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수풀 흥얼대며 남산 숲을 걷다보니

초록 내음 사이사이 맑은 파도 쏴아아아

바스락 조개껍데기 발바닥을 간질간질

 

 

* 2018.10. N공모전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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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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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날, 회색빛 거리를 걷는 듯 불확실한 시야 속에서 눈에 띄는 무엇이든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 입맛에 맞지 않는 고급 음식을 맛본 느낌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감이 오는데 이런 식의 전달 방식, 나와는 맞지 않는다. 수분이 덜 마른 종이 탈을 쓴 기분이랄까. 채 마르지 않은 종이와 풀 냄새가 뒤섞여 텁텁하고 건조한 냄새가 나는 내용이다. 읽는 내내 걸쭉하고 질척한 것이 느린 속도로 서서히 흘러내려 마음 바탕에 깔렸다. 답답한 묵직함을 안고 소설을 읽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결국 출발지로 터벅터벅 돌아온 동화 속 주인공인양 마지막까지 갔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오니 결론처럼 첫 문장이 선명한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p9)’ 작가는 세상의 빛과 먼지와 어둠과 습기를 묻히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삶의 허무를 전하고 싶었을까.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p76)’ 혹은 어딘가에 잠시라도 새겨져있을 삶의 짧은 흔적이 주는 의미를 말하고 싶던 걸까.

 

지워진 기억을 좇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서를 찾아가는 주인공. 어릴 때 하던 스무고개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주인공을 따라 걷는다. 주인공이 만난 이들 대부분은 무언가를 그에게 건네어준다. 상자에서 꺼낸 사진이나 책, 작은 단서가 적힌 종이 등. 소설 곳곳에는 주소나 전화번호, 건물, 장소가 등장한다. ‘건물들도 거리의 폭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빛이 달랐었고 다른 무엇이 대기 속에 떠돌고 있었다......(p170)’ 잠시나마 그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있다. 삶의 흔적들은 그를 스쳐간 물건 곳곳에 의미로 새겨진다. 물감 묻힌 붓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별 의미 없는 선을 긋는 것처럼. 기억을 복기하여 도화지를 펼치면 그 순간의 냄새, , 소리 등이 그대로 재현된다.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한다. ‘그녀는 어느 길을 따라왔을까? 왼쪽으로 왔었을까, 오른쪽으로 왔었을까? 나는 그것을 카페의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렸다.(p140~141)’ 그에게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방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의 그녀가 걷던 길이었기에 특별한 경로로서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뇌에 새겨진 흔적들도 어쩌면 이토록 사소하게 보여 지는 기억들의 집합 아닐까. 그 때 그가 입었던 옷의 색깔이라든지, 흩날리던 머리칼에서 풍겨 나오던 향기라든지, 함께 듣던 유행가라든지. 작은 기억들이 보석처럼 박혀 지치고 힘든 삶의 순간에 떠올라 반짝이며 위안을 주는.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p262)’ 작가가 말한 허무 속에서도 나는 의미를 찾고 싶다. 삶은 물론 맑은 물이 아니다. 오염되어 혼탁해진 폐수와도 다르다. 적당히 뿌연 빛깔로 묵직하게 흘러가는 강물로 삶을 정의해보려 한다. 맑은 강물로 시작했다가 곳곳에서 유입되는 타인의 삶과 마주친 흔적들이 함께 흘러가는 것. 삶과 삶이 마주 본 순간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잊히더라도 어딘가에는 부유물로 남아 내 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것이라 믿는다.

 

<후기>

콘스탄틴 폰 위트에서 어쩐지 기분이 쎄하더니 게이 오를로프에서 무너졌다.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이런! 분명 한글로 된 책인데 당최 내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결정적인 과속방지턱들은 이노무 이름들이었다.

종이를 펼쳐놓고 볼펜을 들었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왔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기록을 하고 관계도를 그려나갔다. 이 인간은 요 인간의 할아버지, 이 인간들은 친구 사이, 얘네들은 연인, 저 인간은 간지처럼 사이사이 끼워지는 탐정. A4용지를 빽빽이 메운 이름들을 보며 점점 인내력의 배터리는 방전이 되어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래도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이라니 참아보기로 했다.

콘스탄틴 폰 위트, 기 롤랑, 폴 소나쉬체, 장 외스퇴르,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 조르주 사셰, 조르지아제, 게이 오를로프, 갈리나, 키릴 오를로프, 이렌 조르지아제, 장 피에르 베르나르디, 월도 블런트, 러키 루치아노, 하워드 드 뤼즈, 존 길버트, 장 심티, 마벨 도나위, 프레디 하워드 드뤼즈, 클로드 하워드, 로베르, 앙드레 빌드메르, 페드로 맥케부아, 루비로사 포르피리오, 오르주 스테른, 주비아 시라노, 지미 페드로 스테른, 레옹 반 알엔, 드니즈 쿠드뢰즈, 알레그 드 브레데, 장 미셀, 망수르, 호이닝겐 후네, 알렉 스쿠피, 자크, 드 스베르, 카안 부인, 키릴, 보브 베송, 앙이 위베르누아, 조르주, 자클린, 앙드레 카를, 캉팡 부인, 프리부르...’

이 안에 기억 잃고 그 기억 찾아가는 주인공 한 명 있다.

