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언 매큐언이 줄리언 반스 보다는 통속적인 듯 보인다.

각각 1948년, 1946년 생인 두 사람은 과문하게스리 내가 비교적 현대 영국작가로 알고 있는 작가들이다.

또 알고 있는 현대 영국작가 없나? ...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고전 쪽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런 사랑] [속죄] 그리고 이번에 읽은 [칠드런 액트]가 전부인데, 그 전 두 작품이 애매했었다.

재미없지 않은데 딱히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안고 내가 씨름할만한 것들이 아닌 것이라 여겼다.

읽은지 오래된 터이기도 해서 기억도 선명하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사고, 갑자기 불어온 돌풍으로 기구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타고 있던 사람을 구하는데 참여하지 못한 주인공이 돌아와 짊어지게 되는 죄책감... 이었던가?

[속죄]는 질투로 인해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 때문에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죄의식을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가가 주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을 쓴다고 하는데 '가지 않은 길' 혹은 '행하지 않은 액션', 그로 인해 안게 되는 마음의 불행을 즐겨 다루는 건 맞는 것도 같다.

 

[칠드런 액트]는 근래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평생 소설을 써온 작가의 능숙한 솜씨를 곳곳에서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또한 역자인 민은영의 '옮긴이의 말'은 이 소설과 작가에게 진입하는 길안내를 아주 깔끔하고 명쾌하게 쓴 근래에 읽은 동류의 글 중에서 갑이라고 할만했다.(순전히 개취다)

 

이언 매큐언의 인물들은 주로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지성인들이다.

신경외과의사(토요일), 고등법원 판사(칠드런 액트), 교향곡 작곡가(암스테르담), 현악 사중주단 리더(체실 비치에서) 등이며

이들의 행동을 가로막은 것들에 관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칠드런 액트]는 제목만 보고 아, 아동법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다루는 범죄소설인줄로만 알고 읽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작가는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미천한 독자의 상상을 넘어서니까.

59세의 고등법원 판사 피오나에게 판결의 이해관계자에 해당하는 18세 애덤의 '열정'(소설 마지막 문장의 말처럼)은 무엇이었을까.

핵심은 피오나가 애덤에게 할 수 있는 '역할'(역시 소설 마지막 문장에서)의 문제다.

당연히, 나라면, 이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나라면, 나였다면 그 상황에서 기민하게 움직였을 수 있을까?

왜, 무엇이 피오나로 하여금 어떤 조치든, 액션을 취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아니, 더 정확히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은 액션을 취한 거라고 해야 하나.

이언 매큐언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전개시켰더라. 벌써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이 없이 평생 함께 살아온 남편이, 당당히 지금껏 의무를 다했으니 사랑을 위해 살고 싶다며 집을 나갔다가, 비로소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더라는 깨달음과 함께 가방 들고 다시 돌아온 남편을 둔, 59세 고등법원 판사의 행하지 않은 액션.

 

.......

 

역자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음악이 흐른다. 재즈,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다는 작가의 음악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솜씨도 괜찮다.

덕분에 구스타프 말러에 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러는 숙제같은 거였는데 엄두가 안나서 모른채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말러, 말러 하는건지, 조만간 간단한 전기나 평전이라도 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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