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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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재난 문자 왔는데, 밖에 나가지 마세요.” “다 저녁 때 나갈 일 없지. 근데 퓨마가 뭐냐?” 지난 달, 동물원이 위치한 장소와 같은 동에 사시는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대전, 동물원, 퓨마. 세 단어가 순서쌍으로 번갈아 조합되어 인터넷 실검 1위부터 10위까지를 몇 시간동안 도배한 날, 자신의 존재를 많은 이들에게 알린 동물은 생애 첫 자유를 4시간 반 동안 누리고 8년의 생을 마감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p198)’ 작품 해설에서 축사란 말이 언급되어서일까. 뜬금없이 지난달에 있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나의 아이들이 오버랩 되어 마음을 잡아당긴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p11)’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미래를 설명할까. 이 땅에서 너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공부, 글짓기, 그림그리기, 리코더 불기. 좋아하기도 했고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잘하는 축에 속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는 짐짓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토록 잘하는 것이 많은데 나중에 뭐를 하면서 살지? 4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미술이나 음악 계통을 전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어릴 때 살던 동네에 가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살던 곳이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스러웠다. 쓸데없는 우려였다는 건 몇 걸음 채 걷지 않아 드러났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면 번쩍이지는 못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흔히들 하는 말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동네의 진입로만 포장되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골동품 같은 집 안에서 낡아가고 있었다.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p103)’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던 건지, 그곳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에서였는지, 이 모두가 섞인 이유에서였는지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친정아버지께서 사업 실패로 10년 남짓 집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파출부, 공양주, 식당서빙, 공장 일부터 자잘한 일감까지 얻어 오셔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일을 하셨다.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p125)’ 어머니가 떠올라서 울컥한다. 실업계를 갈까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을 넘어, 과외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버텼던 대학교를 넘어, 졸업하자마자 취직하기 위해 통신공사 공부를 하던 대학교 4학년을 넘어, 마음을 바꿔 임용고시를 보았다. 그리고 27년 째 이 자리에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는 기본적인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은 없으니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빨리 돈을 벌게 해야지 없는 형편에 자식들 4명을 다 대학에 보낸다고 이상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디뎌온 덕분에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아 종종 나는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나태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어머니의 40대50대를 생각하며 나를 추스른다.

 

이제 나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간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어쨌든 큰 딸은 올해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고 두 달의 인턴생활을 거쳐 10월부터 정식 출근 중이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금융회사를 다니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호주로 떠난 20대 청춘. 나의 아이가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영화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닥치게 될 수많은 불합리에 넘어지거나 힘겨워하지 않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뒤엉켜서 취준생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이 상황이 마음 편하게 좋지는 않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다. 주말에도 학원을 몇 탕씩 뛰며 제대로 쉬지 못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모의로 진행하는 UN 행사에도 참여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장애인 단체에 봉사활동도 참여한다. 순수하게 좋아서 참여하는 마음도 있지만 썩 괜찮은 생기부를 구성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지금도 피곤함을 안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걸어가는 이 아이 앞에 어떤 커다란 장벽이 가로놓일지, 그것이 노력으로 넘을 수 있는 종류의 고난인지, 혹시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길은 아니었는지.

벼룩에 대한 실험이 있다. 벼룩이 뛸 수 있는 높이를 계속 제한하면 나중에 높이를 확장한 공간에 두어도 늘 뛰던 높이 이상을 뛰지 못한다는. 곰곰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결과이다. 계속되는 좌절로 혹시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이가 되어 버릴까봐, 책표지 그림의 제목처럼 <방향도 목적도> 갖지 않게 될까봐, 나는 그게 겁이 나는 거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 속에서 나는 그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p200)’ 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녀가 진짜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한국을 벗어나 호주로 떠나서가 아니다. 호주에서의 삶이라고 딱히 무지개가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 생각의 방점은 바로 스...에 찍힌다. 어디에 있든 그녀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걸어갔다는 점이다. 그 자발성이 행복을 자라게 하는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줄기와 잎이 사그라지는 혹한이나 혹서기가 다가와도 다시 새순을 돋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 말한다.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p184)’ 뭔가를 성취했다는 기억으로 만드는 행복과 순간순간을 살면서 만드는 행복이다. 나는 어느 쪽일까. 두 가지 다 중요하지만 현금흐름성 행복이 더 크다. 주인공과 같다. 나 역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적어도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p186)’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퓨마 호롱이4시간 반은 어땠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 마음이 아픈 사건 아닌가. 이렇게라도 생각하기로 한다. 문이 열렸을 때 우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스... 자유를 찾아 걸어 나왔으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유로 잠시나마 행복했으리라, 행복했기를 감히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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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내게 묻다 - 당신의 삶에 명화가 건네는 23가지 물음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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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해서 펼쳐든 책에 대한 예전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몇몇 그림은 좋았지만 결들인 글들이 몰입을 방해해 도록을 사느니만 못했다는 씁쓸함을 안았던 기억이다. 요즘 들어 피곤한 날들이 이어졌다. 특별히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유달리 몰려드는 피로감에 점점 무기력해졌다. 재미가 없어.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단조로운 음으로 만들어진 배경음악이 깔렸다.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갈라진 강처럼 마음은 원인모를 갈증에 시달렸다. 가슴이 뛰지 않아. 사람이든 일이든 두근거리는 대상이 지금 내 앞에 없다는 것. 견디기 어려웠던 건 바로 이것이었다.

