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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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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한 산문. 부상당한 천사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독이는 문장들이 시처럼 이어졌다.

학창 시절, 나는 수필을 좋아했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내가 왜 이 사람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을 좋아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식상해질 무렵 다큐적인 글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편지조차 쓸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만한 것이 없다며 시에 빠진 적도 있다. 한동안 시를 직접 써보자며 무모하게 매달려 있다 너무 산문 같다는 자괴감에 잠시 포기했더랬다. 그러다 하이쿠에 관한 책을 접한 후, 정형시에 매력을 느꼈고, 평소 노래를 좋아하기에 작사에 도전해보고 싶어 되도 않는 시를 계속 쓰는 중이다. 문학 장르에 대한 내 호감도의 대략적인 변천사다.

산문에 매력을 느낄 줄은 몰랐다는 얘기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카덴차의 개인적인 끄적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동안 접했던 작가의 작품 중 이 책이 가장 좋았다. <물의 연인들>에서 표출된 사회의식과 <발원>에서 드러나는 대상을 향한 묵직한 사랑이 잘 버무려진 느낌이다.

 

문학은, 문화예술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절망의 자리에 남아 있는 단 한 톨의 씨앗에서도 생명의 온기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p9)

‘ '자살 방지'가 초점이 아니라 '고통의 이해'가 초점이어야 진짜 캠페인이 되는 것 아닌가./ 고통의 이해. 문학의 몫. 말 그대로의 공명./ 진정한 내적 변화의 가능성은 공명하는 순간 없이 오기 힘들다.’(p126)

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를 생각해본다. 한 편 한 편의 짤막한 글에는 아프다고 외칠 수조차 없는 이들의 고통이 담겨있는데, 이들의 외침을 공감하고 대변하려는 작가의 따스한 노력이 감동적이다. 대부분 한 페이지로 서술되어있는데, 사회적인 사건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한 페이지로 이리도 적절하게 표현해낼까 감탄하고 제목의 적절성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산문을 시처럼 쓰는 사람이구나. 현대사적인 사건들이 함축적인 시처럼 그려진 글이다.

 

그녀의 문장은 부드러운 듯 직선적이다. 통쾌하고 깔끔하다.

그러므로 산문 쓰기를 시나 소설 등의 본격 장르보다 잡문취급하는 어떤 경향에 대해 나는 단호하다. 잡문은 없다.’(p9)

분급이라는 말. 근래 들어본 가장 끔찍한 단어이다.’(p16)

‘ '오죽하면'에 떠밀린 죽음은 타살이다.’(p17)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라니’(p18)

당연한 일을 위해 너무 많은 수고가 필요한 사회’(p41)

아프면 먼저 울어야 한다.’(p169)

 

그녀의 문장은 또한 선동적이기도 하다. 읽는 이에게 무슨 행동이든 하라며, 그래야 하지 않겠냐며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언제나 말할 때는 지금이며, 행동할 때는 지금이다.’(p32)

온 힘을 다해 1보를 걷는 오늘의 행위가 오늘의 진심이다.’(p60)

약자의 무기는 연대다.’(p171)

백만 마디 말보다 한순간의 숨결, 따스한 포옹이 일상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살림'은 그런 공감과 따스함으로 힘을 얻어 움직인다.’(p199)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냐며 스스로의 생각에 변화를 주어야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p60)

저마다 하나씩의 우주인 우리도 서로에게 각각 알맞게 우러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 맛 우러나는 사람! ’(p256)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폴 발레리’(p9)

 

표지를 바라본다. 처음 보는 순간 새를 연상시켰던 천사의 눈물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겉표지를 걷어내고 연두색 바탕에 웅크리고 있는 천사를 바라본다. 파울 클레의‘It weeps’란 제목의 천사이다. 눈물을 흘리는 천사라. 가냘픈 전체를 보기 위해 표지를 걷어낸 손짓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작은 걸음이 필요하리라.

책꽂이에 책을 꽂다가 제목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는 것을 발견한다. 잠시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이 책의 왼쪽에는 아마도 숨겨진 또 하나의 제목이 있었을 거라고. <부상당한 천사를 바라보는 당신에게>라는.

