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학자이자 뮤지션인 루시드폴(조윤석)과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가 스위스 로잔과 플로리다(또는 여러곳)를 사이에 두고 2년여간 메일로 주고받은 편지 모음글.
오늘같은 날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이젠 그럴 일도 쉽지 않다..
잘 지내셨는지요. 연초록 잎 사이로 비가 내리는 봄날....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뭐 이렇게 시작하는...

마종기 시인의 편지들이 대체로 무뚝하고 다소 슴슴한 안부라면, 루시드폴의 편지는 훨씬 살갑고 ...글이 좋네. 한참 일이 많고 여러가지를 생각하던 때라서인지 격동(?)적이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열정적인 장면이 많다.
노래만큼 표현력이 평이한듯 하면서도 가끔씩 탁 울리는 표현을 적을 줄 안다.

 

2008년 가을부터 그해 말에 이르러 루시드폴은 인생의 큰 결정을 하게 된다.

20대말에서 30대 초까지를 보냈던 외국 유학생활을 끝내고 음악가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편지를 통해 몇 차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마종기 시인에게 심경을 토로한다.

 

그동안 그리 짧지만은 않았던 20대 말과 30대 초반의 외국생활 동안 저의 내부에 끊임없이 쌓여온 어떤 내상이 이젠 역으로 서서히 저를 무너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가 진단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시 한 대목처럼 키 큰 서양 사람들을 당해내려고 목을 너무 길게 빼면서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 

연구소에서 만났던 이국의 수많은 동료들과 교수님들과의 소통의 한계나 정서적 차이에 치이고 치여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임계점까지 다다른 탓도 있지만요.

 

 

그를 지치게 하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내상(內傷)'.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지금 무언가를 놓치면서 사는 건 아닐까, 그중 하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고국에서 친구, 가족, 사랑하는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해졌습니다. 그리고 동료들과의 음악연주, 협연, 술자리, 나의 음악적 발전, 이런 모든 것들을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어쩌면 고향에서의 휴식이 제 생각을 바꾸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어쩌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감사하게도 아직 건강하게 계신 어머님과 한두 달 지내면서 애써 배우고 당해내고 살아남으려 하던 습관을 버리다보면 지금은 뭔가 한두 마디로 말할 수 없는 그 내상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 이렇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다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

 

인생에서 내려야 할 결정들. 크고 굵직한 결정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가 입은 나의 내상은.....지금은 다시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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