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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 지식과 지혜를 실천으로 이끄는 마음 여행서 ㅣ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4년 12월
평점 :
슬픈 건가. 아픈 건가. 목이 메는 건가. 적막한 안개 속을 저벅저벅 걸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축축한 감정들이 심장에서 천천히 마블링 된다. 얼마 전까지는 호르몬의 변화가 가져오는 속상함, 짜증, 화남, 답답함, 우울, 불안이 흔들리는 놀이 기구에서 삐져나오는 소지품처럼 우수수 쏟아지더니. '죽음'이라는 단어는 태풍의 눈인 양 감정의 자잘한 출렁임을 한순간에 제압해 버린다.
노인돌봄서비스 신청, 암센터 6인실 본인부담금, 폐 종괴 NOS, 3차 병원, 호스피스 병동, 혈액종양내과, 가족 돌봄 휴직, 암 산정 특례 제도, 폐암 간 척추, 87세 폐암 말기 기대 수명, 85세 유방상피내암 수술 후 예후. 제미나이(Gemini)가 해결해 주는 궁금증을 더듬더듬 따라가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5월의 핸드폰 캘린더에 '병원'이란 메모가 여덟 번이다. 태어날 때부터 삶의 마지막은 예견되어 있지만, 부쩍 다가온 현실감에 길 잃은 아이처럼 하루를 헤맨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신경 쓰인다. 분주하게 왔다 갔다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뜬금없이 축축해지는 눈가를 꾹 누른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뷔페에 음식이 다 떨어진 꿈을 꾼다. 해몽을 검색하니 '기회의 상실, 좌절, 준비 부족, 불안감, 만족감 부족, 공허함, 욕구 불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마음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지금 나의 내면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과 꿈이 전하는 메시지로 대략 짐작한다.
마음이 지치니 자꾸 잠이 오는 건가. 책을 읽으며 일곱 장에 걸쳐 메모한 종이들을 좌판처럼 펼쳐 놓아도 글씨들이 모래알처럼 심장을 구르다 달아난다. 다른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글도 쓰기 어려워 모니터로부터 거리를 둔다. 문득 달력을 보면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일주일이 후딱 지나있다. 시간이 급류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그나마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몇 주가 지나니 유속이 점차 느려진다. 글자들이 차츰 눈으로 스며든다. 나의 건조한 친구가 왼쪽 옆에 놓이고 다시 모니터 앞이다. 미지근한 온기가 마음에서 조금씩 흘러나와 모니터를 향한다. 하얀 공간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글씨들을 거울인 양 바라본다. 지금 곁에 있는 책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인 건 다행이다. 다시 펼쳐보니 처음과는 다른 문장들이 마음 위에 이불로 덮인다. 삶이, 죽음이, 세상이, 주변이, 그 중심에 있는 '의식'이 흐트러진 내면의 방을 말없이 정리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에는 지식이 나오지 않는다. 저자가 밝히는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실천을 통한 깨달음의 지혜'다. 뇌 안에 오래 저장되지도 않는 지식을 꾸역꾸역 넣고 싶지는 않기에 반가운 마음이 든다. 삶을 걸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발걸음을 가볍게 뗄 수 있는 비법을 전수 받고 싶은 바람이 커진다.