 

온 힘을 다한,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날갯짓. 책갈피 사이에 곱게 접혀있던 나비 날개가 책을 펼칠 때마다 활짝 펼쳐지는 듯했다. 그것은 336페이지를 건너온 나비 효과처럼 마음속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잡념 없이 100퍼센트 밥 먹고 잠잘 땐 100퍼센트 잠자기. 100퍼센트 슬퍼하고 100퍼센트 즐거워하기. 100퍼센트의 순간이 많은 인생이라면 자기가 만들어온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등불처럼 영혼을 인도하겠지. 봄날 나비의 100퍼센트 날갯짓처럼! ’(p275)

 

 

* 눈에 띄었다..

p91, 마지막 문장 : 마침표가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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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글이 대중에게 인정받는다면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고 하는 겸손한 자세를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

나비종 2016-05-30 17:38   좋아요 0 | URL
스스로 생각하는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족도 같은 거요.
또, 대중에게 인정받기 전까지 스스로를 토닥이며 글을 써나가는 인내심도요. 자꾸 초라해지는 가운데 자신감을 갖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가 만만치 않다는ㅎㅎ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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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무릎을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새하얀 봄꽃을 한참동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주위는 온통 고요한데 숨죽이며 지켜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그마한 외침. 핸드폰 렌즈로 담아 봐도 좀처럼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 가까이 렌즈를 대고 본다면 이런 사유를 끌어낼 수 있을까. 멀리서 보았을 때 모래 알갱이가 흩어진 듯 보여도 작은 별의 경이로움을 숨겨놓은 별꽃, 마음은 나태주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비로소 짐작할 수 있는 대상인가 보다.

 

차는 사람의 마음에게 주는 음식이다. (p24)’

작가의 말처럼 마음은 차의 본질에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찻물이 우러나듯 그 향기를 드러내는 것 같으니. 두껍지 않았는데도 오랜 기간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간혹 운율이 느껴지는 단어에 개념을 구겨 넣는 듯 억지스러움이 보이기도 했지만, 시처럼 짧은 문장과 켜켜이 여백에 담긴 생각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p21)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p133)’

다른 책 안에 기술된 유리에 대한 생각에 매력을 느껴 구입한 책이었다. 지층을 연상시키는 표지처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마음을 정밀 묘사를 하듯 세밀하게 정의한다.

 

마음에서 무언가 사라지길 원해서 우리는 말을 하는 걸까. ’(p141)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마음에 무언가 간직하고 싶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을 홀로 마음에 둔 사람은 그를 오랜 시간 간직하고 싶어서 말을 할 수 없는 걸까. 작가가 한 말을 뒤집어 보고, 다른 경우도 생각해보았다.

 

오랜 시간을 읽다보니 의기소침한 순간도 찾아왔는데, 이 책에 나온 몇몇의 문장은 따스한 이불을 덮듯 많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슬픔은 모든 눈물의 속옷과도 같다. ’(p78)

위로란 언제나 자기한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형태대로 나오는 것이다. ’(p152)

우울. . 어떤 것을 맛보아도 이게 아니었나 여겨진다는 점에서, 마음이 식욕을 잃어버린 상태’(p309)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본 표현들이 오히려 마음을 토닥이는 데에는 더욱 적절했다.

 

입이 심심할 때에 먹을거리를 찾듯이, 마음이 심심할 때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는다. 음악을 듣든 산책을 나가듯 친구를 만나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한다. ’(p95)

마음이 허전할 때는 주로 음악을 크게 듣거나 심심해라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심심하다는 말은 내 방식으로 의역하면 외롭다는 말이다. ‘마음이 심심하다는 작가의 표현을 마음이 외롭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언제나 두 개의 당신을 견딘다. 당신이었던 당신과 당신인 당신을. ’(p34)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당신이었던 당신이란 말이 먹먹하고 슬프다.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p57)

나는 소중한 존재일까, 중요한 존재일까 생각해보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대입해본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고도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치르지만’(p62)

어렸을 때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면서 저걸 스스로 다려 입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깨끗한 집안 뒤에는 그림자처럼 일하는 어머니의 손길이 숨어있듯이, 내가 누리는 편안함 역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자리 잡고 있겠지.

