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의 "TV,책을 말하다" 22일자 방송에서는 장하준, 장승일의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다뤘다.

평소 이 프로그램의 포맷과는 다른 토론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출연자는 저자인 장하준과 장승일 그리고 패널 진중권, 이종태였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장하준 교수에 대해서는 스크린쿼터 문제 때문에 익히 알고는 있었다. 영화계에서는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는 경제전문 논객 대표주자로 장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었다. (또 한 명의 주자는 이해영 교수였다.)

장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읽어야지 하면서 여태까지 읽지 못한 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한탄한다. 어쨌든 장교수를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대하긴 처음이었는데 이 사람이 어제 나를 떼구르르 구르게 했다.

예전에도 이 프로그램에서 이런 형식으로 진행했던 전례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제 방송은 다룬 책의 성격상 시의적절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제한된 방송시간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방청객과 질의응답도 있었던 모양인데 방송분에는 나가지 않았다. 시간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박정희와 개발독재에 대한 문제는 저자들과 패널 사이에 더 많은 얘기가 오갔을 것이 분명한데도 방송에서는 초반에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수준이었다.

장교수는 이 프로그램 때문에 특별히 귀국까지 했다 하니 피디가 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초반 진중권의 쾌도를 휘두르는 공세에 장교수는 어눌한 말로 방어에 급급한 듯 보였다. 보는 나로 하여금 아연 긴장케 했다. 웬걸~ 초반의 말끊김과 먼하늘 바라보기는 "우리를 그런 식으로 몰지 마세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공세로 역전되는데, 그 말들이 거의 개그 수준이다.

장교수의 말 솜씨라기 보다는 한국경제정책에 대한 비꼼과 질책을 응축된 말로 던지는 것인데 그 한마디에 그 동안 해온 정부의 경제전략, 정책은 코미디 같은 꼴이 되고 만다. 예를 들면 '박쥐외교'라고 불렀던 OECD 가입 관련 한국정부 입장과 WTO에서의 쌀협상이나 농산물 개방에서 보여준 정부의 태도를 얘기하자 나는 거의 뒤집어졌다. 또 전후 자본축적을 해 가던 일본의 짝퉁 만들고 미국에 변명하기(이른바 Made in U.S.A.와 Made in USA 사건) 같은 얘기에 이르자 진중권을 비롯하여 TV 앞 나는 쓰러졌다.

장승일은 냉정한 어조로 조목조목 따박따박 풀어가는 반면, 장하준은 약간의 고지식한 어투로 예를 들어가며 미영중심의 자본주의의 치졸함을 얘기해주었다. 장하준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얘기꾼 같았다. 책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국가개입'이라는 문제는 특히 우리 같은 경우는 쉽지 않은 얘기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좀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자본주의의 독은 그 체체 내에서 싹튼다. 그것은 자본의 무한증식 속성이다. 여기에는 인정사정이 없다. 인간의 욕망은 자본과 함께 타오른다. 결코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독성이라 할 수 있다. 내부에서 자라는 독 때문에 전체가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달아가고 자본의 긍정성은 살리되 통제할 수 없는 자본의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갖은 국가적 개입과 규제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바로 자본주의를 위한 정책 '옵션'이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통제하기 위한 '긴고아'를 씌우듯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본의 무한한 증식 욕망과 이것이 궤도를 벗어나 여행 자체를 망치는 일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통제장치였듯이.

자본주의의 발전은 더 많은 이윤 추구와 이를 위해서는 내부 독을 제거하고 조절해야 하는 '(자본을 위한)합리적 규제' 또한 동시에 마련해가는 모순의 충돌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 읽은 경제관련 서적으로는 [세계경제를 뒤흔든 월스트리트 사람들](우태희 저 | 새로운 제안 | 2005)이 있는데, 이 책의 흥미로운 점도 바로 이런 것과 관련 있었다.

저자가 보기에 "월스트리트는 세계금융의 교과서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고안한 가장 효율적인 자본거래 시스템이기 때문"(p. 358)이라는 것인데, 저자는 월가의 사람들 뿐 아니라 월가의 '스캔들'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하고 있다.

'스캔들'이란 월가의 시스템을 뒤흔들 수도 있는 애널들의 비도덕성이라든지, 정책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자본거래의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저하시킨 사건들을 말함이다. "월스트리트에는 제도의 맹점을 이용하는 천재들이 너무 많기 때문".

따라서 미 정부와 주 정부 등은 자유방임에서 시대 변화에 맞는, 더 정확히는 자본의 규모 및 거래, 새로운 이윤창출 방식에 맞는 제도를 마련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월가 내부에만 맡겨둘 수 없는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월가를 다루는 언론, 기자들이 명명하는 개념, 명칭 등의 통렬함과 세련미도 매우 흥미있다. 내게는 그랬다.

한국은 너무 뒷심없이 세계자본(미국)에 시장을 내어주는 일을 하고 말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계경제의 막강한 힘을 알아버린 한국 국민은 사실 자본(가)-재벌이 '먹여살린다'는 말에 대해 내심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무는 현실적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참담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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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9-2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도 [사다리 걷어차기]도 재미나게 읽었는데, 어제 방송은 놓쳤군요. 님 글 보니 꽤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포스트잇 2005-09-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겠습니다. 아, 제가 웃음이 좀 많거든요. 어제 방송 재미있었습니다. 조만간 두 책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글 잘 안쓰는 제가 그동안 미뤄뒀던 논어와 공자평전 관련 글을 마무리짓느라 고생했는데 뒷글이 날라가버렸답니다. 어찌해야 할지, 지금 당혹해 하고 있답니다. 어쨌든 지금은 나가야겠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