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1982) 국내번역서에는《선데이 타임스》의 "완벽한 정교함을 자랑하는 섬뜩한 수수께끼 같은 소설"이라는 한줄평이 새겨진 띠지가 둘러져있다. 

'완벽'한지까지는 모르지만 정교한 구성을 갖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고 '섬뜩한 수수께끼같다'는 건 정말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수수께끼는 끝까지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지만 짐작할 수 있고 그건 이상하게도 시도 때도 없이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진짜로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시구로의 특징 중 하나처럼 매우 점잖고 관대한 것같은 인물들이 대변하고 있는 듯한 대화속에 엉켜있는 고집, 반성할줄 모르는 편협한 애국심, 대책없이 잊어버리고 떨쳐버리고자 하는 무책임 등이 첫작품부터 등장하고 있다.

끝내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과거들.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과 가장 최근작 [파묻힌 거인]을 읽은터라 어쩐지 이시구로의 처음과 끝(현재까지)을 다 맛본 것같은데 초기의 탐색에서 그녀의 웃음소리로 빠져나오던 어떤 일종의 히스테리가 최근에는 우회할 수 없다는 것, 되찾은 기억에 따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았다는 데까지 온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좀더 자세히 읽을 필요가 있는데 여튼 느낌이 그렇다.

 

데뷔작에서 자신의 문제를 어떤 면에서는 놀라운 관점에서 다뤘다.

자신의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본 것 아닌가. 자전적으로는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다섯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고만 알고 있는데 이시구로의 성장과정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소설속 마리코도 어린아이다. 온전히 부모의 보살핌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나이. 그때 자신의 거처가 뿌리째 흔들린다면 그런 경험이 주는 혼돈과 공포는 어떠한 것일까.

게다가 전후 일본이었고 나가사키였는데..  

 

발표순서대로라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떠도는 세상의 예술가)](1986)를 읽어야하지만 이미 읽었고(읽고 나서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오히려 퇴행했던 거 아닌가 싶고), 다음이 [남아있는 나날](1989)인데 이것도 오래전에 읽었던 바 있어서 다시 읽을 기회를 잡으면 되고, 다음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1995)이다. 번역서는 두 권으로 8백페이지가 넘는다. 그 다음이 [우리가 고아였을때](2000), [나를 보내지마](2005).

평판이 좋은 [나를 보내지마]를 빨리 보고 싶은데 읽고 싶은 걸 먼저 읽을지, 순서대로 읽을지 고민하고 있다.

순서대로 읽는 게 맞는 것도 같고..

 

책 한권 읽는 데 꽤나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요즘은 보고 싶은 책들이 많지만 선뜻 구매가 망설여진다.

언젠가 읽겠지 하며 구입해오던 느긋함이 사라지게 된다. 십중팔구 못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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