채사장은 깨달음에 닿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게 유일하다고 말한다. 그는 내면 탐구 방법을 크게 실천, 지혜, 삶의 세 영역으로 구분한다. 실천에는 '발심, 정비, 정진'을, 지혜에는 '견성'을, 삶에는 '출세, 조망, 전진'이라는 소주제를 두어 마음 여행 방법을 제안한다. 평소 그의 저서에서 보이는 장점이 이 책에도 드러난다. 주제별로 중간과 마지막에 제시되는 체계적인 요점 정리, 내용의 이해를 도와주는 간략한 그림이 효율적인 메시지의 전달을 돕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의식을 이해한다는 건 무척 난해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나의 것이 다르기에 보편성을 적용하기도 난감하다. 온 우주에 오로지 하나뿐인 나의 의식을 누구에게 물어본단 말인가. 스스로 탐구할 수밖에 없고, 탐구하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광범위한 의식의 세계를 아우르려면 내면의 크기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디테일한 분석은 그나마 덜하지만 통합적인 판단은 아직 나에게 버겁기 때문이다. "N은 전체적인 숲을 보고, S는 부분적인 나무를 본다고 구분하시면 돼요." MBTI의 두 번째 항목을 명확하게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제자가 비유를 들어준다. 사람의 성향을 16가지 만으로 규정짓는다는 건 광대한 범주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일이지만, ISFJ인 나에게는 비슷하게 맞는 듯하다.
나의 눈에 들어오는 몇 그루의 나무만을 묘사하기로 한다. 저자가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삶의 시간은 충분하니까.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면 된다는 말이 위안을 준다. 수일에 걸쳐 리뷰를 조금씩 작성한다. 한 단락씩 적어 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중이다.
요즘 종종 세상을 피해 도망가는 곳은 스마트폰 속 '유튜브'와 게임 '쥬시팡'이다.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나의 개입이 필요 없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분야만 보여주는 또 다른 세상이다. 무덤덤한 이방인처럼 그들의 대화를 보거나 오와 열을 맞춰 팡팡 사라지는 과일들을 가볍게 두드린다. 무한한 바다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실제로는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관여하는 진짜 세계의 크기는 급격히 축소되었다'라는 문장에 내 모습이 겹쳐진다.
움찔하며 '정비-주변을 정리하다'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되새긴다. 비어 있는 시간을 만들고, 나의 공간이 너저분하지 않고 단순해야 하며, 적절히 생을 유지할 정도의 생계, 마음의 고요와 평온이 지켜지는 좋은 관계를 만들라는 게 그가 제안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의지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환경의 문제'라며 본질을 짚어준다. 삶 자체가 명상이어야 한다며 일상에서의 실현을 강조한다.
모든 선택은 당신이 한다는 말은 옳다. 책을 읽는 것도, 스마트폰을 여는 것도, 커피숍에 와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이 순간의 행동도 모두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니까. 이런 순간들이 모여 하루의 삶을 채우고 있으니 내 삶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나는 이곳의 주인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중략) 긴 시간을 갖고 그것들을 나의 세상 밖으로 내버려야 한다.', '마음이 아니라 현실부터 챙겨야 한다.', '몸이 편안해지면 나의 마음이 고요를 찾고 나의 영혼도 안식에 든다.'는 문장들이 조금씩 몸을 들썩이게 한다. 한꺼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조금씩 변화시키면 '야! 너두 할 수 있다!'는 정석님의 광고 멘트처럼 변화된다고 용기를 준다.
마음을 양적 측면에서 정비하는 방법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생각의 양을 줄이라는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린다. 저자가 설명하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 공감한다. 작은 상념에 마음의 이원적 작용이 곱해져서 점점 커다란 존재자로 자리를 잡는다는 말이다.
매력을 느껴 '끌어당김'하거나 혐오에 의한 '밀어냄' 모두 삶의 고요를 방해하는 이원적 작용이다. 두 가지 요소는 연료가 되어 자꾸 불을 키운다는 비유다. 몇 달 전에 느꼈던 분노를 떠올린다. 처음에는 사소했건만 돌아보니 나는 자꾸 되새김질을 하던 소였다. 산소 같은 인간으로 빙의하여 스스로 불을 키워 낮에 일어난 사건의 시뮬레이션을 무한재생하며 복습하고 있었던 거다.
마음의 관성은 강력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알고 저자의 방법을 적용하니 반복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연료가 공급되지 않는 상념은 점차 힘을 잃고 사라지니 상념이 일어나면 그저 내버려두라는 것. 그는 또한 우리를 심연의 바다로 실어 나를 적합한 배로 침묵을 제안한다. 감정의 고통은 내가 어쩔 수 없는 파도처럼 마음의 표면에서 출렁일 뿐이고 마음의 본질적인 상태인 '고요'와 '평온'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거다.
