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본, 112페이지.
랭보의 동생 이자벨(1860~1917)이 다리를 절단한 랭보를 간호하며 쓴 편지와 글들을 엮은 책이다.
'랭보의 마지막 여행'은 랭보가 수술 후 아픈 몸을 겨우 옮겨 파리로 갔지만 고통이 극심하여 다시 리옹으로 그리고 마르세이유로 그곳에서 다시 병원에 입원한 여정에 동반했던 그녀의 회상기록이다. 콩셉시옹 병원에 입원한 그는 다시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이자벨을 잘 알지 못하기에 랭보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순전한 호기심에서 읽었던 것인데 뜻밖에 감동을 받았다고 해야할까.
일찍 천재성을 드러내며 19세까지 시를 그야말로 쏟아내던 랭보는 스무살에 절필하고 프랑스를 떠났다.
그후 그는 어떤 시도 쓰지 않은 걸로 알려졌다. 그가 떠돈 지역들을 이자벨이 되짚을 때 그녀가 그곳들을 모두 가봤던 듯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게 놀라웠다.
그는 저 멀리 바다너머, 에티오피아 산속에서 내리쬐는 태양 아래, 뼈를 말리고 골수를 갉아 없애는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얼마나 피로를 견뎠을까.
오! 타주라에서 쇼아로, 아비시니아로 향하는 그 죽음의 여행. 그 죽음의 여행에서 그는 어떤 나쁜 숨을 들이마셨을까?
어떤 교활한 천사가 그를 그곳으로 데려갔을까?
영원한 태양에 새카맣게 타버린 바위 도시 아덴. 하늘에서 이슬이 고작 4년에 한번 내리는 아덴! 풀 한포기 자라지 않고 그림자 하나 만날 수 없는 아덴! 터질 듯한 두개골 속에서 뇌가 부글부글 끓고 몸이 바싹 타들어가는 열 건조실 같은 아덴! .. 오! 왜 너는 이런 아덴을 사랑했을까? 그곳에 무덤을 갖고 싶어 할 정도로 사랑한 거니?.
아비시니아 산맥이 길게 이어지는 하라르. 신선한 언덕, 비옥한 골짜기. 온화한 기후, 영원한 봄. 그러나 뼛속까지 파고드는 음험하고 메마른 바람도 있지.
골수를 갉아먹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메마른 바람의 탓인지 골수에 암이 발병했다.
암이 전신에 퍼져 극한의 고통을 당하는 랭보의 모습이 이자벨에 의해 묘사되는데, 랭보가 이렇게 고통끝에 삶을 마감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고통, 통증, 탈진, ... 편안한 죽음이 있긴 한걸까...
제대로 잠들지도 못하는 불면..
랭보가 일종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이자벨은 글을 썼다. 글이 그녀를 견디게 해줬던 건지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랭보는 "창밖으로 한결같이 구름없는 하늘에 뜬 빛나는 태양을 본다".
그러고 울음을 터뜨린다. 앞으로 다시는 태양을 보지 못할 거라고 말하며,
"난 땅속으로 갈테고, 넌 태양속을 걷겠지"
끊임없는 한탄, 이름 없는 절망이 이렇게 온종일 이어진다.
그는 일찍 자신이 가진 재능을 불태워버리고 미련없이 떠난 자신에 대한 회한이 있었을까?
청춘기의 작품을 계속 이어가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미쳐버렸을테니까'. '게다가 졸작이었으니까.'
이런 그에게 마지막 나날은 너무 가혹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