편으로 딱하기도 하다. 실제로 법원을 거치는 복잡한 절차에도 불구하고 개명 신청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니,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듯하다.


지난 주에 박명수 유튜브를 보니 최근 사람 이름을 넣어 출시해서 인기라는 칸초를 까보는 내용이 나왔다. 요즘 제일 흔한 이름 수십 종을 선별했다는데, 지난번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목록을 확인하니 나귀님의 이름은 없고 바깥양반의 이름도 없었으며, 우리 부모나 형제자매나 지인의 이름도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비로소 이제는 유행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보통 이미 정해진 대로 돌림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고, 그러다 보니 같은 성씨라면 이름만 들어도 대충 항렬이 짐작되게 마련이었는데, 지금은 돌림자에서 벗어난 한글 이름도 많이 늘어난 듯하다. 다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제는 한글로 이름을 먼저 짓고 한자를 나중에 갖다 붙이는 식의 주객전도도 늘어나는 모양이라 우스울 수밖에 없다.


한때는 '이슬'이란 여자 이름이 가장 흔한 한글 이름 아니었나 싶다. 외관상 한자 같아도 실제로는 외국 이름(?)인 경우도 있는데, 기독교인 중에 흔한 '예'와 '하'가 그런 경우로, 각각 '예수님'과 '하느님'을 가리킨다. 일본어의 잔재라 해서 지금은 외면되는 여자 이름 '-자'도 사실 한때는 '제니'나 '제시'처럼 세련되다 여겨져서 유행하던 외국식 이름이었다.


외국 이름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갖다 붙이는 것도 이상한데, 언젠가 미국 유학 중인 지인이 아들 이름을 '아이작'이라고 지었다기에 어색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영어 이름은 대개 성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이작'(이삭)은 대표적인 유대계 이름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미나리>의 감독도 '아이작'인 것을 보면 비슷한 사례도 많았던 모양이지만.


외국인이 한국식 이름을 짓는답시고 '박김리'나 '오최정'으로 자처하면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듯이, 한국인도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 캐릭터처럼 '주니어 3세'로 자처한다면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회사명이나 상품명이 뜻하지 않게 웃음이나 반감을 자아내는 바람에 현지 정서를 감안해 변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이름의 중요성은 '사람 운명은 이름 따라 간다'는 속설로 잘 요약되고, 그래서인지 한때 '이름 함부로 짓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운명론보다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언급되는 듯하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성기나 욕설 같은 부적절한 단어를 자녀 이름으로 못 쓰게 하는 법령이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이름 중에도 그리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모비 딕>의 주인공인 '에이해브' 선장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악한 왕 '아합'의 이름을 뜻하기 때문인데,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붙여주는 바람에 평생 그 이름으로 살아 왔고, 문제의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는 등의 불운이 평생 따라다닌 것으로 묘사된다.


구약성서에서는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 역시 부창부수로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 도시>에는 주인공의 아내가 하필이면 그 영어식 이름인 '제저벨'을 부여받은 까닭에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름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나쁜 쪽으로 이끌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식으로 이해하자면 어쩌다 본명이 '장희빈'인 여학생이 본래는 착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의 놀림을 견디지 못해 진짜 악녀로 변하게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숱한 동명이인 '김건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물론 동명이인 '차은우'나 '장원영'만큼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남들의 '기대'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까진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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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양반과 저녁마다 산책하는 길에 종종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언제부턴가 그 숫자가 대폭 늘어나는 바람에, 가뜩이나 좁은 산책로에서 이리저리 비켜주기 바빠 살짝 짜증까지 났었는데, 뉴스를 보니 그렇잖아도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러닝 크루'라는 이름으로 공원이며 도로에서 단체 운동을 하는 바람에 차량이며 행인으로부터 불만이 속출한 모양이다.


급기야 일부 공원에서는 3인 이상 달리기 금지, 상의 탈의 금지, 구호 외치기 금지 등 '러닝 크루'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만류하는 구체적인 규정까지 만들어 내걸었다고 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기존의 각종 '동호회' 관련 논란처럼, 개성 중시와 참견 거부라는 최신 풍조의 이면에는 뭐든 떼를 지어 몰려다녀야 안심하는 인간의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려나.


달리기와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는 나귀님이니 종종 병원에서 운동하라는 지적을 받아도 차마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모든 운동의 기본이 달리기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체중이며 체력, 도가니며 선지로는 선뜻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그냥 저녁 먹고 바깥양반과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장바구니에 맥주만 가득 사서 들고 다니는 것쯤으로 대신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운동 삼아 달리는 것을 '러닝' 대신 '조깅'이라고 했었고, 보통 새벽에 일어나서 밥 먹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뛰고 돌아오는 것을 가리키곤 했었다. 아울러 이것은 운동 선수라든지 특별히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의 유별난 취미로만 간주되었고, 기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운동 방법이라고 간주되었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자서전을 보면, 미국에 오래 살다 칠레로 귀국해서 아침마다 '조깅'을 하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던 일화가 나온다. 고국보다는 미국의 생활 방식에 더 익숙한 까닭에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디서 굴러 들어온 젊은 녀석이 미국인 흉내를 내고 다니는 모습이 영 못마땅해 보인 까닭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이식된 문화의 일종으로 간주된 '조깅'인지 '러닝'도 한때 의외의 열풍을 일으키며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전인 2000년에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라는 책이 번역된 것이 시작이었는데, 중년을 맞이해 인생의 변곡점에 선 독일 정치인이 달리기를 통해서 건강과 삶의 목표를 되찾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해당 출판사 대표도 이 책을 내면서 운동화를 사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후 달리기 열풍이 불면서 과거의 '조깅'과는 결이 다른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런저런 관련 서적까지 간행되는 듯 제법 유행을 타나 싶더니만, 대부분의 유행이 그렇듯 시간이 흐르며 시들해지고 피셔의 책도 이제 절판이다.


유행의 반복은 어찌 보면 역사의 법칙 같기도 한데, 치마나 바지 길이가 주기적으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개인 이동 수단의 경우, 처음 나온 세그웨이는 기술의 한계로 반응이 미미했다가 사반세기 뒤에는 킥보드의 형태로 재현되어 크게 유행했는데, 전자와 후자 사이에 배터리 기술이 크게 발달해 충분한 동력을 마련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반복이 항상 좋지는 않다는 점은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여 실수를 반복한다'는 밈으로 잘 요약되는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 역시 십수년 전의 유행 아닌 '우행'을 반복한 셈이니 기시감이 든다. 물론 가장 놀라운 점은 재테크 개미들치고 주가나 금값이나 집값 폭등 같은 유행의 반복에서 손쉽게 수익 올리는 경우가 의외로 없더라는 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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