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인지 몸이 바로 반응하면서 지난 주는 거의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통증에 시달렸다.

차츰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비로소 책상에 앉아서 포스팅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아이 낳고 아이 땜에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며 부스스하고 찌뿌둥둥하게 하루가 언제 왔다 언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는 날들을 맞이하고 또 맞이하고 뭐 그런 느낌이다.

지금 냥이 세마리는 내방 여기 저기에서 곯아떨어져 있다.  

야행성인 이것들은 낮엔 지극히 평화스러운 포즈로 널브러져 잔다. 초저녁도 ...  으휴..

 

가즈오 이시구로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도 읽었다. 참으로 오래 걸렸다 으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건너뛰고 [나를 보내지마]를 읽을 참이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도 별로 탐탁지 않게 읽었지만 별 네개를 줬다. 그래도 살펴보는 흥미를 준다.

프루스트적 기억환기, 카프카식의 오딧세이, 모든 게 몽롱하리만큼 불분명하고 불투명해보이는 중반부까지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태도. [우리가 고아였을 때]의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2,30년대 탐정이자 4,50년대 느와르 탐정의 어둡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탐정이다. 내면이 드러나지 않고 오로지 회색빛 뇌를 사용한 관찰과 추리의 탐정과 달리 느와르 탐정은 이미 자신이 문제적 인물이다.

탐정이 찾으려고 하는 사실과 진실은 뭉개져 있고 카프카적 세계로 이끌어가는 모호함과 간질나는 헛노력이 참으로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다가 결국 종반부에는 여태 미루고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던 진실을 만나게 된다.

작가 자신이 피해왔다시피 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지막에 드러나는 얘기는 예상치 못했던 아주 통속적인 치정사 같은.

 

그러나 결국 작가가 마음에 두고 있던 건 이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필립 삼촌이 항변하는 말,

 

"우리 가운데 선택권이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 사실을 이해해야만 해."

 

이즈구로는 하루키보다 오른쪽에 서 있다.

지극히 일본적인 작가다. 전쟁이나 아시아 민중에게 가져다준 비극을 야기한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기억의 왜곡이나 모호함을 택한 것도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물론 어느 인물하나 정이 가는 인물이 없다.

게다가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데까지 이르면 .. 참.. 밉네.

 

그래도 어쨌든 [나를 보내지마]를 읽을 것이고 다 읽어볼 참이다. 내가 잘못 읽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니까.

 

몸만 안 아팠으면 좋겠다.

통증이나 고통에 내성이 생기지 않으니 갈수록 죽을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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