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팝의 역사, 가요의 역사, 인디의 역사 같은 것만 하는 음악강좌는 이제 그만.

 

주로 가수 윤상의 곡들을 작사작곡한 음악가이자 프로듀서로 알려진 박창학의 [라틴소울]을 읽기 시작했다.

"당신도 들었으면 하는 음악이 있다"..

많은 사람이 자주 듣는 음악이 아닐 것임을 짐작케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음악. 그 대륙 여러 나라에서 발전해온 음악과 음악가들을 소개하며 에세이로서 박창학만의 느낌, 생각, 평들을 담고 있다. 장르로서 '소울'이라기 보다는 그들에게서 느낀 '소울'을 설명하고자 했을 것이다.

 

총 다섯개의 장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둘째 장 "브라질을 듣다"에서는 조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파울리뇨 다 비올라, 곤자기냐, 카를리뇨스 브라운 등이 소개된다. 브라질의 음악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삼바와 보사노바에 대한 역사적 고찰부분도 새로웠다. 보사 노바 Bosa Nova가 장르로 불려지기 전에 '뉴웨이브'와 같은 의미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브라질 역사에서 '보사노바'가 갖는 의미도 몰랐던 거라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음악가들, 조앙 질베르토, 카를로스 조빔.. 두 사람을 다룬 대목을 읽는데 .. 도무지 말을 알아먹기 힘들다.

기초 지식들이 없다보니 유투브에서 음악을 찾아들으며 읽어도 감을 잡을 수 없다.

 

조앙 질베르토와 보사노바의 유토피아적 계획

 

본질적으로 하모니를 중시하는 스타일인 재즈와 비교하여 보사노바는 기본적으로 멜로디를 중시한다. 톰 조빔에게 있어서 작곡의 모든 요소는 멜로디보다 하위에 놓이며, 멜로디가 그 본질에 있어서 변화하는 일은 없다. 조앙 질베르토의 노래는 리듬이라는 점에서도, 선율적 음정이라는 점에서도 이야기가 갖는 애매함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그의 노래에는 차분한,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아름다움, 즉 기술(記述)로부터 생겨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노래는 노력의 결과로써가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나는 완벽함,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완벽함을 연상시킨다. (109)

 

출발점은 그에게 있어서도 역시 노래의 자립이었다. 그러나 조빔은 연출에 의해 그것을 만들어 냈다. 우선 복잡한 구조를 보여주고, 그다음 그것을 멜로디 라인에 대하여 후퇴시켜서 결과적으로는 거의 지워버렸다. 한편 조앙 질베르토는 멜로디 속에 음의 모든 요소를 재생하려 했다. 단, 그로 인해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가 되어 버리는 것은 피하고, 반대로 노래를 언제나 이야기에 가까워지게 하려 했던 것이다. (117)

 

클래식만이 아니라 대중음악에 대해 좀더 깊이와 폭넓은 지식들을 배울 수 있는 책이나 강좌등이 필요할 듯 보인다.

노래를 배우는 노래교실 같은 곳에서 이뤄지는 가창 교습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만 접근하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다뤄주는 강좌가 있었으면 한다. 유투브에 단편적으로 올려진 게 있는데 쳬계를 잡기도 어렵다. 작곡이면 작곡, 악기 연주면 연주, 가창이면 가창에 한정되어 학원같은 곳에서 이뤄지는 강의를 올려놓은 거라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사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알고 싶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