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초반이 이전의 하루키 얘기의 반복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로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얘기도 있었다.

자신할 수 없는게, 예전에 하루키가 말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건데, 어쨌든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번역투'라고 얘기듣는 그의 문체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지를 밝힌 대목이다.

그가 한번도 소설을 써본 적 없이 덜컥 그놈의 진구 구장에서 그놈의 하늘과 바람 어쩌구 때문에

"그래,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고 문득 생각했다는 그 이후.

 

부엌 식탁에서 원고지에 만년필로 써가다가 몇 달 후 일단 완성은 했는데 읽어보니 너무 재미없었다고 한다.

원고지와 만년필을 내비두고 올리베티 영자타자기를 꺼내 영어로 소설을 친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영어 어휘나 구문이라해봤자 빤한 거라 자연스레

 

내용을 가능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 하고, 묘사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49)

 

내용은 조잡하더라도 나름의 리듬이 생기더라고.

결국 한정된 어휘 수를 가지고 '조합'해 내서 이뤄낸 '콤비내이션'을 구사하게 된 것.

 

하루키는 자신의 그와 같은 문장이 헝가리 태생으로 헝가리 혁명 때 망명해 스위스에서 프랑스어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라, 누군가 했다. 바로 그 작가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의 바로 그 작가 말이다. 세상 참...)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장을 말하면서 자신의 문장을 정의하는 식이다.

 

짧은 문장을 조합하는 리듬감, 번거롭게 배배 꼬지 않는 솔직한 말투, 자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적확한 묘사. 그러면서도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 한참 나중에야 그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어보고 거기서 뭔가 그리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게 또렷이 기억납니다. 물론 작품 경향은 크게 다르지만. (51)

 

이렇게 완성된 영어소설을 다시 원고지에 만년필로 이번엔, 일본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번역투'라는 문장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첫 소설이 바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 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습니다. 나는 그 감각을 지금도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머리로 문장을 쓴다기 보다 오히려 체감으로 문장을 쓴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리듬을 확보하고 멋진 화합을 찾아내고 즉흥연주의 힘을 믿는 것. (54)

 

'멋진 화합'.

챈들러의 특유의 직유 또한 이 '멋진 화합'일거란 생각을 했다.

전혀 엉뚱한 것에 비유하는 것을 통해 일종의 리듬도 생기고 그야말로 '케미'가 생긴다.

챈들러 책에서 그 '케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루키가 챈들러로부터 배웠다는 말은 솔직한 거다.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는 챈들러에게서는 말로가 추리해내는 과정을 결코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말로의 추리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단지 사건의 현장에 대한 자세한 묘사, 사건을 풀어가면서 만나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은 상당히 공들여 촘촘히 묘사한다.

굳이 꼭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하드보일드하게 객관적인 장면묘사들.

그 묘사로부터 정서가 나온다. 하드보일드한 무게. 스릴.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말로가 어디서 단서를 얻고 추리를 어떻게 하게 됐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물론 제아무리 뛰어난 추리능력을 지녔다해도 챈들러가 준 단서만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챈들러는 독자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는 미스터리작가가 아니다.

챈들러는 그쪽엔 관심없는 작가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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