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4부작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자]를 읽고 있는데 지금 당장 읽어야 할 책은 이 책인 듯 싶다.
[이탈리아 현대사 : 반파시즘 저항운동에서 이탈리아공산당의 몰락까지]
폴 긴스버그는 이탈리아 현대사의 권위있는 저자라니 책 또한 믿을만하겠지.
다루고 있는 시기도 1943~1988년이다. 소설속의 시기와 겹친다.
3권 [떠나간자와 머무른자] 초반부는 릴라의 얘기인데, 이때는 시점이 릴라로 바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레누의 1인칭 시점에서(물론 시시때때로 흔들리지만) 전개되다가 본격적인 릴라의 얘기를 하기 위해선 릴라의 시점으로 얘기를 전개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첫소설로 메가 홈런을 터뜨린 레누는 피에트로와 결혼을 앞두고 나폴리를 떠나기 전 릴라로부터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릴라는 햄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노동사를 배경으로 릴라의 전락이 전개된다.
파시스트와 공장을 반파시스트 운동과 노동운동의 거점으로 삼은 공산주의자와 좌파세력의 대결 한가운데 릴라를 위치시키고 있다. 평범한 노동자 릴라. 부르주아에서 노동자로 변모한 릴라의 의식은 인권과 노동권리를 착취하는 공장주나 이들 계급을 사수하는 파시스트들을 혐오하지만 이와 비슷한 강도로, 노동자를 교육시키고 각성시키려 하며 공장을 혁명의 거점으로 삼는 좌파인사들도 경멸한다.
릴라같은 유형에서 볼 수 있는 '경멸'. 결핍이 주는 질시에서 비롯한 경멸. 자신의 고통이 전부인. 타인의 고통에 대해선 무심하다.
이책의 시기구분에 따르면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기적'에 이은 이농과 사회변형이 일어나고 소설의 시기인 1968년과 이후 73년까지의 집단행동의 시대는 "1969년의 '뜨거운 가을', 공장 평의회 운동과 자율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탈리아'를 건설하고자 분투한 이탈리아 민중의 역사"이다. 이 시기 햄공장의 노동자 릴라를 작가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탈리아 현대사]도.
변화와 변질에 대해 생각한다. 변신이 아니라 변질 모티프.
릴라의 두려움은 '형체의 경계가 사라지는것' 이라고 번역해놓았는데, 알아왔던 모습이 어느 시기부터 괴물같은 악으로 허물어져 변질되는 인간들을 겪어온 릴라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레누에게는 기원의 두려움이 있다. 기원 혹은 뿌리. 다리를 저는 어머니가 상기시키는 기원.
자신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다리를 절게 될 거라는 어린시절 레누의 두려움.
레누는 그 기원 혹은 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노력해왔다. 그것은 나폴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꿈이고 결국 그 꿈을 이뤄냈는데 작가로서 레누는 또 그 두려움을 얼마나 떨쳐내며 달아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