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개와 고양이 대학살에 대해 알아보려다 보니, 문득 <맹자>에서 양혜왕이 제물로 끌려가던 소를 딱하게 여겨 양으로 교체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양쪽 모두 생명인데도 한쪽은 중히 여기고 한쪽은 경히 여긴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동물 애호가들의 기본 입장과도 유사하다.


물론 <맹자>의 문맥에서는 값비싼 소를 저렴한 양으로 교체한 것을 놓고 인색하다는 소문이 퍼져 왕이 당황했다고만 나오며, 맹자 역시 왕의 측은지심은 인정하면서도 그처럼 좋은 의도가 좋은 정치라는 형태로 국가와 백성 같은 더 넓은 대상에게까지 적용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러다가 <풍도의 길>에서도 이탁오가 <맹자>에 나오는 "백성이 우선, 사직이 다음, 군주가 마지막"이라는 구절을 가져다가 풍도를 평가했다는 설명이 나오기에, 정말 오랜만에 <맹자>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명문당 사서삼경 수록본으로 읽다가, 다시 책세상의 발췌본으로 읽었다.


앞에서 언급한 소와 양 일화의 주인공인 양혜왕과 맹자의 문답 내용에서는 전국 시대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상당히 급진적인 민본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적으로 맹자는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시종일관 왕을 다그치고, 심지어 역성혁명까지 옹호하는 판이니까.


나중에 가서는 군주가 천명을 받들어 나타난다는 사고방식이 확립되었지만, 맹자도 종종 언급하는 요순과 하은주 3대의 역사만 <사기> "본기"에서 살펴보아도 군주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경우는 별로 없었고, 무도한 군주를 무력으로 쫓아내는 역성혁명이 오히려 기본값이라고 볼 만하다.


잘못된 정치로 백성의 지지를 잃어버린 군주는 이미 군주라고 할 수 없으니 쫓아내도 무방하다는 상당히 과격한 주장을 맹자가 또 다른 군주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내놓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이전까지 역사적 선례로 미루어 쿠데타조차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정치사를 연구한 소공권의 설명에 따르면, 맹자가 이처럼 파격적인 발언을 연이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전국 시대의 생활상이 이전보다 더 피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 되든 간에 하루빨리 다툼이 끝나고 안정이 오기를 바란 까닭에 군주 앞에서 왕도 실천을 촉구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맹자의 민본주의를 현대의 민주주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공권의 설명이지만, 그래도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에게서 오늘날의 정치 제도와 맥이 닿는 듯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의 정치 상황도 있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그토록 간절한 바람에도 맹자 역시 선배인 공자와 마찬가지로 등용되지는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의 중국 역사도 비록 절대 군주가 통치하는 통일 국가가 생겨났다 사라지고, 역성혁명도 심심찮게 일어났지만 정작 두 사상가가 제시한 이상에는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었으니.


그나저나 <맹자> 번역본에서 참고 자료로 추천한 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뒤적이다 보니,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이전에 구입하자마자 발견했던 의아한 대목이 하나 기억났다. 강유위의 <대동서>를 해설하던 중에 진지함이 지나쳐서 낭패를 본 경우였다.


강유위는 <대동서>에서 국가 간의 병탄과 전쟁은 끝이 없으리라 지적하면서 중국보다 큰 세계, 또 세계보다 큰 우주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지구 너머에도 국가가 있을 터이니, "화성과 인류의 지구가 전쟁한다면 피가 수천만 리에 흐를 것이고 수천만 명이 죽을지 모른다"(1123쪽)고 썼다.


그런데 소공권은 어째서인지 이 대목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덧붙였다. "그것은 오해가 분명하다. 서양인들은 화성을 MARS라고 이름한다. 그것은 또 로마인이 전신(戰神)을 칭한 것이었다. 강유위는 그로 말미암아 화성에서 국토를 둘러싼 전쟁이 일어난다고 오해한 것일까."(1123쪽, 주 53)


하지만 강유위는 국가 간의 알력이 보편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의 행성인 화성과 실제의 행성인 지구의 전쟁을 상상해서 예시한 것뿐이다. 굳이 우주까지 갈 것도 없이, 문학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든지, 아니면 아예 허구의 나라를 예로 들어도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소공권의 문제는 비유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진지한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인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개그를 치자 다큐로 받은' 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오해의 흔적이 나중에도 수정되지 않고 원서에 남아 있다가 번역서로도 옮겨 왔으니 더욱 의아하다. 정말 아무도 몰랐던 걸까?


