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들 시리즈 세번째, [플로베르 : 자유와 문학의 수도승]의 저자 허버트 로트먼에 따르면,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플로베르 박물관과 크루아세 지역의 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란 플로베르가 57세에 발표한 단편 [단순한 마음(Un Coeur Simple)]을 쓰기 위해 자연사 박물관에서 빌려다 관찰했던 앵무새다.

루앙의 자연사박물관 대장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씨에게 대여함 : 아마존 앵무새의 박제 하나'라고 쓰여 있다, 고 로트먼 전기에 의하면 그렇다. 아마존 앵무새. 로트먼의 책에 사진도 있다.

줄리엔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그 앵무새를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내가 작년에 읽었다. 재밌게 읽었다.

플로베르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마 그 때문이었는데... 소설은 생각나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에 또 읽어보려 한다. 읽고 꼭 페이퍼를 쓰....그때 봐서. 힛.

 

플로베르의 [단순한 마음]은 그가 아마 처음으로 시도해본 단편들 - 세가지 이야기, '수도사 성 쥘리앵 전', '단순한 마음', '에로디아스'- 중 하나다. 우리에게 번역된 건 민희식 번역으로 된 [플로베르 단편집]에 수록된 게 유일한 듯하다.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판매되고 있어 오늘 주문했다. 이럴 땐 감사할 뿐이다. 설마 번역이 집어던질 수준은 아니겠지.

 

 

 

 

 

 

 

 

 

 

 

 

 

 

[플로베르 단편집]엔, '순박한 마음'으로 되어 있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엄청난 자료와 독서, 관찰을 필요로 했던 플로베르였기에 [순박한 마음]의 내용,

'한 남자, 여주인의 아이들, 조카, 자기가 돌보는 노인, 그리고 앵무새를 차례로 사랑하다가 앵무새가 죽자 그것을 박제로 만들고 자신의 임종을 맞이하여 그 앵무새와 성령을 혼동하게 되는 한 불쌍한 시골 여자의 이야기'라고 지인에게 들려줬다니,

저 앵무새를 꼭 눈앞에서 오래 두고 관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앵무새의 습관과 질병에 관한 것을 알아보고 싶어져'.

 

그런데, 이 단편이 생각보다 대단한 모양이다.

오랜 벗으로 교류했던 조르주 상드에게 플로베르는 이 작품이야말로 '윤리적인 경향, 아니 그보다 인간적인 측면이 당신 마음에 들 것입니다! 안녕, 나의 스승, 당신께 부드러운 키스를 보냅니다.'라고 편지를 써 보냈지만, 플로베르의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소설을 조르주 상드는 끝내 읽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조르주 상드는 늘 플로베르를 존중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인정했지만, '당신이 쓴 작품에서는 당신의 일면이 전혀 드러나지도 폭로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불만스러워했고, 플로베르에게 왜 글쓰기가 그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다. '조르주 상드는 감정을 중시했고, 플로베르는 감정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예술가'였다.

게다가 이 [순박한 마음]은 [보바리부인]과 함께 플로베르의 대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그 정도의 작품인지는 봐야 알겠지만 .... 봐도 모를 확률이 높지만.   

 

소설 한 편을 쓰는데 보통 5년 정도가 걸리는 플로베르였던 듯 싶다. 1848년 파리혁명 등 격동을 보면서 이미 '그 시대의 어리석음(플로베르는 귀족정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걸로 보인다)을 경험한 후에 그 어리석음의 기록을 수집하기 시작하는 두 필경사의 이야기'를 착상했던 때로부터 1872년 집필을 시작하여 그 한해만 150권 정도의 책을 봤다.

이 [부바르와 폐퀴셰]는 1872년부터 약 10년 뒤 1880년까지 1500권이 넘는 책의 내용을 요약, 수십건의 색인노트를 만들어놓았지만 결국 플로베르가 죽은 그해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성이 되었다.

지독하다. 불행하다. 플로베르의 만년은 평생을 돌보았던 조카딸 부부의 파산으로 플로베르에게 빚독촉 문서가 날라오고 그때마다 플로베르는 감정적으로 심하게 흔들렸던 듯 싶다. 돈 때문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인들에게 일자리를 부탁했고 도서관 자리 하나 때문에 권력싸움에 밀려나는 굴욕을 맞보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말년을 보낸다. 작가들을 비롯해 지인들의 방문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움직여 만나기도 했지만 말년의 시간 대부분은 혼자서 지내며 14시간은 보통이고 18시간 정도를 집필하며 글을 썼다.

 

20년 어린 에밀졸라와의 관계,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과 스타일 등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플로베르는 표면을 다룰 뿐 인물의 내부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평이라든지, '졸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 하게 재현하고자 했고 플로베르는 언어에서부터 출발했다'.

플로베르 자신도, 정작 당사자도 친자관계를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떠돈 기 드 모파상과의 관계도 새삼스러웠다.

모파상에게는 작가라면 '독창성'을 요구했다.

'아주 작은 사물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담겨있는 법이다. ... 불과 들판의 나무를 묘사하려면 다른 불이나 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앵무새는 꼭 가져왔어야 했다.

정작, 졸라, 플로베르와 함께 선배 대접을 받으며 한 스타일로 묶였던 에드몽 드 공쿠르가 성실하게 남긴 메모에는 '한 시간에 한 단어씩 써서 책을 쓰는 사람'이라는 놀림과 함께 '독창성 없는 지극히 평범한 재능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평이 남아있다. 

 

생전의 오랜 적이었던 쥘 바르메 도르비라는 이는 '(플로베르는)영감을 받은 예술가이기 보다는 자신의 작업에 매우 성실한 문학노동자'라고 평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단순소박한 중얼거림일 뿐'이라는 것이다.

 

장폴 사르트르는 플로베르 연구서 [집안의 천치]를 남겼는데, ...... 연구서로서의 결점을 많이 지적받는 모양이다.

혹, 플로베르 연구서로서 보다는 사르트르 자신의 분석으로서 플로베르를 우회한 것 아닌가, 아님 플로베르란 단순히 맥거핀에 불과한가? 안 봤으니 알 수 없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 작가를 맥거핀으로 하여 스스로를 숨긴다 혹은 밝힌다?

 

프랑스 현대작가들에게 플로베르는 한 '물결'의 선배가 됐고, 라틴아메리카 일단의 작가세대에게 플로베르는 또 선두 깃발이 되기도 했다 한다. 플로베르의 힘이란 무엇인가?

[보바리부인]을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다. 간결, 명확, 도약, 유머. 내가 좋아하는 문장의 요소다.

그에 비하면 [보바리부인]은 익히 알고 있는 엠마를 빼면 냉담하게 읽게 된다. 플로베르가 '바로 그거야'하며 웃을 일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도 숭배했던 플로베르.

급기야 줄리엔 반스는 [플로베르의 앵무새]까지 관심을 가졌다.

 

다음엔 허버트 로트먼의 [카뮈 :지상의 인간]을 볼까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글을. 쯧, 난 긴 글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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