 

가끔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새벽은 고요하게 빛나는 푸른 호수와 닮아있다. 그 시간에는 고운 빗자루로 방을 쓸어내듯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곤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새벽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음이 칠흑일 때, 차라리 마음의 눈을 감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길 차분하게 기다린다면, 그리곤 점자책을 읽듯 손끝으로 따라간다면, 이내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p31)

수많은 새벽이 담긴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그마한 풀꽃 사진을 찍듯 조심스레 들여다보며 마음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듯 구석에 자리 잡아 뽀얗게 먼지가 일던 마음까지 정돈되는 듯 개운했다.

 

 

* 개념의 오류가 보인다.

혀가 앞부분으로는 짠맛을, 뒷부분으로는 쓴맛을, 옆 부분으로는 신맛을 감지하고 전체로는 단맛을 감지하듯이...’(p36)

과거에는 혀의 부위별로 각각 다른 맛을 느낀다고 알려져 과학교과서에도 그렇게 실려 있었으나, 최근 교과서에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실제로 혀의 모든 미뢰에서 모든 맛을 감지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표현이 과거의 지식을 토대로 마음을 사유한 것임을 감안해도, 널리 알려졌던 지식에 비추어볼 때 오류가 있다. 과거 교과서에서는혀의 앞부분으로는 단맛을, 전체로는 짠맛을 느낀다고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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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층 나무 집 456 Book 클럽
앤디 그리피스 지음, 테리 덴톤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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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오묘한 느낌이다. 어린이들처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기에는 이미 마음이 복잡해진 나이. 문장 이면의 세상을 해석하고, 여느 소설을 접한 것 못지않게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이기도 한다. 예상보다 많이 담겨있는 정서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어른에게 동화는 단순하지 않다.

 

한동안 외국 소설을 멀리 했다. 내 정서와 동떨어진 느낌을 받아서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인 정서를 갖는다는 말도 그 즈음 접했던 고전이나 소설 속에서는 힘을 잃었다. 웃기라고 한 말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부분이 웃음의 포인트인지 난감해하곤 했다.

알록달록한 겉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부실할 지도 몰라.’ 슬금슬금 고개를 내미는 선입견에 책 주문이 망설여졌다. 에라, 모르겠다! 반응이 썩 나쁘지 않으니 13층의 2탄으로 출판된 거겠지. 어린이 독서모임 도서로 이 책을 정한 것은 모험에 가까운 결단이었다.

 

결론은 상상 이상이었다. 요즘 나름 상상력이 괜찮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기발한 전개는 어설픈 자만심을 가졌던 나를 겸손한 인간으로 변모시켰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분홍 손잡이의 31가지를 넘어서는 78가지라니! 두 번째 읽었을 때 깨달았다. 차례가 나오기 전 페이지에서 주인공이 들고 있던 것이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을. 거대한 공룡 뼈다귀를 발견해서 꼬리를 붙들고 있는 장면인 줄 알았더니. 다시 보니 혀를 내밀어 맛을 보는 모습이 이제야 보인다. 작가는 숫자 13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13, 26, 39, 52층으로 13층씩 더한 것도 그렇고, 아이스크림조차 136배수 아닌가. 설마 78가지를 다 묘사했을까 세어보았다. ! 그는 진정 치밀한 인간이다.

그림을 그린 이는 또 어떤가. 질과 함께 사는 동물들을 세어보았다. 고나리아도 정확히 13마리, 묘사된 모든 캐릭터가 다큐처럼 빠짐없이 그려져 있다. 말줄임표로 대충 흘려버리는 적당히가 없다. 빙하 위로 탑을 쌓았던 동물들의 마리 수도 모두 내용과 일치한다. 글만큼이나 그림도 대단히 섬세하고 매력적이다.

 

테리, 앤디, 질의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부모님이 등장한다. 과보호를 하거나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아이의 관심사에 무관심한 이들. 과장된 묘사 한 가운데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들의 부모로 인해 고통 받는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인가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한다.