화성인이 나오는 소설로 가장 유명한 H. G. 웰스의 <우주전쟁>은 1898년에 간행되었고, 강유위의 <대동서>는 1901년에 완성되어 저자 사후 1935년에야 간행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웰스의 소설을 강유위가 생전에 직간접적으로 접해 보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


물론 웰스 이전에도 천체 관측에서 비롯된 억측과 과장을 통해 화성인의 존재가 일반 대중의 뇌리에 통념으로 자리잡은 19세기의 유산일 수도 있고 말이다. 분명한 점은 소공권이 학자로서는 엄밀했을지 몰라도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니, 새삼스레 사상가와 학자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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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빙허각 이씨에 관한 글을 쓸 때 어디 두었는지 몰라 끝내 찾지 못해서 아쉬웠던 <규합총서>를 뒤늦게 찾아냈다. 분명 두어 번 훑어본 책장이었는데, 마음이 급했나 막상 필요할 때에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책등인데, 필요 없게 되자마자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니 한심한 일이다.


내가 가진 <규합총서>는 한학자 이민수가 번역해서 1988년에 간행한 것인데, 서두의 해제 말미에 더 먼저 나온 정양완의 보진재 번역본을 거론하며 그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고 적은 것으로 미루어, 아무리 한학자라도 요리나 생활에 관한 내용까지 훤할 수는 없으니 도움을 받은 듯 보인다.


<규합총서>는 전반부가 요리 관련 내용이고, 후반부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꿀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고 심지어 결정하는 방법이라든지, 술을 끊게 만드는 약 제조법처럼 허황되고 비과학적인 듯한 속설도 적잖이 포함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람[風]과 사이[間]라는 글자를 적어 벽에 붙이면 모기가 사라진다든지, 숫놈 쥐를 잡아 음경을 잘라 풀어주면 다른 쥐를 깡그리 잡아 죽인다든지, 말굽을 깎아 놓아두면 바퀴벌레가 사라진다는 등의 내용은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그 신빙성이 충분히 의심될 만한 내용이다.


그 당시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규합총서>에도 다른 문헌에 나온 구절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한 대목이 여럿 포함되었다. 따라서 음식 관련 내용처럼 실제 확인했음직한 것뿐만 아니라, 위의 사례처럼 그저 '카더라'나 '썰'에 불과한 내용 역시 적잖이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되겠다.


예를 들어 개고기 조리법에서 개를 잡을 때에는 칼로 찌르지 말고 목을 매달라 설명한 것이라든지, 삶은 개고기는 칼로 썰지 말고 반드시 손으로 찢어야 한다고 설명한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실용적 조언일 수 있지만, 누런 개가 여성에게 좋고 검은 개가 남성에게 좋다는 이야기는 미심쩍다.


그나저나 개 삶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와 유사한 고양이 삶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고리키의 에세이에서 우연히 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 번은 고리키가 체홉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평소 작품 집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삼갔던 선배 작가가 슬며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있잖아요. 한 여선생 이야기를 써 볼까 하는데요. 무신론자에 다윈을 열렬히 숭배하고, 민중들의 편견과 미신에 대항해 싸워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 여자이지요. 그런데 그런 여자가 밤 12시에 욕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삶아요. 고리뼈를 얻으려는 거죠. 그 뼈가 남자를 끌어당기고 남자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니까."(<가난한 사람들>, 183쪽)


인간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측면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으로 짐작되는데, 실제로 작품화되지는 않고 체홉이 남긴 메모로만 전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고리뼈'는 '꼬리뼈'의 오타가 아니라 척추뼈 중에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부분을 가리키는 모양인데, 고양이의 '골반' 부분인 듯하다.


희한한 내용이다 싶어 구글링해 보니 '검은 고양이 뼈'는 '후두' 주술에서 일종의 부적처럼 사용되는 모양이다. 이 대목에서 '후두'(hoodoo)가 '부두'(voodoo)와 다르다는 것은 나귀님도 처음 알았는데, 이전에 몇 번인가 그 단어를 접했을 때에도 단순히 '부두'의 오역/오타라고 생각했었다.


후두는 부두처럼 역시나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를 중심으로 유포된 주술 위주의 신앙 체계라고 한다. 어제 쓴 글에서 언급했던 <아내가 마법을 쓴다(Conjure Wife)>라는 소설의 원제도 후두의 여성 주술사(conjure woman)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 대략 '마녀' 대신 '마줌마' 정도 되려나.


