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무지막지하게 기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쁘다.

폭주를 막아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180석이나 200석을 내줄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선거 결과는 이럴수가..이렇게까지..라고 할 정도로 기특한 결과를 냈다. 이번 선거에서 기대했던 하나는 이뤘고 다른 하나는...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하나의 목표라도 이루긴 했으니까.

 

존 치버의 [왑샷가문 연대기]를 집어들어 해설부터 읽고 있다.

존 치버의 작품을 읽기는 처음이라서. 그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가 [마담 보바리]를 스물다섯번이나 읽었다는 대목에서 놀랐다.

플로베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설자(김욱동)는 밝혔다.

 

[마담 보바리]를 두고 

"나의 예일 대학이요 하버드 대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단다.

 

플로베르는 의외로 많은 작가들이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꼽는 작가다.

그 어떤 점이 작가들을 사로잡을까 궁금해서 나도 좀 읽어보자, 뭐 이런 마음이다.

이승우 작가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를 읽다가 자신에게 떨림을 주는 작가의 작품을 읽으라는 말에서 떨림이 왔다. 그래, 나를 떨리게 하는 작가, 작품, 그걸 읽자.

의무방어같은 독서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

(참고로 내가 뭐 소설가가 되겠다고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이승우의 저 책은 이승우의 에세이가 궁금해서 읽은 것 뿐이다)

 

플로베르가 나를 떨리게 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작가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담 보바리]도 두번째로 손에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스물다섯번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의무방어같은 건 하지 않기로 하자.

 

단편작가, 미국의 체호프, 잡지 《뉴요커》의 남자, 중요한 현대 미국작가 중 가장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작가 중 한사람이라는 존 치버는 어떤 글을 쓰는지 읽어볼밖에.

 

 

 

 

 

 

 

 

 

 

 

 

 

 

 

 

 

단편작가로 알려진만큼 여러편의 단편이 묶여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내가 왜 단편 읽기를 두려워하는지 생각해보면,

일단 단편이라는 형식이 주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이건 특히 문학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국 단편소설의 까리함에서 내가 학을 뗀 적이 있는데)

단편의 콤팩트함이 주는 엄격성.. 같은 것?

호흡이 짧으니 한편을 읽고 다시 다른 한편을 읽을 때, 한 세계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낯선 세계로 걸어들어가야 하는 두려움 또는 귀찮음 같은 것도 단편집을 선뜻 고르지 않게 하는 심리적 저항으로 작용한다.

계속 낯선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두려움을 갖는 사람일수록 단편에 빠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과연 모험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구나.

성격과 단편의 호불호관계.

그런 거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존 치버 역시 먼저 장편으로다가 ....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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