기대감이 제로인 상태에서 읽어서였을까. 기차여행을 하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는데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난 듯 신선한 책이었다. 무엇을 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날이 계속 되면 비행기 표를 끊고 먼 나라 미술관으로 여행을 간다는 <프롤로그>에 호기심이 일었다. 시선을 끈 부분은 무엇을 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날이라는 문장이었다. ! 요즘 내 상태와 싱크로율 100%인 표현 아닌가! 미술관을 순례하는 테마 여행이라. 콘서트나 뮤지컬의 현장으로 나를 데려다놓는 방법을 시도하곤 했는데 미술관도 꽤 멋진 공간이라는 생각에 이런 여행도 괜찮겠다 싶었다. ‘자기 발견의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설고 새로운 상황과 처지에 스스로를 던져놓고 그 반응을 살펴보는 것(p70)’이란 말에 공감했다.

 

저자는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이 책을 뚫고 나와 나를 툭툭 건드렸다. , , 관계, 마음의 네 파트로 나누어 관련된 그림과 함께 독자에게 물었다. 살아가면서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스스로 질문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많은 질문이 던져졌다. 인터뷰이가 되어 책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공간에 나만의 대답을 올려놓았다. 때로는 자신 있게, 때로는 고민하며 나만의 답을 떠올렸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질문은 에 관련된 물음이었다. 옅어지던 일상의 색깔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Part 1, 나라는 물음표>에서는 당신을 설명하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떠올려보세요.(p61)’라는 질문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를 설명하는 단어라... 나를, 나를. 50, 과학교사, 어깨보다 조금 긴 머리, 딸 둘의 엄마, 엄마의 둘째 딸. 외형적인 것이나 객관적인 데이터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더라? 글쓰기, , , OST, 로코 드라마, , 콘서트, 베이스 기타소리, 드럼 소리, , 시리우스, 바다, 만화, , 핑거스틱, 케잌 위의 크림, 호박잎, 청국장, 그림, 클림트의 키스, 보라색, , 중저음의 목소리, , 제트스트림 1.0 파란색 볼펜, 엘라스틴 샴푸, 베이비파우더 향, 카리스마, 유머, 하늘, 햇살.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Part 2, 일이라는 물음표>에서는 지금 하는 일은 어때요? 재미있어요?(p88)’, ‘당신은 왜 그 일을 하나요?(p89)’라는 질문에 답을 했다. 지금 하는 일은 재미있는 것 하나, 재미없는 것 하나씩이예요. 직장 일은 재미없고, 퇴근 후에 글 쓰고 책 읽는 일은 재미있어요. 직업은 서글프게도 생계유지를 위해 하나 봐요. 의욕이 급격하게 떨어진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글 쓰고 책 읽는 일은 그냥 좋아서 하구요. 그저 좋다는 이유로 하는 일만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Part 4, 마음이라는 물음표>에서는 나는 나를 위해 꽃을 사본 적이 있던가?(p272)’라는 질문에 아니요.’ 라 답한다. 친구의 생일이나 각종 축하를 위해 꽃을 선물한 적은 많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나를 위한 꽃은 단 한 송이도 없었다. 조만간 꽃집에 가야겠다.

 

자기만의 방에는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없어야 한다.(p187)’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설정하고 나서 가방 속에 넣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때문이다.