그렇다면 체홉이 언급한 검은 고양이 뼈 주술도 아프리카에서 유래하여 미국의 후두를 거쳐 러시아까지 전래된 것일까? 구글링해 보니 후두와는 무관하지만 내용은 비슷한 주술이 유럽에도 있어서 독일을 거쳐 캐나다로 전파된 바 있다니, 체홉이 언급한 주술은 후두와는 무관할 법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후두의 '검은 고양이 뼈' 주술에 관한 보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남긴 인물이 바로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조라 닐 허스턴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저명한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의 제자로서 미국 흑인의 민속을 연구했는데, 그중에는 후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실제로 허스턴의 기행문 <노새와 인간>을 보니 '검은 고양이 뼈'를 얻는 과정을 실제로 체험했다고 나와 있었다. 즉 저자가 만난 후두 주술사가 '남의 눈에 안 보이게 하는 효험'이 있는 부적이라며 추천하자, 그의 지시를 따라서 직접 검은 고양이를 잡아서 솥에 넣고 삶았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허스턴은 주술사의 지시대로 24시간 굶으면서 특수 제조한 술만 마셔서 몸에 감각이 없고 정신만 멀쩡해졌다. 그 상태로 한밤중에 밖에 나가 검은 고양이를 찾아내 잡았고 (이게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물이 펄펄 끓는 솥에다 고양이를 산 채로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후 허스턴은 주술사의 지시대로 고양이를 향해 저주를 내렸고, 그러자 고양이는 세 번쯤 크게 울더니 이내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다 삶은 고양이에서 발라낸 뼈를 하나하나 직접 맛보며 쓴맛 나는 것을 골라냈고, "날이 밝기 전에 작고 하얀 뼈를 하나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고 적었다.


인권을 동물권으로까지 확대적용하자는 주장마저 나오는 요즘 같으면 허스턴은 물론이고 체홉이나 고리키, 심지어 빙허각 이씨조차도 동물 학대와 조장 및 방조 혐의로 누군가에게 고발당하지 않을까. 심지어 여성계와 교육계와 집사계에서도 해당 집단을 폄하했다고 노발대발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언젠가 <던전밥>에 관해서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개고기는 음식 문화의 일부분이니, 오늘날 기호가 많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양이 주술은 훨씬 기묘하지만, <톰 소여의 모험>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했으니 한때나마 흔했던 미신이 아니었을까.


물론 빙허각 이씨나 허스턴이 지금까지 유명한 것은 단순히 개와 고양이 삶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엉뚱하고 미심쩍은 이야기도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시대의 생활과 심성에 대해 가감 없는 증언을 남겼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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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라이버가 1953년에 간행한 공포 소설 <아내가 마법을 쓴다>의 주인공은 미국의 소도시에 자리한 대학에 재직하는 젊은 교수다. 예쁜 아내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이미 가졌고, 조만간 승진까지 앞두고 있어서 정말로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이상한 일에 연이어 휘말리게 된 것은 겁도 없이 아내의 화장대를 함부로 뒤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한 사이에 무심코 화장대 서랍을 열어본 남편은 액막이에 사용하는 갖가지 주술 용품이 즐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를 추궁하니, 여자는 모두 마법을 쓰게 마련이고,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눈물 섞인 변명이 나왔다. 이성을 신봉하는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남편은 미신에 현혹되지 말라고 타이르고, 아내도 그 말을 받아들여 주술 용품을 모두 버린다.


그런데 아내가 마법을 포기하고 액막이를 제거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운이 남편에게 연이어 닥친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인간 관계에서도 연이어 말썽과 갈등이 생겨나자, 남편은 뒤늦게야 아내의 주술이 자신의 경력을 유지해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머지않아 두 사람을 포위한 적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남편의 대학 동료들인 조교수와 부교수와 학과장의 아내들도 저마다 주술을 이용해 남편들의 성공을 도모했으며, 강력한 경쟁자인 주인공 부부에게 빈틈이 생겼음을 알자마자 합세해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결국 남편은 주술에 효험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뛰어난 주술사인 아내를 보조함으로써 동료 부인들의 공격을 저지하며 차례대로 굴복시킨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적수인 학과장 부인과의 치열한 대결에서 아내는 결국 영혼을 빼앗기고 만다.