 

이 책이 멋진 것은 세 명의 주인공 모두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으며 서로 의지하면서 우정을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거다. 죽음에 가까운 공포가 다가와도, 죽은 줄만 알았던 선장으로 인해 곤란을 겪어도,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미로조차 뛰어드는 용기를 보인다. 함께 하기에 더욱 용감할 수 있는 모습이 흐뭇하다. 그래서 웃기는 가운데에서도 찡한 감동이 스며오는 건지도.

이야기의 전개 방식과 내용 속으로는 약간의 지루함조차 끼어들지 못한다. 치밀한 구성이다. 중간 중간 매듭을 풀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왔다 갔다 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능력이 감탄스럽다.

 

78가지 이외에 추가하고 싶은 아이스크림의 맛과 자신만의 나무 집을 상상해서 그려보라는 내용을 토론 자료에 넣었다. 책을 덮고 나만의 나무 집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머릿속이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해지는 듯했다. 마음이 상쾌해졌다. 심각하고 어두웠던 감정도 햇살을 받아 날아가 버리는 물처럼 어느새 증발해버렸다. 지쳐있던 삶의 꽃을 다시 되살리는 물과 같은, 이런 게 동화가 주는 힘인 걸까.

 

 

* 오타 추정

p55 그림 설명에서, 하늘을 나는 고양이/카나리아 고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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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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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시작되었다. 2권을 구입했고,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마음의 서재로 조심스레 나를 두드렸던 작가는 공부할 권리로 자그마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상처는 대개 가까운 데에서 받기 마련이다. 쏟아지는 업무로 피곤한 몸 때문인지 섬세한 가시가 돋친 듯 감정이 민감했다. 무심코 던져진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받아 신경이 곤두섰고, 속으로 삭이고 봉인하는 과정이 반복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즈음에 이 책을 만났다. 억지로라도 지친 몸을 끌고 집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어라? 얼핏 보면 딱딱한 제목이라 별 기대 없이 펼쳤는데 내용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책장을 넘기는 나는 햇살 아래 나그네인 양 조금씩 마음의 더께를 벗겨나갔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장과 곳곳에 등장하는 멋진 그림들을 휴식처럼 감상하였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여행을 하고 온 듯 편안하면서도 울컥했다.

 

이 책은인간의 조건, 창조의 불꽃, 인생의 품격, 마음의 확장, 가치의 창조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분석한 주요 키워드는 인간, 마음, 창조이다. 인간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을 향하는 마음, 창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사물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것은 지금껏 알던 세상과는 다른 빛깔을 보여주었다.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당신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만이 진짜 끝이라고. 그 끝을 선택하는 결정권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p28)

관계의 실타래가 뒤엉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이 문장을 만난 건 어쩌면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삶을 바꾸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이나 연줄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용기입니다. ’(p31)

여러 권의 책과 저자들을 소개하면서 작가가 건네준 것은 다가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였다.

 

인간의 참된 가치는 얼마나 사랑을 받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지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p65)

과연 그가 날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그가 날 사랑하게 만들까?'라는 익숙한 질문 대신 어떻게 하면 그의 상처를 그가 모르게 어루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요.’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p333)

내게 상처가 있듯이 상대에게도 나로 인한 상처가 분명히 있을 텐데, 이제까지 내 상처만 바라보고 원망해왔던 게 아닌가, 너무 받기만을 바라왔던 게 아니었나 되돌아보았다. 이런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니 주변 사람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세상을 한 호흡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비슷한 듯 다르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는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김소연의마음사전(p161)

유리에 대한 김소연 작가의 생각은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저 평범한 유리를, 먼지가 내려앉으면 닦을 줄이나 알았지 어느 누가 유리를 보고 이런 사유를 한단 말인가!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김소연의마음사전 (p162)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여쁘다는 표현은 섬세한 감동이었고, 그 문장은 나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두 문장까지 읽고 알라딘을 찾았고, 지금 내 책상 위에 이쁘게 놓여있다. 택배 아저씨와 함께 오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도 곧 그 옆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도 관심이 갔다. 학창 시절, 정신분석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겉멋만 들어 책에 있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심리학자는 그저 프로이트 밖에 몰랐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융도 상당히 흥미가 가는 인물이다. 몇 달 전에 구입한 꿈의 해석과 함께 융의 저서도 찾아 읽어야겠다.

