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전락(?)을 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테리 이글턴의 [악]을 감탄해마지 않으면서 읽을수밖에 없었다.
한문장 한문장이 통찰에 빛나는 각고한 문장들이다.
밑줄을 긋고자 한다면 포기하는 게 좋다. 책 전체를 밑줄쳐도 좋다면 뭐 말리진 않겠지만.
어마어마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일차 완독한 후 나는 별 넷(북플의 별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결말 부분이 당최 이해가 안돼서. ... 아니 이게 뭐야. 기껏 문학속의 악의 화신들, 순수한 악, 절대 근본악이라 할 수 있는 악의 판데모니움 ,일종의 매혹적인 지옥을 걷다가 추잡스런 현실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처음부터 이글턴의 목적과 의도를 오해했던 것에서 비롯된 사단인지 모른다.
이미 이글턴은 1장에서 '악이라는 허구 Fiction'를 다뤘기 때문이다.
순수악의 환상에 갇히지 말라.
유물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자 테리 이글턴은 2010년에 발간된 이 책을 통해 현실의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적 악은, 악evil이 아니라 부정wickedness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악의 불가해성, 완전한 목적없음, 인과율의 불가해로 치부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를 악으로 규정해서 그들의 망상에 고개젓고 돌아설 게 아니라 그들의 정치사회적 불만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의 악을 지상의 생활악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보는 것인지.
예를 들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말이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망상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불만을 고려하고 해결하려 애써야 하는 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당부다.
악이 일종의 우주적 심술(145)이던 지경에서 순결함을 강조하며 불순한 것들을 참을 수 없는 원리주의자들의 심술로 급전직하 전락한 듯한 우리 시대의 악을 탐구하는 건 또다른 연구서를 봐야 할듯 싶다.
강상중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읽고 이책을 잉태시키게 된 동기가 됐다던 이글턴의 [악]을 읽은 뒤 느끼는 점은 악의 매혹이자 이길 수 없는 악의 힘을 다시한번 확인했다고 할까.
두 저자가 기를 쓰고 현실의 악, 이글턴식으로 말하자면 부정(사악함)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호소하여도 어쩐지 그들의 마지막 전언은 그저 그들 스스로도 매혹된 악의 힘을 서둘러 지식의 힘으로 봉합하고자 하는 안간힘처럼 느껴졌다.
악의 공허, 공동감(空洞感, '주위가 허전한 느낌'인 공허감과 달리 '속, 핵심, 중심이 비어있는 느낌'의 공동감)을 무엇으로 충족시킬 수 있나?
프로이트의 죽음의 충동 역시 충족될 수 있는 것이었던가?
무엇이든 이해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놓아야 하는 지식인들의 의무를 완수하는 느낌.
물론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성심을 다해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건지 몰라도,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 악, 악의를 상정 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위험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했기 때문에, 문학속의 악을 분류하고 분석해나가는 이글턴의 앞장들(1장과 2장)은 힘이 넘쳐나고 압도한다. 그에 비해 3장의 결말부분은 잊고 있던 현실을 서둘러 끌어들여 알리바이를 만든 느낌이다.
책 자체가 '악'에 매혹해 있다....고 감히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