여자가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고대부터 전해지니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당장 주기적으로 맞이하는 생리 현상도 '마법'이라 지칭하고 있으니, 마녀 사냥을 비롯해서 역사 내내 여성에 대한 박해와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과 마법사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아는 페미니스트 문학의 대모 어슐러 르귄조차도 남자 마법사에 비해 여자 마법사, 즉 마녀는 더 저열하고 악랄하며 음험한 존재로 줄곧 묘사해 왔으니, 이쯤 되면 여자와 마법의 조합이야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여자들은 마법 능력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화장대와 싱크대처럼 자신들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된 공간에 그 무궁무진한 능력을 압축해 넣어두었다가, 화장이나 요리나 인테리어처럼 지극히 무해해 보이는 활동으로 위장해 은근슬쩍 실천해 왔다.


예를 들어 여자가 커튼을 바꾸거나, 가구를 옮기거나, 화분이나 소품을 배열하는 일 역시 주술 행위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싱크대를 어지르거나, 냉동실의 저 비닐 봉지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내가 짜증을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에 나온 지 무려 70년이 넘은 저 소설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 것은 당연히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어놓는가 하면, 무려 무속인을 멘토로 삼았다는 등의 주술 관련 뉴스가 줄줄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대목은 물론 대통령 후보 배우자가 각별히 주술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는 점인데, 박사 학위 논문부터 무려 '운세'에 대한 내용이고, 저 유명한 YUJI 논문 역시 '운세 콘텐츠'에 대한 내용이어서 양쪽 모두 대놓고 주술을 주제로 삼았다.


심지어 자질 여부를 놓고 숱한 논란이 이어졌음에도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보면, 그 배우자의 주술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외부 전문가인 각종 무속인까지 영입함으로써 그 파괴력을 한층 높였던 것이 승리의 요인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어느 한쪽의 문제만도 아니었던 것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역시 평소에 점을 많이 보러 다녔다는 증언이 무려 그 아들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한국 여성 사이에서 페미니즘 못지않게 주술 능력이 보편화된 증거라고 하겠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배우자를 중심으로 숱한 논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비상 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두고 탄핵과 체포까지 당하게 되었으니, 나귀님이 보기에는 그 배우자의 액막이 주술이 어딘가 교란된 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닐까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풍수적으로 액운이 낀 것은 아니냐고 추측하지만, 그 배우자의 탁월한 주술 능력을 감안하면 상당히 견고하게 구축해 두었을 각종 액막이가 단순히 이사 몇 번 했다고 깨지거나 흔들렸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불안 요소는 바로 현직 대통령 본인이다. 평소에도 워낙 제멋대로이고 독불장군이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데, 심지어 비상 계엄 발표 때도 국무위원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니 평소 성격을 알 만하다.


결국 아내가 알뜰살뜰 마련한 각종 주술 도구를 남편이 멋대로 내다 버렸든지, 아니면 아내가 교묘하게 배치해 놓은 가구와 화분과 접시와 식칼의 위치를 남편이 함부로 옮겨 버렸든지 해서 사사건건 방해를 하다 보니 스스로 올가미를 조이게 된 것이 아닐까.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최근 두 번이나 있었던 공수처의 체포 시도에서 나타난 상반된 결과이다. 1차 시도 때에는 완강한 저항으로 절대 뚫리지 않고 버틴 저지선이 2차 시도 때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져서 체포조의 진입을 허락해 버리지 않았나.


새벽부터 뉴스를 보던 나귀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또다시 남편이 아내의 화장대를 뒤졌거나, 아니면 싱크대를 어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뉴스에서 체포 직전 샌드위치를 직접 만드느라 부산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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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철학자 겸 정치인 키케로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은 아마 카틸리나 내란 음모를 저지하고 '국부' 칭호를 받은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견지에서 따져 보자면, 바로 그 영광의 순간이 키케로의 삶에서는 결정적인 패착이자 이후에 몰아닥친 역풍의 원인이었으며, 머리와 양손이 잘리는 비참한 최후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의 시작이기도 했다.


