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는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몇 장 읽고 반납했었다.

그땐 바쁘기도 했고, 좀체 집중이 잘 안됐었기 때문이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작가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 출간 후 1년만에 나온 [불로의 인형]은 한마디로 왕재밌다.

예스24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추리소설이라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단 두 권을 읽은 게 전부라고 했다. 그 두 책을 수십번 읽었단다. 지향하는 곳에 움베르토 에코가 있겠지만, 에코가 추리소설이라면 이정돈 써야된다고 했던 [푸코의 진자]는 많은 독자들에게 어렵다고 장용민은 판단한다. 독자보다 반보 또는 한보 정도만 앞서야 한다는 생각도 지니고 있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영화화된 걸 봤다. 원작이 어느 수준인지 모르지만 영화는 참신한 발상에 비해 캐스팅이나 전개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흔히 하는 말 있잖은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뭐 이런 정도의 칭찬. 끝.

원작자라는 것만으로 기대할만한 작가였다.

진시황의 불로초를 모티브로 한중일 3국의 인형극과 온갖 권력과 폭력의 욕망이 한데 엉키며 2천년 여에 걸친 장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때론 역사를 아는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때론 직접 당대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장장 557페이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준을 떠나서 이 정도 분량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무조건 칭찬 한표 던질 수 있다.

작가는 '순문학과 장르소설'이라는 구분 자체를 불쾌해했지만 흔한 장르소설적 캐릭터들이 난무한 면이 있고 대개는 기능적 역할들에 머무는 측면도 많다. 문장도 집어던질만큼 나쁘진 않지만 얕다. 오로지 이야기의 힘, 역사속 빈틈을 어떤 상상력으로 메웠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자잘한 디테일에서 설정과 해결은 기발한 면이 있지만, 큰 얼개에서 비밀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마지막의 반전이 의외로 약한 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하나 걸린 건, 시작을 유방과 항우의 목숨을 건 '홍문지회'로 시작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는데, 뒤에서도 종종 아예 직접 당대의 장면을 삽입해 넣어 플래시백 역할과 전달해야 할 이야기를 싣는 역할을 하게 한다. 홍문지회나 진시황과 서복, 창애 정도의 이야기, 즉 여섯개의 인형이 탄생하게 된 사연과 관련된 역사부분 외에 플래시백은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니었나 싶다.

갑신정변과의 연계도 기대보단 약했던 측면이 있고...

해외 추리, 팩션, 스릴러 소설과 어떤 점이 강하고 약한지 비교해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멋들어지게 만든 문장들은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 가온과 그가 소속된 연백 갤러리의 회장과 만남에서 가온을 쳐다보는 회장의 시선을 묘사하는 문장.

회장이 가온의 의중에 낚싯대를 담그듯 뚫어지게 바라봤다. (47)  

 

가온은 췌장암 판정을 받는다. 수술하면 생존율 12퍼센트.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을 양분 삼아 죽음이 점점 영역을 넓혀 가는 것 같았다. (51)

 

일본 왕족과의 만남에서,

그는 여러 겹의 금고 문을 하나씩 열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244)

 

창애가 만난 신선 노인. 노인은 불로초에 버금가는 무덤초를 먹고 영생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표정에 따라 시시때때로 나이가 변하는 것 같았다. (525)

착상과 자료조사를 통한 상상력으로 잘 봉합하는 이야기 능력은 좋은데 얕은 인물, 기능적 문장들이 많아 초반엔 몰입하기 어려운 듯 하다. 헐겁다는 얘기다. 대신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니 끝까지 읽게 된다. 어떤 독자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흥미롭지 않겠지만.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푸코의 진자]를 내가 읽었나? .....

 

 

 

 

 

 

 

 

 

 

 

 

 

 

백탑파 시리즈를 썼던 김탁환과의 비교도 가능하겠다. 백탑파 시리즈 외 이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알 수 없지만, 팩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둘이 비슷하고 다루는 솜씨 면에서는 김탁환 쪽이 다소 무게감이 있지 않나 싶다. (장용민은 단순히 과거 역사만으로는 이미 자리잡은 작가, 장르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펼치는 이야기를 더 고민하는 듯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라 2014-09-25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기회되시면 <궁극의 아이>도 또 한번 읽어보세요. 처음 몇 장을 넘으면 정말 손을 뗄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읽은 지 꽤 됐는데, 이야기가 선명하게 기억나요.

포스트잇 2014-09-26 09: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꼭 읽어봐야겠네요. `처음 몇 장`이 늘 문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