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개혁을 집어던진 노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칼럼의 마지막은 이렇다.

"대통령 되기 전과 후의 변화무쌍함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따를 집권자가 또 있을까. 미국 앞에서 옷을 벗고 재벌 앞에서 옷을 벗더니, 마침내 영남의 지역주의 앞에서 옷을 벗고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를 뽑은 국민이 초라할 따름인데, 더 벗을 옷이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이 백성들에게 보이는 줄 모르고 당당하게 행진하는 임금을 보고 백성들이 대놓고 웃는 장면으로 끝난다고 기억하고 있다.

임금이야 백성들이 어쩔 수 없는 존재였기에 대놓고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백성들의 손으로 뽑는 임금이 아니기에 그리 멍청한 짓을 하는 걸 보며 왕정을 맘껏 조롱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번 임금은 허세만 가득하다고 뒷담화를 나누고 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무 대통령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무참해지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IV~V]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최근에 읽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가 로마제국 역사에서 한 역할을, 낡은 공화정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통치형태인 제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연 개혁가로 규정하고 있다. 시대 인식과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는 역할을 과감하게 실행해 나가는 카이사르의 모습은 시오노 나나미의 중언부언하지 않는 문장들 속에서 아주 명쾌하게 드러나고 있다.

역사를 중요한 전환점에서 그 역할을 떠맡은(또는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개인과 시대상황, 미래를 보는 관점, 실행력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 개인은 어떻게 길러지며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나타내는 과정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게 한다.

매우 복잡하고 첨예한 지금 한국에서 국민은 정치체제와 의미 있는 개인을 선택할 수 있는 토대를 고민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아침에 그런 번다한 생각들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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