내란의 주모자 카틸리나는 본래 귀족 출신이지만 공직 선거에서 패배하자 앙심을 품었고, 포퓰리즘 공약으로 얻은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무력 행사를 통한 정권 탈취를 모의한다. 정보 유출로 모의가 사전 발각되자 수괴인 카틸리나는 로마를 빠져나갔지만, 공모자 가운데 여러 명이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에서 그 처분을 놓고 원로원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당시 집정관이었던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카틸리나를 비난하는 연설을 모두 네 번에 걸쳐 내놓았는데, 그중 마지막 연설에서는 구금된 내란 공모자를 즉결 처형하자고 주장했다. 카이사르가 대안으로 징역형을 제시했지만, 카토의 지지를 얻은 키케로는 결국 내란 공모자 처형을 집행했고, 그 결과로 앞에서 말했듯이 '국부' 칭호를 얻으며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지적했듯 카틸리나 내란 음모 사건은 위험성이 과대평가된 면도 없지 않지만, 제거 대상 1순위로 살생부에 오른 키케로의 입장에서야 상황이 위중하다고 판단할 이유가 충분했다. 문제는 신약성서에서 사도 바울의 사례로 널리 알려졌듯이,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로마 시민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지도 않고 처형한 것이 위법이라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에 정적 중 하나가 과거 내란 관련자 처형의 불법성을 지목하며 반격에 나서자, 결국 키케로는 전재산을 빼앗기고 목숨만 건져 로마에서 탈출하는 처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힘겨루기로 인한 복잡한 정세로 망명 생활은 비교적 금방 끝났지만, 한때 '국부'로 추앙되던 키케로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쇠퇴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카이사르가 반대했듯 제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로마 시민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처형된 공모자들이 하나같이 귀족 자제라는 점 역시 강대한 세력과의 숙원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었다. 내란의 위협은 사실이었지만, 대중과 원로원의 지지가 굳건한 상황에서 좀 더 아량을 베풀었다면 어땠을까.


오래 전에 읽은 키케로 전기며 관련 역사서를 다시 한 번 꺼내 뒤적여 본 까닭은 당연히 최근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탄핵 정국 때문이다. 탄핵안 가결 직후부터 야당이 이미 정권이라도 교체된 듯 큰소리치기에 저러다 역풍 맞지 않겠나 싶더니만, 그렇잖아도 이번 공수처의 헛발질에 극우를 중심으로 보수가 결집하며 대립 양상이 점점 본격화되는 듯한 모양새다.


비상 계엄 해제 직후 누군가가 이번 일을 키케로의 카틸리나 내란 음모 저지에 비견했었는데, '선거'와 '내란'과 '살생부'와 '탄핵'이란 친숙한 키워드가 포함된 그 사건도 결국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는 못하고 시빗거리를 남긴 까닭에 키케로 개인의 불행과 로마의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우리로서는 가급적 그 선례를 따르지 않기를 바라야겠다.


비상 계엄과 내란 모의를 놓고 지금 여러 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사에서는 너도나도 '법잘알'인 관계로 숱한 주장과 해석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종종 분통 터지는 상황도 없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절차의 정당성을 유지하면서 시빗거리를 남기지 않고 순리대로 진행하여, 내란 동조 및 비호 세력이 꼬투리를 잡을 만한 여지를 없애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까 싶다.


비상 계엄 당일에 해제 결의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시가 급하니 서두르라는 일부 의원들의 볼멘소리를 가라앉히며, 이것도 다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국회의장이 타일렀던 것처럼, 말 그대로 급할수록 차분히 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까.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는 못 쓴다는 점을 공수처의 헛발질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아울러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관계자들에게는 실실 쪼개지 말고 표정 관리부터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진지함이 결여되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사안이 엄중한 만큼 불필요한 조롱과 돌출 발언으로 공연히 상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에 실망한 유권자라 해서 모두 이재명을 지지할 리 없다는 사실이 최근 여당 지지율 회복 추세로 드러나지 않았나.


비록 형세를 오판해 훗날 반격의 빌미를 자초했던 키케로조차도 내란 공모자 처형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카틸리나 비난 최후 연설의 말미에서는 혹시 자기가 내란 진압에 실패해 살해된다면 가족을 돌봐 달라 부탁하며, 나중에라도 자기 아들을 보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의 자식임을 기억해 달라고 모두를 향해 호소한다.


