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는 딸 메리를 '스위드'가 데리고 오는지 어떠는지, 어떻게 되는지 이 얘기가 자꾸만 지연되는데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놓기 쉽지 않을만큼 재미있다.

 

작가인 '나' 네이선 주커먼은 60대로 어느 파티에서 유력인사로 온 시모어 레보브와 재회한다. 어린 시절 친구 제리의 형이자 온 동네 사람들의 자랑이었으며 선망의 눈으로 바라봤던 멋진 형 시모어. '스위드(스웨덴 사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온순하고 모든 것을 매끈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그 형과 조우한 뒤 그 형은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들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는. 그러나 정작 만났을 때 그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해서 참석한 동창회에서 스위드의 동생 제리로부터 형 스위드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제리는 형의 장례식 참석차 고향에 왔다가 동창회에 참석한 것이다.

도대체 스위드는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왜 나를 만나자고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들'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작가인 나, 주커먼은 스위드의 생을 쫓아가 본다.

처음부터 흥미를 잡아끌더니 얘기는 전진하려고 하다가 과거로 돌아가거나 인물들의 얘기로 빠져들기도 하는 등 지체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아주 재밌게 전개된다. 시모어 레보브라는 인물 자체가 흥미롭다. 시모어는 왜 나를 만나고 싶어했겠는가? 만나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끝까지 얘기하지 못했던 건 왜 였겠는가? 이건 시모어라는 인물 자체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시모어는 '왜 자기였을까? 왜 돈(시모어의 부인)이었을까? 왜 메리였을까? 왜 메리는 그렇게 됐을까?"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했을 것이고 주커먼은 시모어의 그 질문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지막에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란 질문을 하는 이는 누구인가? 시모어 자신인가? 주커먼인가?

대화로만 이뤄진 장면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더 뒤에 나오지만 더 이전의 과거의 일을 다룬 장면 하나.

장차 시아버지가 될 루 레보브와 돈이 처음 만나 이른바 '협상 또는 타협'하는 장면의 대화.

레보브 집안은 유대인이며 돈은 가톨릭 집안이다.

또 다른 장면은 문제의 날, 시모어가 딸 메리를 만나고 돌아온 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한 저녁 파티.

딸 메리의 언어치료사였던 실라 샐츠먼과의 '으르렁거리는' 언쟁. 시모어는 이때 처음으로 타인에게 폭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늘 타협하고 늘 참고 늘 자족하고 늘 상황의 밝은 면만 찾으려고 했던 예의바른 사람이.

그러나 언쟁의 끝은 "자신이 속해있던 황량함으로부터 저녁파티의 견고하고 질서잡힌 우스꽝스러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견디고 억누르는 것은 결국 시모어의 망상이 되기도 한다. 시모어에게 딸 메리의 귀환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이고, 지친다. .............................

 

아주 우연히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겹쳐 읽었는데, 이 책 역시 처음부터 흥미롭다.

'나'는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암으로 사망한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 형이 남긴 여행기와 사진들을 보게 된다.

천산수도원이라는 곳의 지하 벽에 필서된 성경 구절들.

누가 벽에 그 글들을 썼으며 천산수도원의 내력은 어떠한가? 수도원은 어떤 연유로 그렇게 흔적도 없이 폐사지처럼 남게 된 것인가?

이 얘기에 '후'라는 인물의 얘기가 병치된다.

천산수도원과 그곳 벽에 정성스럽게 쓰여진 글은 누가 무엇 때문에 쓴 것인가?

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불교탄압, '법란'을 모티브로 해서 연재된 소설이라는데 .......... 이승우의 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의 이면]으로 처음 만날 때보다 좋아졌다.

이야기는 중층되고 성경이 성경 구절보다 들여다보는 그 사람을 오히려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모티프는 문장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문장 때문에 이야기가 지체되기도 한다 .

정작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급해지고 요약되듯이 정리된다.

이승우의 소설은 [생의 이면]과 [지상의 노래] 두 편을 본 거지만, 인물의 올드함은 못마땅하다.

죄의식에 몸부림치는 인물들. 죄의식에 대한 고찰이든 뭐든, 여자 때문에 사무치는 죄의식으로 자학하는 인물들이 작가에게는 그렇게도 사무치는 것인가? 인물에 흥미를 느끼든가 아니든가, 그건 곧 취향의 차이인가?

 

[미국의 목가]는 1997년, [지상의 노래]는 2012년 작품이다.

 

아이고... 지친다.

 

 

 

 

 

 

 

 

 

 

 

 

 

 

 

 

[지상의 노래]에는 구약의 '압살롬' 이야기가 '후'의 이야기에 중첩되어 있다. 소설에 직접 나오는데, 다윗왕의 장자 암논과 이복동생 압살롬, 그리고 누이 다말의 얘기. 압살롬은 뒤에 아버지 다윗왕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참살된다.

역시 구약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덩어리다.

윌리엄 포크너의 [압살롬,압살롬!]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책더미 속에 압살된 채 있다. 어..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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