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반전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 같다. 쓰리콤보 반전쯤은 뒤집어줘야 대단한걸, 인정하며 한번 봐줄만할듯.
처음 들어보는 사라 핀보로의 [비하인드 허 아이즈]는 그야말로 작가의 조종대로 읽게 되어 있는 소설이다.
기어이 이 작가가 뭘 어떻게 뒤집고 뜨악한 걸 들이밀지 끝을 봐야겠어, 라는 오기와 호기심으로 똘똘뭉친 독자일수록 작가가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를 따라 작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어디든지 가는' '[작가의] 조그만 태엽인형'이 되어 홀딱 빠져들게 되어 있다.
주요 인물들이 각자의 진실들을 이야기한다. 반전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읽다보면 그 인물들의 각각의 진실들 '비하인드'에 빤히 보이는 것과 다른 진실이 있을 것임을 생각하기에 진실을 의심하면서 읽게 된다. 어쩌면 독자가 일차적으로 빠지게 되는 함정이다.
주요 인물을 다룬 처음 서술에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심플한 정답을 이미 세울 수 있다. 30페이지 정도 읽으면서 나는 메모를 해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내가 생각한대로였다. 초반에 이미 세워졌음에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비하인드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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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반전은 그럭저럭, 두번째 반전은 완전 뒤통수를 친다.
두번째 반전의 중요한 키는 이미 앞에서 암시된 바가 있기에 의심하면서 읽었지만 이렇게 반전을 삼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점에서 작가에게 한수 접었다.
그러나 소설에서 중요한 방법으로 쓰인 그것이 독자와 정당한 게임이 되는 것인지, 다소 맥빠진 점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가 날 정도는 아니다.
카프카가 그랬다지.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 바보같은 선.
사실 이 소설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윤 따로 있지만 다 읽고 나서 보니 뭐 건질만한 게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엔딩장면은 르네 클레망의 <태양은 가득히>의 마지막만큼이나 짜릿(소름이 더 맞겠다)하다고 할까.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작가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어떨지 얼른 그책도 집어들어야겠다.
르레 클레망,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1960)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를 원작으로 한 <태양은 가득히>에서 영감을 얻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 포스팅을 하면서 문득 든다. 소설과 영화 모두로부터... . 판타지 버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