키케로의 직업에 항상 '웅변가'가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감동적인 발언인데, 물론 탄핵을 주도한 야당 의원들에게 거기 버금갈 명연설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역사상 가장 똑똑한 철학자 중 하나였던 사람도 최대한 진지하게 행동한 (그런데도 역풍을 맞았던) 선례가 있으니, 그만도 못한 댁들은 알아서 눈치 챙기라고 핀잔을 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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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성추문과는 별개로 영화의 역사상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차이나타운>은 LA의 한 사립탐정이 한 여성으로부터 남편을 뒷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탐정은 평소처럼 해당 남성의 외도 사실을 알아내서 증거 사진과 함께 의뢰인에게 넘기지만, 미처 몰랐던 뜻밖의 사실이 드러나며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발단인 불륜남이 극중에서 LA 시청의 고위 공직자로 수자원 정책을 좌우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 것으로 악명 높은 캘리포니아 주이다 보니 수자원을 둘러싼 이권 다툼도 적지 않다는데, 영화가 진행되며 밝혀지는 사건의 발단 역시 물 분배에 대한 관계자들의 의견 차이로 인해 생겨난 갈등이었다.


오래 전에 본 영화를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 까닭은 최근 미국 LA 인근에 발생한 대형 산불의 진화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피해가 속출한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물은 부족하고 산불은 빈번했던 지역이라 최근 수년간을 돌아보아도 비슷한 사건이 매년 반복되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과거의 어떤 사례조차 능가할 만큼 대규모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구온난화를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매년 수천 건씩 발생했다니 단순 인재로만 보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다만 자연 발생하는 주기적 산불이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반면, 최근의 산불은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는 까닭에 이득보다는 손실이 크다 봐야겠다.


연예인의 고급 주택이 전소되고 기회주의적 약탈까지 빈번하다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에도 약탈 소문이 퍼졌지만 결국 유언비어로 판명되었는데, 이번에는 사실인 듯하니 가뜩이나 치안 상황이 악화일로인 상태에서 무정부 상태가 펼쳐진 셈이다.(물론 비상 계엄 후 진짜 무정부 상태인 우리 입장에서 할 말까진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사태를 놓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난했다고 해서 화제다. 하찮은 물고기 따위를 살리겠다며 수자원 정책을 변경하는 바람에 산불이 확산하는 중에도 진화에 필요한 물이 없어서 쩔쩔 매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인데, 물론 주지사는 물론이고 주 정부에서도 사실과는 다르다며 반박을 내놓았다.


도대체 무슨 물고기를 말하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캘리포니아 주의 태평양 연안에 서식하는 바다빙어과의 고유종이라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술안주인 열빙어(시샤모)의 사촌 격이라는데, 하찮다는 폄하와 달리 그 지역의 주요 지표 생물이자 먹이 생물이며, 이미 반세기 전인 1973년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이 물고기를 위협하는 원인으로는 서식지의 상태 악화, 외래종의 침입, 수질 오염, 수온 변화, 수자원 정책 등이 꼽힌다. 이번에 논란이 된 수자원 정책은 본래 트럼프 1기 집권 당시에 캘리포니아 남부의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북부의 자연적인 물길을 바꾸는 내용이었는데, 주지사가 이에 반대하면서 바다빙어의 보호를 구실로 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여러 언론사가 이미 내놓은 팩트체크에 따르면 트럼프의 주장은 거짓에 불과하다. 농업용수 확보와 소방용수 부족은 별개의 문제이며, 주지사가 멋대로 뒤집은 결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 정부와의 소송에서 바다빙어를 들먹인 것만은 사실이라서 주지사는 졸지에 하찮은 물고기와 귀중한 사람 목숨을 맞바꾼 악당이 되었다.


모든 생물이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고 보는 생태학의 관점에서는 어떤 생물을 하찮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티의 말마따나, 하찮아 보이는 곤충이나 이끼에 대한 연구가 의외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주장이야 늘 그렇듯 지나친 과장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산불 진화가 어려운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강풍과 가뭄 같은 자연적 원인뿐만 아니라 기반 시설 노후화 같은 대책의 한계 역시 상황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듯하다. 이번 산불의 피해 지역이 서울 면적의 4분의 1에 달한다는 보도까지 접하고 보니, 새삼스레 미국이란 나라의 광활함과 아울러 그 진화 작업의 어려움 역시 깨닫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연 재해가 졸지에 정치적 쟁점으로 변모하면서 생겨난 파장 역시 만만치 않을 것도 같다. 산불이야 결국 사라지겠지만, '하찮은 물고기' 운운 하는 트럼프의 프레임 씌우기의 영향은 그보다 좀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최근 우리나라의 탄핵 절차를 둘러싼 논란만 봐도 현실에서는 가짜 뉴스야말로 산불보다 더 무섭게 번진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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