9월 말부터 지난주까지는 삼행시부터 시조, , 독후감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모전에 글을 응모하였다. 1학기가 지난 후에 올해의 목표를 점검해보니, 글쓰기대회에 한 번 밖에 안 나갔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 노출되면 안 된다고 하여 결과가 발표되면 올릴 작정으로 저장만 해놓고 스탠바이 중이다. 아침에 큰딸에게서 카카오 톡이 왔다. ‘엄마, 등교했어?’ ‘.. 출근이라고 해줘ㅋㅋ’ ‘ㅋㅋㅋㅋㅋㅋㅋ글짓기 지난주 아녔어?’ ‘떨어졌떰ㅠㅠ 2ㅠㅠ’ ‘오구오구, 고생해써.’ ‘이제 7개 기다리는 중.’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하나는...^^’

뒷부분에 생략된 딸의 말은 뭐 하나는 건지지 않을까?’정도일 거다. ‘아기는 걸음마를 배울 때 평균적으로 2천 번 넘어진다고 해.(p119)’ 지난 주 발표결과로 잠시 좌절했지만, 이 문장을 보고 힘을 얻는다. 과학을 전공한 내가 근본도 없이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아가만큼은 시도해줘야 하지 않겠냐며.

떨어진 글을 공개한다는 것은 다소 뻘쭘한 일이다. 상 받은 것만 기분 좋게 올리고 싶던 것도 사실이다. 실패한 글, 서툰 글도 모조리 올린 것은 모든 경험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이다. 무모하지만 계속 도전하다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울리는 온기어린 글을 쓰는 멋진 사람이 되리라 기대한다. ‘하나의 없음을 용기 있게 드러낼 때, 누군가의 없음이 반응하기 때문이다.(p25)’ 이런 글도 라 말할 수 있을까. 알라딘 서재에 시를 업로드 할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이 문장으로 힘을 얻는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고 시를 써볼 용기를 얻을 지도 모르므로.

 

<Part 3, 관계라는 물음표>에서는 대화에 관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대화를 할 때, 내가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문장은 (중략) 3인칭 주어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중략) 1인칭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와 마주하고 앉은 눈앞의 그대다.(p215~217)’ 이 문장을 읽고 난 다음 날에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3인칭 주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보였다. 계속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친구도 떠올랐다. 대화 장면을 떠올려보니 1인칭과 2인칭이 주를 이루었고, 대화의 끝에 나의 생각을 자주 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에 대한 취향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가. 예전에는 풍경화가 좋았는데 인물화의 매력이 확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그림은 인물화이다. 저자의 해설을 따라, 혹은 나름대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았다. 고요함과 다이내믹함과 장조와 단조의 느낌이 다채롭게 뿜어져 나왔다. 뒷모습조차 표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소개된 그림 중에는 걸음마 하는 아기를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First Steps>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요즘은 꿈틀거리는 선과 따스한 색채가 좋아지나 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 나갈 삶의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많은 문장들이 비타민제가 되어 기운 없이 비틀거리던 마음에 조금씩 힘을 실어주었다. 그림에 관한 책인데도 인용된 문구가 좋아 읽어볼 만한 책을 소개받는 기분도 들었다.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를 읽고 싶은 책으로 메모했다. 인문학적인 사유가 담긴 글들이 그림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림은 다만 거들 뿐이었다.

특별해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해서 특별해졌음을.(p344)’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지만 이 문장이 가장 좋았다. 이 생각 저 생각 일관된 주제 없이 적힌 독후감이지만, 이 글은 기록되면서 나만의 느낌이 담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글로 특별해졌다.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 준 이 책처럼. 시를 쓰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냥 스쳐 가면 잊힐 새벽 3시가, 날 좋은 일요일 아침이, 서운하거나 상처받은 순간들이 시에 담기는 순간 사진에 담기듯 저장되었지. 글로 붙잡히면서 날카로움은 더 이상 내 심장으로 날아들지 못했고, 따스함은 심장 너머 주변의 공기로 오랜 시간 머물렀다. 가슴이 조금씩 다시 뛰기 시작했다.

 

p327, 돗단배 돛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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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8-10-09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궁금했었던 책인데 덕분에 갈피를 잡았습니다. 이번달 책주문 할 때 같이 주문하기로 했어요. 고마워요 ^^

나비종 2018-10-09 02:09   좋아요 1 | URL
글과 그림의 균형이 잘 맞는 책입니다. 각각의 주제에 들어맞는 그림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구요. 저는 좋았습니다^^
 

따끈한 은하수를 꿀꺽꿀꺽 삼킨 아가

까르르르 별을 품고 엄마로 자라났지

그 하늘 떠오를 때면 별방울이 또르르

 

 

* 2018.9. HM 백일장(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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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파 천원 무도 천원 큼지막한 손 글씨 앞

들었다가 놓았다가 지나쳤다 다시 왔다

소복이 담긴 시간에 불룩해진 장바구니

 

 

*2018.9. 가을 B 시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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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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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둑 뚜둑! 기지개 한 번에 관절이 존재를 알린다. 크게 펼친 두 팔. 손가락 끝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새삼스럽다. 쭉 늘어난 몸에 생긴 느슨한 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민다.

