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일흔셋인 테리 이글턴이 3년전에 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How to Read Literature]은 문학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겪은 노련한 전문가의 대중을 위한 아주 쉬운(......) 문학비평개론서다. 
(원제대로) '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섬세하게. !!!!
아주 섬세하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문학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는 것. 
그러기 위해 테리 이글턴은 몇가지(첫도입부, 인물, 서사, 언어, 그리고 해석의 방식 등) 도구들을 다루는 방법을 시연해준다.
아주 노련하게, 정확한 문장으로. 
대중문학 따위는 끼어들틈이 없다. 
예를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처럼 '플롯'만 있는 범죄스릴러물은 다른 궤도를 돌 것을 권유받는 듯하다. 
그러므로 독서 또한 여러 다른 궤도를 돌 수 있다. 


이글턴은 문학에서 모더니즘의 영향이 가져온 변화들과 특징들을 설명할 때 특히 더 매력적인데 물론 모더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그 표현을 참 멋드러지게 한다. 


모더니즘이 서사적 측면에서 그렇게도 모호하고 외연보다는 안으로 더욱 침잠해 들어가는 것은 20세기 상황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서사의 헤맴을 지적한다. 
서사의 질서는 의도적으로 와해되고 독자 스스로가 세우는 질서 외엔 달리 없다는 말이라든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잘 보여주듯이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주인공 말로우나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한 ' 그의 여행처럼, "콘래드의 서사가 곤경에 빠져 있다면 그 부분적 이유는 진보에 대한 19세기의 믿음 -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진보에 대한 믿음- 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얼마나 섹시한 지적인가..
 
그리고 많은 모더니즘 소설이 그렇듯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쉽게 씹어먹혀지지 않는 문장들. 
"작가의 의미를 풀어내려고 몸부림치며 비틀리고 꼬인 구문에 이끌려 들어가다 보면 독자는 마치 작가와 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는 듯이 느끼게" 될 정도의 난해함.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고 하나로 질서지어지지 않는 모더니즘 문학작품의 세계는 결국 독자의 적극적인 동참을 통한 읽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한다. 


바로 저 '믿음'이 '어마어마하게 타격받은 상황. 
이글턴의 책을 떼고 존 르 카레의 [나이트 매니저] 1권을 읽다 뒀던 데서부터(고작해야 몇페이지 안되지만)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문득, 왜 존 르 카레의 스파이소설은 쉽게 읽기 어려운가를 생각했다. 
(아, 빨리 마저 읽고 싶네...)


정교하게 고안된 플롯이 단순한 문장들을 따라 이어지고, 시간순은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치되고, 독자들이 행여 복잡한 플롯에 길을 잃지 않도록 가끔 멈춰서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정리해주고 무엇이 풀어야 할 문제들인지를 명료하게 쥐어주는 장르물답지 않게 존 르 카레는 그 서사의 세계로 쉽게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헨리 제임스만큼은 아니지만 존 르 카레 또한 비틀리고 꼬인 구문을 잘 풀어헤쳐가며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도록 한다. 
왜 이렇게 쓸까. 
그 역시 이미 스파이들의 세계가 정치와 돈,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동지와 그냥 일적 관계,정확한 의도를 알기 어려운 상부의 정체들....로 혼탁해져버렸다는 데서 조금이라도 명확했던 상황이 풀어헤쳐져버린 채 '믿음'이 어마어마하게 타격받은 상황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형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존 르 카레의 어쩌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비판이 내용에만이 아니라 이렇게 그의 글쓰기 형식에도 분명히 스며들어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존 르 카레의 소설들도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왜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허용하지 않는가, 그것이 늘 궁금했다. 


여기에 이글턴은 '가치'항목을 빠뜨리지 않는다. 
까다롭고 (글만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엄격한 까탈스러움이 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가치를 평가하는 것보다 취향의 문제이지만 도스토옙스키를 존 그리셤보다 더 숙련된 소설가로 생각하는가는 순전히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셤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은 타이거 우즈가 레이디 가가보다 골프를 더 잘 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 입니다. .. 어떤 경우에, 가령 어떤 특정 브랜드의 몰트위스키가 세계 최고급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몰트위스키를 잘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몰트위스키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그런 판별력을 내포할 테니까요. ((347~348)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로움을 지켜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파인애플보다 복숭아가 더 맛있는지를 결정하는 경우와 달리 골프나 픽션에서는 탁월함으로 간주되


는 것을 결정하는 데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은 공적인 것이고, 개인의 우연적인 사적 선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분은 어떤 사회적 관행에 동참함으로써 그 기준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349)


그렇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내용도 있다. 
그렇다면 훌륭한 문학이란 어떠함을 말하는가. 


왜 하필 나는 [나이트 매니저]를 손에 들었을까. 구입해둔 더 훌륭한 문학책들이 많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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