 

에필로그에 나와 있는 두 문장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엇이든 언어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되었다. 그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말한다.’버지니아 울프의 존재의 순간들(p350)

내 문제를 내가 쓴 글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제 3자가 되는 셈이다. 슬프거나 외로울 때 시를 쓰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스스로 마취약도 없이 내 상처를 꿰매는 멋진(그러나 조금은 엽기적인)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p346)

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치유의 시간으로 가졌듯이,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을 보냈다. 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세상에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았다.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모습대로 되고,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바로 그 사람이다.’파라셀수스(p19)

이제 나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내가 상상한 바로 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제부터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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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게 가난한 사회 - 이계삼 칼럼집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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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항상 직진만을 하는 아이였다. 30여 분 남짓한 거리를 등교할 때, 시선은 눈앞에 주어진 길만을 응시했다. 앞으로, 앞으로만 걸어갔던 아이. 함께 걷던 친구는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의 주의가 산만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나의 걸음 방식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는 건 오래지 않아 드러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학교 가는 길에 있던 문구점이나 건물이나 나무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그 문구점이 거기에 있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문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관심 분야는 잘 알았지만 관심 밖의 분야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전무했다.

 

현실 속에서 싸우거나 아픔에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미래를 위해서 희망을 위해서 참담한 오늘과 단절할 용기도 의사도 없으면서도, 말은 언제나 '미래''희망'이다. ’(p45~46)

시간이 갈수록 말이 주는 무게가 점점 무거워짐을 느낀다. 늘 그렇듯 말은 쉽다. 하지만 말 속에 담긴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회를 향한 말은 다른 이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앵무새의 외침이 되기 십상이다. 혹은 화려하게 돌진하는 말처럼 행동을 뒤로 한 말만 저만치 가버리거나. 나는 어떠했던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던 애덤 스미스가 생각났다. . 그건 힘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보이지 않는 힘이 떠올랐다. 영화 속 액체 인간처럼 사람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때로는 투명 망토를 입고 팔을 휘두르듯 닥치는 대로 힘없는 이들을 쓰러뜨리곤 하는. 자본을 등에 업은 이들은힘의 운반자들’(p43)이었다.

자본의 테두리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리는 사람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든 남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이 불의한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p48)

강해서 투쟁하는 게 아니라, 희망이 없기 때문이에요.’(p304)

시스템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다. 제 잘못이 아닌 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이다.

극심한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의미 없는 고통은 참을 수 없다. ’(p99)

많은 단어들이 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의미를 지닌 채 일어나고 있는데, 의미가 없는 고통이라니.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너는 밥 먹으러 오지?”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다 점심시간이면 생생해지는 아이. <준표 형님, 준표 형님>(p108)은 무상급식에 관한 칼럼이다. !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공감이 갔고 더욱 넓은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나라. (p114 ) 이 땅에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밀양에서 태어났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밀양의 핵발전소, 송전선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치열함,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고압선에 전기가 흐르듯 가속화되는 자본의 힘들이 세세하게 그려진다.‘자본과의 약속’(p155)이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아무런 감정도 배려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인공지능 로봇처럼 그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은 단지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다. 인용된 카프카의 짧은 소설 <법 앞에서>(p158~159)의 줄거리는 마지막 순간 마음을 섬칫하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법인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돈인가.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변에 무관심했고, 주변을 너무 몰랐던 나를. 그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으로 포장하기에는 모자란, 무책임이었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지 않도록 잘 살피고 앞서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도 둘러보기를, 넘어진 사람들이 눈에 띄면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쓰러진 풀을 조심스레 보듬고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바로 앞서 가는 어른의 몫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렵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p296)

크리족 인디언 추장이 했다는 예언이 내내 마음을 맴돈다.

 

 

*아주 사소하지만..

기 차기차(p47)

터해 있는처해 있는(p79)

건나갈건너갈(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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