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책은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하루키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말에 속아 덜컥 샀는데 초반 얘기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소설을 쓰기까지의 얘기들이 반복된다. 그놈의 진구 구장 말이다. 예전에 잡지에 발표한 글이기 때문이다.

후반쪽에는 그래도 새로 읽게 될 얘기가 있을 것 같지만 책이 너무 헐렁하다는 느낌이었다.

하루키 자신이 말한 하루키는 2010년도에 있었던 계간지 『생각하는 사람』(신초사) 여름호에 실렸던 2박3일에 걸쳐 이뤄진 인터뷰가 그나마 충실했던 것 같다. 우리는 문학동네 가을호(2010)에서 볼 수 있다. 

 

 

 

 

 

 

 

 

 

하루키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이상 하고 싶어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아마도 다시 하루키 에세이를 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같은 인문학자로서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작품세계를 해석해본 팬의 글이 더 읽어볼만 할 것 같다.

 

 

 

 

 

 

 

 

 

 

 

 

 

 

 

우치다 타츠루라고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하류지향] [스승은 있다] 같은 책으로 알려진 사상가라는데 나는 그를 잘 모르고 그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어 어떤지 모른다.그런데 이번 책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의 목차를 보면 이미 목차만으로 이책은 꼭 사야돼 라는 마음을 먹게 한다.

 

1.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밥 짓는 장면과 청소하는 장면
트라우마
해외 생활
‘학생운동’에 대하여
세계에 구조를 부여하는 힘
섹스 장면
시바 료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정함’
하루키와 달리기: 갖고 있는 자원으로 꾸려 나가는 일_《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관한 평

2. 《1Q84》를 낸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가 예루살렘으로 떠난 해
벽과 알; 예루살렘 강연을 읽다
《1Q84》 독서 중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방향
‘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힘들 때 스승에게 기대기
하루키와 음악: ‘펫 사운즈’의 추억

3. 세계 속의 하루키를 쫓는 모험
‘노벨상 수상 축하 예정 글’ 2009년 버전
무라카미 하루키와 시바 료타로
‘아버지’의 존재

영적인 배전반에 대하여
한국 드라마 <겨울 연가>와 《양을 쫓는 모험》의 설화론적 구조
식욕을 돋우는 비평
‘심하게 결여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특별 대담: 무라카미 하루키를 몸으로 읽다_시바타 모토유키×우치다 타츠루

4. 세계의 소설과 번역가 하루키 랜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을 이야기하다
번역이란 자기 몸에 남의 머리를 갖다 붙이는 것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다
‘너’는 홀든 자신이다
극동의 아바타, 《양을 쫓는 모험》과 《기나긴 이별》
하루키와 힐링북: 읽고 힘을 얻는 책_《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5. 하루키의 생각을 들어라
장어 군, 소설을 구하다
다자이 오사무와 무라카미 하루키
선택받은 수신자
100퍼센트 여자와 베버적 직감에 대하여
하루키와 평행세계:《양을 쫓는 모험》의 주인공과 우치다 타츠루

6.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동철학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나오는 ‘아침밥’의 서사적 기능

청소하는 파수꾼
After dark till dawn; 해가 지고 새벽이 오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와 하드보일드 이블 랜드
경계선과 죽은 자들과 여우
‘여자 없는 남자’의 한 사람으로서

맺음말: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한다는 유혹적인 즐거움
에필로그: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써주세요
옮긴이 후기: 무라카미 하루키를 새롭게 발견하다
부록: 이 책에 등장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시바 료타로와 다자이 오사무와 하루키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 두 사람을 잘 알지 못하니 역시나 미지의 영역이다.

하루키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실재 아버지와 '세계의 의미를 담보한다는 의미'로서 아버지와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분석한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아버지 없는 세계에서 아이로 홀로 선다는 것. 하루키의 인물들은 결국 애비없는 아이였다.(하루키의 아버지가 전쟁 당시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당시의 경험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고 매일 아침 전사자들을 향해 절을 하면서 평생을 자신 속에 잠근 채 죽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  [1Q84]가 그러므로 그전의 하루키 세계와 어떻게 다른지도 얘기해주려나? 

그밖에도 하루키가 번역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을 읽으면서 그것이 [위대한 개츠비]와 닮았다는 걸 알게 되고 [양을 쫓는 모험]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분석한다.

 

'베버적 직감'이란 무얼 말하는건가?

 

또한 '청소하고 밥짓는'행위가 하루키에게 왜 중요한가를 말한다.

나는 예전에 김훈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연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머리속은 복잡하더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인물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씩 차례차례 붙잡고 정연하게 해치워 나간다. 하루키와 김훈이 닿아 있는 지점으로서 그 일종의 '정연함 추구'를 어렴풋이 연결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하루키의 스파게티와 김훈의 라면은 어떤가?

 

 내가 그런 글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고.

'파수꾼'(보초)로서 하루키에 대한 해석도 시도한다 .

 

우치다 타츠루가 하루키에게 빠지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어떤 글이 받아들여지는지'. '몸에 푹 스미는' 책. 이건 나를 떨리게 하는 책과 같은 거 아닐까.

나를 설레게 하는 책.

몸으로 스미는 책. 그런 책만 읽기에도 시간은 모자랄 것 같다.

 

우치다 타츠루는 [...] 철학과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숨기지 않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하루키에게 빠진 것은 1989년이다. 그는 이혼을 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에서, 이럴 때는 어떤 글이 받아들여지는지 확인해보자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때 몸에 푹 스며들어오는 느낌을 주었던 책이 바로 하루키의 작품들이었다. 그 일로 우치다 타츠루는 하루키의 완전한 팬이 되었다고 말한다.

 

팬이자 인문학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주길 바란다. 

팬심 덕후질 이길 사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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