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트의 [현기증.감정들]에서 호텔방에 틀어박혀 '오직 깊은 상념과 생각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간단히 목숨을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는 것과 정확히 대비되는 모습이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스가 등장하는 첫 장면일 것이다.

3인칭 시점인 작가 '나'는 토마스를 탄생시킨 이미지를 바로 '그[토마스]는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찾았다.

 

토마스-테레사, 사비나-프란츠, 두 쌍의 얘기에서 내가 감정이입해서 본 인물은 토마스이다.

소설에서 그의 얘기가 가장 극적인 면이 있으니까, 어쩌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모든 일을 가볍게 가볍게 헤쳐 나가며 살아가던 한 남자, 외과의사 토마스가 예기치 않게 테레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결국 끝까지 가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가벼움 속에 숨겼지만 지독한 사랑을 하는 남자 얘기잖은가.

쿤데라는 주요 인물 네 사람 중 무려 세 사람이 삶을 마감하게 한다. (결국 먼 훗날 사비나도 죽는다지만 구체적 언급은 없다.) 심지어 카레닌까지.

"테레사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 (263)

"테레사의 눈이 발산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270)

이렇게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감정일 것인가.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255)

토마스는 테레사를 만나고 돌아온 날 이후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숱한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여자에 불과했던 테레사는 그 만남 이후 토마스의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녀를 다시 찾아 데려와야 하나, 토마스로서는 어이없게 '그래야만 하는' 여자가 된 테레사를 두고 생각을 거듭하지만 결정짓지 못하는 사이 그녀가 그를 찾아온다. 저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 책을 들고. 그리고 그날 밤 고열을 앓으며 토마스의 집에서 자게 된다. 토마스는 그녀 곁에 무릎 꿇고 앉아 그녀를 보다가 고대 신화부터 있어왔던 '바구니에 담겨 버려진 아기' 메타포를 그녀에게 부여하게 된다. 토마스의 테레사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토마스가 다시 '창가에 서서 마당의 건너편에 있는 건물의 더러운 벽을 바라보고 있'게 되는 건 아들과 기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정치범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 서명을 권유받은 다음이다. 그는 서명을 거절했다. 테레사 때문이다. 테레사가 받게 될 괴롭힘을 피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어떠한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과는 회복하기 힘든 관계가 되더라도.  

테레사에 대한 처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볼 뿐이던 때.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4~15)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기 때문에 한번은 중요치 않다.

그러나 토마스는 점점 무거운 결정들을 내려간다.

결국 테레사와 함께 막다른 곳에 도달한 시골에서 자신이 수리한 트럭에 자신을 위해 예쁘게 차려 입은 테레사를 태우고 가다 사고로 죽어 함께 묻힌다.

 

토마스는 체코 작가동맹이 발행하는 주간지 독자투고란에 오이디푸스와 같은 자기 처벌을 강조하는 글을 투고한다.

이 나라의 불행에 공산주의자들의 책임을 묻는 글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운명에 끌려들어갔던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았을 때 자신의 눈을 버렸듯이 공산주의자들 역시 자신들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할 게 아니라 눈이라도 빼야 한다고.

그러나 독자투고란에 실린 그의 글은 형편없이 잘려진 채 실렸고, 이 때문에 토마스는 외과의사라는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었던)을 버린다.

인간의 육체를 다루며 그에 부수되는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사람, 의사로서 신성모독의 감정까지 느끼며 '필연'적인 '그래야만 한다'는 강력한 '소명'을 느끼며 의사가 되었던 그가 의사를 버린다. 거기에는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226)

 

'그래야만 한다' 그 너머를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기도 했을 거라고 작가 '나'는 토마스의 결정을 짐작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유리창 닦이가 된다.

어떻게 되었을까? 토마스는 그 너머를 봤을까, 그 너머에서 남은 게 무엇이었는지 확인했을까?

2년 후, 그는 몸도 정신도 지쳐버린다. (260)

테레사와 함께 시골로, 막다른 곳으로, 더 이상 갈 곳없는 곳으로 간 것이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테레사는 그가 이제 더 이상 메스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손이 굳었고, 머리가 세었고, 늙었음에 안도한다. 그 안도 속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모든 것을 털어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싶은가? 난 보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것인가.... 지금까진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마 20년도 넘어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 읽고 한 몇 개월 동안 집어들지 못했다가 이번에 뒤이어 읽었다. 눈물, 눈물 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