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유레카! 같은 기분.

그러니까... 토마스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붙잡고 있은지 어언 .... 몇주.

각권이 5백여 페이지로 1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은 분량으로서만이 아니라 내용과 스타일이 주눅들게 하는 맛이 있는데

토마스만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는데, 초보자가 멋모르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하다 길을 잃고 다리에 쥐도 나고, 넉다운될 지경에 이르러 이걸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려가더라도 이른바 '질서있는 하산'을 해야 하는데... 고민고민하던 차에 에라이 모르겠다 [고전의 유혹](잭 매니건)이나 보자며 널부러져 이리저리 페이지를 넘기며 보던 중이었다. 

아, 이거구나, 이렇게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등산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잭 매니건 역시 토마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를 읽으며 혼돈에서 헤매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중력의 무지개], 이 소설은

 

 

거의 뚫을 수 없는 홍수림처럼 서로 연결된 요소들이 제멋대로 뻗어가면서, 벽에 그래프 용지를 붙여 놓고 계속 메모하지 않는 이상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의 전이되어 버린다.

 

 

그 대안을 잭은 발견하는데,

 

 

심한 감기로 휴가를 내고 몸져 누워서, 내게 있는 책이라곤 [중력의 무지개]밖에 없었을 때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흘을 내리 이 녀석을 읽었다. 그러다가 다 읽은 순간, 나는 마지막부터 첫 장까지 거꾸로(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에서 써 보라고 추천했던 방법) 전체를 다시 읽었다. 그 방법을 쓰고서야 나는 그 모자이크의 수많은 조각들을 맞춰 나갈 수 있었다. 그 방법을 쓰고서야 미국에서 가장 은둔적인 작가, 토머스 핀천의 총기 넘치고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중력의 무지개]와 [파우스트 박사]가 같은 구성이나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뿐더러, 잭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단은 읽고나서 비로소 뒤에서부터 다시 읽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둘 다 제대로 된 호흡으로 처음부터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간 중간에 숨막혀 죽을 것 같은 지경을 선사한다면 이 방법도 좋지 않겠는가.

한번 시도해 보는 거지. 뒷 장부터 앞으로 거슬러 올라 읽어보는 거다. 전체를 볼 수 없는 막막함에서 한걸음 한걸음, 한땀 한땀 꿰다 가다보면 어느새 시야가 탁 트이며 시원한 바람이 맞아주는 마루턱이나 정상을 밟는 짜릿함을 얻지는 못할지라도 죽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추리소설처럼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범인이나 미스터리 수법을 알고나면 처음부터 읽을 마음이 아예 없을지도 모를 그런 장르의 소설도 아닌 바에야 결말을 알고 끝부분을 미리 본다해서 김빠질 일도 없는거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 장을 읽었다.

......................................

 

난해하거나 숲이 보이지 않은채 미로를 헤매고 있는 느낌이 들게하는 소설들 읽는 저마다의 방법들.

어떤 이는 먼저 정보를 모아 기본 지식부터 무장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작가에 대해서, 소설의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각종 분석서나 해설서를 읽을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일단 부딪쳐보다가 아, 이거 이래선 안되겠구나 싶을 때에야 비로소 배경 정보나 지식을 찾아본다.

기쁨을 지연시키는 경우랄까. 아, 이거였구나, 그런 뜻이었구나, ... 등등.

먼저 읽은 자들의 안내를, 조언을 따를 필요가 있다.

서평, 리뷰를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다.

무작정 숲으로 들어가 헤매는 것보다 낫겠다 싶다.

 

왜 혼란과 절망을 느끼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소설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걸까.

뭔가를 찾는 중이라서.

뭔지는 모른다. 또는 어렴풋이 이길로 가면 아마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 일단 출발하는 거다.

 

거꾸로 읽어보는 것.

처음 해보는 짓인지라 효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음.

 

작가의 질서를 흐뜨려보는 것.

흔히 음악에서 '백마스킹'을 하다보면 악마의 속삭임을 듣는다는 말도 있는데, 소설을 거꾸로 뒷장에서부터 읽는다면 어떤 저주에 걸릴지 모를 일이다. 조금은 두려운 맛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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