차라리 우리나라 이름이면 나았을까. ‘이종혁, 송중기, 안재현, 양세종, 공유,...’ 이런 식이면 얼마든지 흐뭇하게 상상하며 읽었을 지도 모를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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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품던 가슴이

이젠 희끗한 외로움을

아이인양 품고 지낸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거라

함부로 말하지 마라

 

세월이 섞인 외로움은

고고한 소나무가 되지만

눈물이 섞인 외로움은

서러운 독을 만들어낸다

 

오늘 뭐 하셨어요

밥은 잘 챙겨 드세요

날 좋은데 산책 갈까요

전화로 오가는 일상이라도

함께 걷는 한걸음이라도

따뜻한 손길 한 번으로도

해독제로 충분히 녹아들 텐데

 

당신의 무관심으로

독은 점점 차오르고

당신을 품던 가슴에

서서히 퍼져나가니

 

고독사는 투명한 독사다

 

 

* 2018. 10.  N글짓기 공모전(주제 : 노인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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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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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은 몇 걸음을 걷다 이내 덮어지곤 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첫 페이지는 아마 대여섯 번도 넘게 읽었으리라. 스스로 묻고 싶었다. 왜 나는 이 책을 번번이 사양하는가. 지루해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명쾌하고 가독성이 좋으리라는 예상은 두 세 페이지면 충분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p57)’ 울화는 아니더라도 내 주춤거림의 원인은 불안이었다. 1969년생. 그와 나는 동갑이었으므로. 읽고 나서 다가올 느낌에 지레 겁이 났던 걸까. 너무 좋을까봐. 같은 세월동안 살아온 나는 뭐했나 생각이 들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불안이라는 명제로 어떤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361페이지의 지면에 담겨있을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불안을 앞질렀던 모양이다.

 

과학적인 탐구활동을 한다면 저자는 A+ 를 받았을 거다. 철학이나 문학, 역사를 담아 문장을 표현하는 방식이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다. 원인을 분석하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해법을 제안한다. 역사적인 근거를 곳곳에 제시하여 주장에 무게감을 싣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불안의 원인은 결국 지위에 있다. 사회에서든 가정에서의 지위이든 불안정적인 위치는 불안을 끌어내고 이는 곧 다양한 욕구로 이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불안의 원인은 5가지이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에 대한 서술이 마음에 남는다.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p29)’ 나에게도 속물근성이 있다는 생각에 반성을 한다. 전업 작가가 아닌 저자의 이력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직업에 따라 속물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나서이다. 똑같은 책이라도 카이스트 교수나 의사가 썼다고 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한다던지 하는 선입견 말이다.

해법 역시 5가지로 제시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불안이라는 명제와 별개로 해법에 제시된 문장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스며든다.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략) 그 이유를 보여준다.(p171)’ 시각적인 예술, 특히 미술은 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한다. 여러 음이 복합적으로 중첩된 하모니 같기도, 여러 빛이 합성되어 보이는 백색 같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멜로디나 내안에서 꺼낸 그림을 얹는다.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예술 작품이 각기 다른 의미를 안겨주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동기와 행동을 깊이 탐사하는 영역(p199)’ 미술 작품에 특히 잘 들어맞는 정의이다. 사진은 빛과 함께 작업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영역이 되지만, 내 마음은 그림에 조금 더 치우친다. 간혹 화가의 붓끝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상상을 한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붕 뜨는 기분이 좋다.

언젠가는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으려한다. 우리는 자신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그는 말한다. 곳곳에 언급된 사상이 꽤나 매력적이다. 이에 관련해 저자는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p247)’는 통찰적인 견해를 보인다. 마르크스의 사상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p256)’라는.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감이 있지만 간혹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는 문장을 보면 공감하게 되는 생각이 의외로 많다.

홍세화 선생님은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생각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p271)’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생각에 의해 움직이는 아바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남궁인의 <만약은 없다>를 읽고부터였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든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중략)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p276)’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매순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며 살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보헤미아 기질이 있는 가보다. 다섯 번째 해법으로 언급된 보헤미아부분을 순식간에 몰입하며 지난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던 책 <월든>이 등장한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p337)’ 소로우의 삶은 상상만으로 머릿속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드는 느낌이다.

저자는 불안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의 팁도 제시한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것일 수도 있다.(p297)’ 가슴이 탁 트인다. 책장을 넘기자 두 페이지에 걸쳐 <나이아가라 폭포>가 펼쳐진다. 산다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확 다가온다. 1차원 평면의 느낌으로도 사이다를 마신 듯 후련한데 입체로 보면 어떨까. 가장 좋은 카메라, 인간의 눈으로 웅대한 자연을 담는 순간은 얼마나 경이로운 벅참으로 가슴을 채울까.

 

바빠질 것 같다. 거대한 공간도 여행하고, 예술작품도 감상하고, 읽고 싶은 책도 주문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생각하며 살다보면 불안할 틈이 없겠다.

넘어가는 책장이 많아질수록 쓸데없이 불안해했음을 깨달았다. 나이만 같았다. 그의 지적인 성취는 아주 먼 곳에 있어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p148)’ 철학적인 해법에 나온 문장이다. 나노 수준으로 집요하게 대조해본다면 내가 그보다 나은 점이 한 가지쯤은 있지 않을까. 나는 다른 종류의 보석일 테니. 이렇게 생각하니까 불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p157)’ 친구로 불리는 줄도 모를 알랭이는 먼 나라 동갑친구에게 숙제 하나를 던져주었다. 내가 독특한 보석이듯 너도 어떤 빛깔을 내는 보석인지 스스로 바라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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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언저리 기다란 방 한 칸엔

구멍난 비닐 천장 투둑투둑 물이 샜다

매일이 태풍이었다 마음에 불어닥친

 

세상 잡고 안간힘 휩쓸리던 아버지

밤중까지 세상 안고 동동대던 어머니

태풍은 십년을 불며 그 집에 머물렀다

 

너희들 보고 산다 희미하던 햇살은

두 팔 벌려 손끝까지 사남매를 둘러쌌다

태풍의 눈이었을까 당신들의 우리는

 

 

* 2018.10.13. H시조백일장(글제: 태풍), 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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