 

매일 뭔가를 쓰기 시작한지 이십일 째다. 독후감을 한 편씩 쓰는 게 이상적인 그림이지만,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불가능의 영역임을 안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독후감은 나의 속도로 쓰고, 책을 읽는 중이면 주로 시를 쓰기로 했다. 날마다 하는 생각의 기록, 일종의 시 일기랄까. 초라한 작품들이 난무했지만 무모한 도전은 그런대로 이어지는 중이다. 감히 작..이라 명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바탕 위에 우뚝 설 위대한 작품이 언젠가는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시적인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책을 만났다. <은유의 힘>은 은유에 대한 임금님 수라상이다. 외국 시부터 우리나라 시에 이르기까지 상다리 부러지도록 다양하고 고급 진 은유가 그득하다. 책을 읽어가면서 시를 짓다보니 나의 시가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듯 착각이 일었다.

실전으로 적용해볼만한 팁도 발견했다. ‘대상과 은유 사이가 벌어질수록 은유의 효과는 커진다.(p31)’ 좀 더 멀리, 더 멀리. 이 문장을 읽은 후로 나의 시에 반영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식상한 표현은 저리 가라! 새로운 시도를 찾아야 해. 나만 표현할 수 있는 팔딱거리는 횟감이기를. 마음을 조금씩 스트레칭 했다.

 

시인이 할 일은 이름이 없는 것의 이름을 부르고, (중략) 이를 세상에 표현하는 것이다.’(p5, 살만 루슈디) 이름 없는 것의 이름을 부른다는 문장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버스, 아파트, 우산, 목백합, 꽃병, 어머님, 아이들, 친구. 사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들과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고 문장으로 나타냈다. 폐지 할아버지, 청소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노점상 할머니. 존재에 걸 맞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대상들이 새털구름이 되어 마음속에 둥둥 떠다닌다.

좋은 시란 어떻게 태어나야 하는지 답을 얻었다. ‘시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꺼내는 것이다.(p18)’, ‘은유는 대상의 삼킴이다.(p31)’ 나를 둘러싼 다양한 몸짓들이 순간적으로 들어와 마음속에서 버무려졌다. 때론 선명하게, 때론 뭉글하게, 뾰족하거나 포근한 향기를 내며.

 

시로 표현하는 대상이 내안에서 새롭게 탈바꿈되어 나온다면, 나의 시들은 누군가에게 눈물이기를 바랐다. 울고 싶어도 맘껏 울지 못하는 이에게는 펑펑 흘러내리는 눈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에게는 맑게 솟아오르는 눈물로, 홀로 감싸는 두 팔이 유일한 위안인 이에게는 가만가만 떨어지는 눈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당장 목마른 사람에게 바다를 줄 필요는 없다. 그에겐 차가운 물 한 잔이면 족하다.(p172, 울라브 하우게)' 생명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물은 아니더라도 대신 흘려주는 눈물 한 방울로 작은 토닥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두 가지가 불편했다.

첫째, 시도 은유, 해설도 은유. 기발한 은유는 철철 넘치는데, 저자가 시인이다 보니 소개하는 시들에 대한 해설까지 온통 은유라서 꾸역꾸역 소화하려다 배탈이 날 지경이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 내 눈은 몇 번씩 왕복달리기를 하며 헉헉 댔다.

둘째,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노시인에 대한 존경이 담긴 문장들이었다. 20177월에 출간된 책이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 발생 전이다. ‘삶과 시가 각각의 길로 따라 가지 않고 동일한 궤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p269)’는 문장으로 설명된 존재와의 괴리감을 느꼈다. 삶과 일치하는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직은 뱁새라서 종종 가랑이가 찢어지거나 우두둑 굳은 뼈 벌어지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너무 거리가 벌어져서 당최 무슨 풍경을 묘사한 건지 알기 어려운 미스터리 시도 가득했다. 하지만 스트레칭을 자꾸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유연해졌다. 벌어진 마음의 틈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은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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