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볼펜은 있잖아. 

근데 삼색(혹은 사색) 색연필이 삼색볼펜처럼 된 문구는 없나?

책 페이지를 접는 건 싫어하지만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걸 기본으로 밑줄 긋고 메모를 하는 편이다.

밑줄이 선명한 게 싫어서 가급적 세가지 색깔의 색연필을 쓴다.

책에 형광펜은 쓰지 않는다. 


3색 정도의 색연필(빨녹초)을 하나의 필기구로 된 게 있으면 좋겠다. 

한자루에 삼색을 모은 색연필을 본적은 있지만 쓰다보면 각색의 경계까지 쓰게 되어 지저분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별로 좋지 않다. 

삼색볼펜처럼 그렇게 쓸 수 있는 색연필 필기구가 나오면 좋겠다. 

볼펜은 가능한데 색연필을 그렇게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걸까? 여태 그런 필기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3장에 이어 5장의 예술론에 이르러 또 한번의 장벽을 만났다. 

민음사(이상옥 역)판이 더 친절하다. 주석도 더 많고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주석이 달려 있다. 열린책들판(성은애 역)은 성그고 불친절한 편이다. 

열린책들을 주로 해서 민음사판을 보조해서 읽고 있는데, 민음사판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의 캐릭터가 다르게 느껴질 판이다. 

민음사판 보다 열린책들판의 스티븐이 더 거칠다. 마치 조사없이 체언들만으로 된 문장들을 내뱉는 것 같다. 

5장을 넘으면... 끝이 보인다. 

불연속적 묘사로 성장의 단계들로 점핑해나가는 조이스의 기법(뭐 지금이야 새로울 것 없는 거겠지만)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역자해설은 주로 책을 다 읽은 후에 읽는 편이다. 미리 읽는 경우는 책이 정말 난해해서 도저히 앞으로 나가기 어려울 때일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은 결국 해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역자해설들을 보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 남들도 다 나처럼 3장과 5장이 마의 고비구나, 했다. 

책에 붙은 역자해설만으로는 부족하고 역시 다른 레퍼런스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소설은 1914년 2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했고 1916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지만 이미 1907년 경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대학생이 된 스티븐의 학교에서도 정치 사안을 두고 학생들끼리 대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러시아 니콜라이2세의 평화조칙과 헤이그만국평화회의를 두고 지지파, 반대파, 그리고 냉소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와 러시아, 그리고 이 만국평화회의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헤이그만국평화회의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저 멀리 아일랜드의 한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서명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불러오는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 겹쳐지면서 낯설었다. 

평화회의 정체가 뭐였지? 고종은 제대로 타겟을 설정한 거 맞나?

제임스조이스가 조국 아일랜드에 갖게 된 애증의 관계도 살펴봐야 한다. 

예전에 잠깐 들여다봤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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