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다.

오랫만에 본 소설이다. 저자 임치균은 20년 동안 고전소설을 연구해온 학자이다. 전문소설가가 아니다. 그런 그가 소설을 낸 이유는 우리의 유산인 고전한문소설이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무시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고 밝힌다. 전공자인 저자가 보기에 우리의 고전소설은 그 상상력과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이 심오할 뿐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으로도 흥미진진한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한문소설이 지금 '일반인'들에게 독해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한문소설은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번역에는 고사나 인물 또는 표현들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소설을 번역하여 나온 책들은 각주 또는 미주 등이 줄줄이 붙어 있어 소설책인지 학술서인지 '일반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형식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러한 취약점을 타파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고전소설을 소설로 소개한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소설 속의 소설'이다. 후자의 소설은 고전한문소설을 말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매우 어색한 듯 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신선하다. 어색하다는 것은 미안스럽게도 저자의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초보자 수준이어서인지 이 소설에서 소개하고 있는 고전소설이 저자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리 재미있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다. 신선하다는 것은 고육지책처럼 발상의 전환을 해냈다는 점에서 상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가 소설을 쓴 이유가 고전한문소설을 각주나 미주 없이 즉, '독서의 순간 단절' 없이 고전소설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한문소설을 그대로 옮겨 소개한 뒤 그에 대해 저자가 고안한 소설의 주인공들이 (인간)각주의 역할을 맡아 자연스럽게 설명해주는 형식을 이어나간다.

 [검은 바람]에서 '소개' 되고 있는 고전한문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이며 임제의 [원생몽유록] 그리고 작자미상의 [운영전]이다. 나는 이 소설들을 고등학교 때 배운 수준 외에 아는 게 없었다.

이 책을 일단 집어든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었다. 미스테리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 얼굴의 이순신]을 쓴 은행연합에 다니는 직장인 김태훈이 최근에 낸 [이순신의 비본]도 그렇고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이나 [열녀문의 비밀] 등 역사추리물의 성과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하다. 소설적 성과를 논하기 전에 일단 우리의 역사, 역사인물에 대해 지녔던 얄팍한 상식 또는 정설로 받아들였던 단편적 사실들을 소설적 상상력과 문학성으로 헤집어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인식하고 사유하도록 하는 도전은 분명 흥미진진한 일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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