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얘기 하나. 

며칠동안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그야말로 싸움을 하며 답답한 날들을 보내다 읽기로 일찌감치계획했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 시작했다. 

아, 살것같다.

[파우스트 박사]는 언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될른지... 난 아직도 레버퀸의 대학시절, 서서히 그가 악마와 거래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춰나가는 그의 성격 형성기를 읽고 있었다. 

흥미로운 논쟁도 나오고 이야기의 긴장이 팽팽한데 내가 왜 이 책을 굳이 읽으려는지 생각이 없다면 어지간한 인내로 독서에 찾아오는고비들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에 비해 아렌트의 책, 서문만으로도 시원하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처음부터 명쾌한 논리를 가지고 똭 나오잖아. 

소설이 나는 어려워. 


아렌트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옮긴이의 서문에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분석하면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에서는 판단의 무능성을 도출하고 그 판단능력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 고로 판단이란 사유와 의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아렌트는 이해했다. 

아렌트가 말의 능력과 관련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 중 상투어 즉 클리세 사용에 대한 주목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말 자체가 행위라고 했다는데 [인간의 조건]도 기회되면 읽어보고....


말의 쓸모, 그건 곧 현실인식이고 사유와 긴밀한 연관을 갖게 된다. 

말이 현실을 알게 하여 사람에게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아렌트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히만 같은 경우는 이 말에서 일단 회로가 끊긴다. 

상투어.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나치가 학살을 게획하고 실행하면서 실행자들이 사용하기 위해 고안한 언어규칙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리라 부르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은폐의 언어들. 

학살은 최종해결책, 완전 소개, 특별취급으로, 유대인의 이송작업은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으로 직접 표현이 아니라 우회적 표현법을 만들어 대신 사용했다. 

단순히 외부인들 모르게 비밀을 지킨다는 것만이 아니라 이는 이일을 실행하는 실무자들 스스로를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로부터 소격시키며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했다. 

니치의 이 언어규칙은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히만의 상투어 사용에 판사들은 그의 말에서 공허감을 ㄷ느꼈다. 판사들은 그에게서 사실에 충실한 언어를 듣고 싶어했다. 

공허하다는 것은 현실의 힘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21)


곧 박근혜가 417호 법정에 선다. 

이 재판을 방청권을 얻어서라도 꼭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생방송되면 좋겠다. 

박근혜의 말. 

박근혜는 또다른 공허한 말을 할 것이다. 

우리는 아이히만의 판사처럼 사실에 충실한 언어를 듣고 싶계 될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의 말을 충분히 들어본적이 없다. 

대독한 말에서조차 그녀의 범상치 않은 우주적 사고를 눈치챌 수 있지만 더 나아가 누군가의 질문에, 누군가 건네는 말에 답하는 그녀의 말을 충분히 들어본적이 없다.

잘 짜여진 무래위에 올라 연기만 해오던 배우가 플랜된 위치가 아닌 곳, 상황에서 어떤 말을 내뱉는지 그 배우의 민말을 듣고 싶어진다. 

우리는 이미 박근혜의 말-현실-사유의 연관을 봐왔지만 417호 법정이 연구자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줄 현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독일문학도 좀더 많이 들여다보고 싶다. 

토마스만도 그렇고, 헤르만헤세, 귄터그라스, 그리고 또... 벤야민도...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라는 나라와 민족에 대해 이 나라 독일 작가들과 학자들이 먼저 당혹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이번에 새삼 들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당혹스럽고 또 끔찍했을 것인가.. 도대체 왜? 무엇이? 

나치가 점령한 자기 조국을 떠나 유럽과 미국에서 또 남미에서 그들은 자기 조국과 조국의 사람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