마음의 본질의 의미를 해석하는 지혜는 4장의 '견성'에 서술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으로 다룬 파트이다. '의식'을 분석하고, 명명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온다. 가볍게 산책하다 우연히 들른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듯 인상 깊은 두 장면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의식은 언제나 현재적이라는 것이다. 신체적인 죽음을 맞이해도 다시 눈을 뜨면 다른 세상에서 여전히 살아간다는 설명이다. 수면 마취에서 깨어난 이에게 시간의 흐름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끊어짐 없이 삶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도 다만 나와의 접점만 사라질 뿐 다른 차원에서 조건만 성립하면 그의 의식은 여전히 이어진다고. 조금은 위안을 주는 관점이다. 죽음이 온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니까.
둘째, 나의 크기와 세계의 크기는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세상을 만드니 내가 경험하는 모든 세계는 내 마음이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거리를 걸으며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바라보지 않는 세상은 다른 이에게 존재한다 해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당신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분명 다르다는 말이다. 내가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세계가 있다니! 내면이 풍선처럼 확 늘어나는 듯하다.
이제는 세상으로 나아가 생과 사를 바라보며 계속 걸어가야 하는 '삶'의 문제다. 저자는 의식의 반복적인 깨어남을 안다고 이에 안주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지금 여행하는 시간과 공간을 사랑하며 어제보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라 권한다. 버리고 덜어내며 삶을 간소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다듬어가라고, 나의 의식에서 오고 가는 세계를 맞이하라고 말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내내 '의식'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어서일까. 매일 열리는 세상에서 삶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는 기분이다. 부분 스위치가 달린 기다란 멀티탭을 내면에 장착한 느낌이다. 오늘은 어떤 스위치를 눌러 하루의 풍경을 만들까. 나의 선택으로 세상은 달라질 것이니 덩달아 나의 삶도 달라지리라.
'당신은 이번 생을 여행하며 무엇을 마음에 담았는가?' 저자의 물음에 세상을 둘러본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이 나의 삶을 채운다고 여기니 좋은 풍경만 바라보고 싶다. 귀를 기울이니 새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드니 연푸른 하늘에 나풀거리는 구름이 눈으로 스며 들어온다. 세상의 풍경이 마음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면을 향하는 또 다른 눈이 있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모두 감고 침잠했을지 모른다. 우리의 눈이 바깥 세상을 향해서만 열려있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직접 목도하는 것과 추측하는 건 무게감이 다르니까. 사람 몸의 구조는 세상 앞으로 나아가 직접 살아갈 세상을 선택해 보라는 DNA의 선물일까.
사그락거리는 나뭇잎을 노란 햇살이 쓰다듬는다. 노란색 망고를 잘라드리고, 자주빛 체리를, 계절을 한껏 품은 참외를 사다 드리고 왔다. 얼마 전에는 복권에 당첨되었다며 우리 식구 모두 세계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하셨다는 아버지. 내내 품어오신 소망이 환영으로 나타난 걸까. "좀 더 놀다 가." 깡마른 몸집으로 말씀하시는 당신. "다음 주 토요일에는 우리 형제 모두 하룻밤 자고 갈 거예요." 놀이동산에 가자는 약속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누워있던 마음이 속삭인다. 나의 세상에 겹쳐진 당신의 세상이 서서히 빠져나가 다시 깨어날 준비를 하는 거라고. 당신 의식의 스위치는 꺼지지 않을 거라고, 나의 스위치가 그러하듯이. 너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흐름을 붙들고 힘들어하지 말라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커피숍 창 너머로 보이는 잎들이 초록빛 파도처럼 출렁인다. 햇살이 윤슬처럼 덩달아 출렁인다. 그 아래로 잔잔해지는 나의 세상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