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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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놈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해. 구렁이처럼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해바라기 모드로 바꿀 때마다 꿍시렁거렸다. 당연히 뱃속으로 넘어가야 할 포도 씨를 발라먹는 모습조차 쪼잔하게 보이는 순간, 500포인트의 HY견고딕체가 자리를 잡았다. 이번 생은 망했어. 그때 그 인간이 사는 이 집은 내 집이 아니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 선택의 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윷놀이 백도처럼 어느 순간 시공간이 홀라당 뒤집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아. 그때 소개를 받지 말았어야 했어. 그 얘기를 나눈 버스를 타지 말았어야 해. 화장실 한 번만 갔다가 퇴근했어도 되었겠지. 그럼 내 인생은 오줌 한 번 안 눠서 망한 거야? 버스를 타고 다닐 그 학교에 발령받지 않았어야지. 시험을 좀 더 잘 보았으면 다른 학교로 갔을 거잖아. 그럼 안 만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간의 역행은 점점 가속이 붙었다. 대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결국 다시 태어났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지경에 이르렀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죽기로 결심한 주인공 노라가 오밤중에 요상한 도서관을 만나 평행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삶들을 체험하다 살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이다. 살아보지 않은 삶들은 가지 않은 길 저편에 존재한다. 저 길로 갔더라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후회의 순간들이 매달린 미지의 삶은 매력적인 유혹이다.

소설 초반은 우울증에 빠진 사람의 심리가 담긴다. 작가는 디테일한 묘사들로 상황을 스케치한다. 20대 초반에 자살을 결심하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힘들어했다는 그의 경험담이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여성인 노라의 삶이지만 작가가 살아가면서 깨달은 마음을 적절하게 배치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각각의 삶들은 어느 하나 100%의 완벽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성공해서 좋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 세상을 위하는 일을 하게 되지만 다른 점이 부족하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꿈꾸는 생활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이내믹한 구성과 과학적인 요소가 흥미롭게 배열되어 끝까지 호흡을 놓지 않고 빠져들었다.

 

매트 헤이그가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모든 삶에는 수백만 개의 결정이 수반된다는 것,

사소한 결정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

그런 선택들이 모여 많은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

매번 선택한 건 당신이라는 것,

대상보다 바라보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 어떤 책을 읽을 때보다 지나온 삶과 현재의 나를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버게스 셰일을 뒤집어 까는 화석발굴학자가 되어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작가의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가 크게 다가와서 움찔움찔 놀랐다. 가볍게 읽을라치면 재미있게도 읽힐 책이었을 텐데. 작가의 삶과 노라의 삶과 나의 삶이 겹쳐져 묵직하게 밀려오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했다.

 

살면서 쉬웠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망했다고 투덜대던 나의 생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이제껏 주변의 탓으로 책임을 전가한 채 불평만 했던 거다. 내 선택의 결과물이었다. 그를 선택한 건 나였다. 수많은 선택을 모아 주변을 이렇게 만든 이도 바로 나였다.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로 관점을 바꿔야했다.

부사어를 바꾸어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이 사람 덕분에 인내심을 배웠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좌절로 넘어지기도 했다. 슬픔이 깊어졌다. 외로움으로 황량한 사막에 선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정도가 되었다. 다른 길을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책을 잡았다. 배설하듯 글에 마음을 쏟아냈다. 글이 너무 장황해져 시에 도전했다. 어쩌다 시조 대회에 나갔다.

사소함의 중요성은 결과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시조 대회에 응모한 예선 작품의 시작도 사소했다. 자전거, 카톡, 우연한 대화들이 사소한 연결고리로 이어졌다. 수많은 선택 중 한 가지만 빠졌어도 지금의 순간이 없었으리라. 결과가 좋아 시조시인 등단이 코앞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느린 걸음으로 주인공과 나의 삶을 병행하며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500포인트의 HY견고딕체가 다시 새겨졌다. 당신이어야만 했어.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한데 거기에는 그의 지분이 상당하니까. 나무를 튼튼하게 만든 건 햇살만이 아니다. 비바람과 폭풍, 불타는 더위, 이파리를 갉아먹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시련 끝에 오히려 단단해지는 것이니.

개피곤해도, 눈이 시뻘개질 정도로 업무에 시달려도, 퇴근 후에 기다리는 나만의 시간이 있어 스르르 넘긴다. 나의 글이 다른 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울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묘한 희열을 느낀다.

내 글이 화창한 봄날 같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봄을 심어두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길가 한구석에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를 보는 정도의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며. 나는 슬픔과 어둠의 힘을 믿는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느꼈던 다른 이의 아픔이 때론 나의 아픔을 밀어낼 수 있으니까.

 

꽤 오랜 시간, 삭아버린 밥은 추웠던 시간들로 타들어가는 발화점이었다. 40대 후반까지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컥함이었다. 심장이 제 속도를 찾게 된 계기는 백일장에서 시를 짓고 나서부터였다. ‘이팝꽃처럼 솔솔이란 글은 물먹는 하마처럼 나의 아픔을 빨아들여 시 안에 박제시켰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담긴 노라의 삶은 나의 삶을 돌아보며 계속 걸어 나가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 사소한 선택의 결과를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 책임감이 생겼다. 내가 있는 곳이 나의 진짜 삶인 거다.

글을 쓰면서 나의 삶은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다. 사소한 선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길이다. 쉽지는 않지만 걸어가고 싶은 길이기에 괴롭지는 않다. 슬프거나 외롭거나 아팠던 순간들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후회로만 채운 채 억울해할 것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내가 한 수많은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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