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2012)를 뒤늦게 읽고 있다. 아직 2부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미뤄두고 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극을 받게 된다. 읽기에 급급한(그것마저도 게을러서 더디기만 하지만)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한없이 감탄스럽고 부러울 뿐이다.

문학을 읽는다는 건 그 작품에 대한 빈틈없는 이해가 우선적인 듯싶다.

로쟈님의 경우, 기본적으로 작가에 대한 이해, 작품 탄생 전후의 사정에 대한 이해, 번역상태에 대한 이해, 등등 아주 폭넓고 깊이있는 독서들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을 읽고 그에 관해 글을 쓰기 위한 기본 작업들은 이렇다.

 

한형곤 교수의 완역본 《신곡》박상진 교수가 산문으로 풀어쓴 《신곡》, 그리고 김운찬 교수의 해설서 《신곡》을 마련해 놓고, 거기에 덧붙여 도서관에서 영역본 《신곡》과 러시아본 《신곡》까지도 펼쳐놓았다. 그리고 읽을 줄 모르는 이탈리아어 《신곡》까지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 띄어 놓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연후에 <지옥편>의 첫 아홉행을 읽는다. (147)

 

한 권의 작품을 읽고 고쳐쓸 수 있기 위해서 기울여야 할 기본 노력들에서 벌써 기가 죽는다.

어쩔 것이냐, 로쟈님 같은 서평가, 비평가들이 해주면 나같은 건성건성 독자들이 읽고, 그렇구나, 이렇게 깊은 뜻이... 뭐 이러면 되는 거 아닌가? 아, 쓰바, 쉽게 생각하자. 어차피 가는 길이 달라. ㅎㅎ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 작가와 작품간의 상호관계를, 새로운 정보를, 새롭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이해의 한 길을 제공받는다.

나 나름대로 흥미롭고 인상적인 부분들을 꼽자면,  

괴테의 [파우스트]를 '파우스트의 개발주의 vs 메피스토의 허무주의'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악은 허무를 부추기는 데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해석.

과문하다보니 그동안 집중된 면은 뫼르소의 살인의 이유가 뭐냐를 놓고 많은 설명과 해석이 있었던 걸로만 알고 있다.

'태양 때문'이라는 이 막막한 이유 앞에서 당혹스러워했던 독자들이 찾아 헤맸던 그 많은 이유들.

로쟈님은 '이방인'으로서 뫼르소의 '은밀한 갈망'에 주목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법'과 '아버지', '사형선고'이다.

 

살해장면에서 이에 대한 암시를 찾는다.

 

"나는 온몸이 긴장하여 손으로 피스톨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고 짤막하면서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담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틀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127)

 

 

'태양 때문'이라는 우발적 총격과 뒤이어진 '강한 의도성과 필연성'.

뫼르소가 남긴 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128)

 

이 말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주억거려졌다.

로쟈님은 [이방인]을 "다시 읽어봄으로써,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신화'를 조금 걷어내 보기로 하자" (118)고 앞부분에 이미 밝혔다.

아, '신화'였던가.

이렇게 읽어도 되는지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주워들어야겠다.

그런데...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방인] 출간 후 몇 개월 뒤에 나온 [시지프 신화]는 [이방인]의 주석서인지도 모른다니까 이 책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언뜻 생각하면 원문과 주석의 앞뒤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는데, 어서 읽기를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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