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고 있는 책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반 고흐, 영혼의 편지]다. 이제야 읽는다.

초판이 1999년, 개정판이 2005년에 나왔다. 개정판을 읽고 있다.  

루시드폴은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에서 그의 팬이 준 책이었던 고흐의 편지를 몇번이나 반복해 읽었다고 썼다.

"문장이 유려해서가 아니라 고흐의 시선과 그가 세상을 살아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기 때문" 이라고.

나는 이제 고흐가 서른 셋 나이의 벨기에 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의 편지들을 읽고 있다.

그는 당시의 미술 아카데미의 그림들을 비판했다.

나무랄 데 없이 정확하고 잘 그린 그림들로 "그 이상 더 잘할 수 없"(129)지만 "그것들이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는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신경증 때문에 결국 1년을 견디지 못했지만, 그토록 확신에 차서 비판했던 아카데미식 그림과 기법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배워야 할 필요를 느낀 뭔가가 있었던 것일까.

 

 

 

 

 

 

 

 

 

 

 

 

 

 

고흐는 평생 800여 편이 넘는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발견하지 못하거나 이미 상실된 편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그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던 사람이었다고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고흐가 간질을 앓았다는 것, 그리고 일종의 하이퍼 그라피아를 가지고 있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27세에 비로소 그림을 시작한 그가 37세에 죽기 전까지 10년 동안 1,100점 이상의 스케치, 900점 이상의 유화를 남겼다는 점 - 한 주에 2점을 그렸다는 얘기란다, 어마한 양의 편지 들을 볼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뭔가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한 그 어떤 기질이나 병적 행동이 남긴 것이라고 후세의 우리는 쉽게 얘기하는 거겠지.)

 

레오 젠슨(Leo Jansen)이 모아서 출간한 [Vincent van Gogh : The Letters]는 무려 6권이나 된다고 한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림 연습과 그림을 그리며 보내는 사이사이 동생 테오에게 또는 동료 화가에게 또 누군가에게 글을 써 보냈다.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광기의 화가로만 알고 있었다면 그의 편지에서 보여준 어마무시한 신념과 확신, 굳은 의지와 단호한 생각들을 접하면 그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편지에서 눈을 떼고 생각해보게 된다. 아니, 그 정도의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었기에 귀를 자를 수 있었을까..

 

고흐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 설명의 표현력도 대단하다. 창작자 자신이 직접 설명하는 자신의 작품의 처음과 끝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도 드물지 않을까. 감탄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끼며 천천히 읽고도 싶고... 나이들어가는 고흐의 내면을 빨리 읽고도 싶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고흐가 아꼈던 물감 중 하나가 '크롬 옐로우'인데, 당시 기술로 새로 개발된 물감이었다고 한다. 화학적으로 불안정했고 결국 시간이 흐르며 변색이 될 수밖에 없어 고흐 당시의 원색의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고 한다. 고흐는 여러모로 불행했다고 할수밖에 없겠다. 늦게 그림을 시작했고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이고, 화가로서 알려지지도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병을 앓았고,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았다(자살인지 타살인지 총에 맞았지만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남은 그림 중에서 고흐가 원했던 느낌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기나 하는 건지.

동생 테오의 편지는 어땠을까. 동생 테오의 관점에서 본 형 빈센트의 삶은 어떻게 보였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고흐의 편지 중 동료 화가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영혼의 편지2' [반 고흐, 우정의 대화]는 절판된 상태인데

출간될 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모양이다. 어떤 차이가 있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으면 모를까 구해보기 쉽지 않겠다.

 

 

 

 

 

 

 

 

 

 

 

 

 

 

 

편지가 이토록 좋은 형식이 될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나도 이토록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5월 들어와 간절해졌다.

그리운 누군가가 이토록 없단 말인가.

내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존 레논의 편지들도 함께 읽고 있다.

요코를 만나기 전 인도에서 요가와 명상에 빠져 있던 1968년 초의 편지들까지 읽었다. 

존의 편지들은 ... 평범하다고 해야 할까. (편지보다는 간단한 엽서, 메모, 심지어 비행기 등에서 하는 설문지 같은 존이 남긴 것들을 모았다.)

인상적인 글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생과 편지를 쓸 때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엮은이 헌터 데이비스의 안내가 그럭저럭 잘 이끌며 읽을만하다.

존의 생과 음악을 생각하면 간단하고 특별한 정서를 담지 않은 그의 편지가 재미없진 않다.

남은 편지들이 기대된다.

어제는 오랫만에 존의 음악들을 찾아 들었다.

<Love>는 각별한 게 있어서 반복해서 들었다.

존 역시 흔히 말하는 가창력 쩌는 가수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음색이나 창법에서 뭐라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쓸쓸함 같은 게 배어 나온다.

스무살 되기 전에 신시아에게 빠진 존은 편지와 엽서, 카드 등을 통해 끊임없이, 줄기차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를 써서 구애했다. 얼마나 솔직한가. 여기에 뭐 가식이나 밀당이나(했을지 모르지만...) 눈치보거나 그런 거 없다. 그림까지(솜씨가 좋다) 그려 넣어가며 Love, Love를 빼곡히 써서 보냈다. 사랑한다지 않는가,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완전히 사랑한다 하지 않는가.

그리고 막 결성되어 연애나 결혼같은 가십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던(당시는 그랬다) 비틀즈에서 유일하게 결혼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미혼이라고 했지만 곧 팬에게 자신이 결혼했고 아이(줄리안)도 있음을 고백했다. 사랑한다지 않은가.

담백하고 간결하고 직선적이다.

 

 

 

 

 

 

 

 

 

 

 

 

 

 

 

그리고 이에 비해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접하게 될 책은 이오덕, 권정생 사이의 편지글이다.

 

 

 

 

 

 

 

 

 

 

 

 

 

 

 

두 사람 다 내게는 먼 사람들이다. 이오덕 선생이야 [우리말 바로쓰기]로 접했지만 그의 엄격함이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고 할까. 이분들의 편지에서는 또 무얼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요즘은 마음을 울린다는 거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나.

무엇이 울컥하게 하고 그립게 만드나.

나는 어떤 내상(內傷) 을 입지는 않았는가. 올해 초 무섭게 몰아쳤던.... 간신히 빠져나온 듯 하지만 .. 위태롭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인지 따듯한 걸 찾는 모양이다. ...

화려한 것들, 엄청난 물량공세로 들이닥치는 것들 사이에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소식이 없다.

 

늙어지고 가난해지고 못생겨지고 병들어갈수록 가장 빛나는 색깔과 눈부신 조화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세상에 대한 내 복수가 될 것이다...

 

(마종기,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p109에서 인용)

 - 고흐의 편지에 나온 한 구절을 시인 마종기가 옮겼는데 [영혼의 편지]에 포함된 글인지 아직 모르겠다.

 

 

가장 빛나는 색깔.. 눈부신 조화...그게 이다지도 불우하게 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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