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를 생각할만큼 내가 성숙하지도 영민하지도 못한데, 니체만은 계속 걸린다.

20대 후반, 사연이 많았던 내 젊은 날이었는데......,

한참 어린 친구의 작업실이자 생활 공간이었던 홍대 근처 지하작업실에서 술마시고 놀던 중, 그 친구가 갑자기 책을 읽어주겠다며 꺼내 장대하게 낭독해주던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어느 대목이었다. 무슨 구절이었고, 대목이 어디쯤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친구는 낭독을 마친 후에도 저 혼자 '대단하지 않냐고...'고 감탄해가며 도취된 모습으로 한참을 웃었다.

세로쓰기로 된 책이었던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어쨌든 그 책은 아름다워보였고 책을 쥐고 있던 그 친구의 손은 섹시했다.

대학시절, 니체는 도저한 낭만성을 지니고 있는 듯해보였다. 그런거 읽고 있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나와 니체는 엇나갔다.

세월이 흘러 은은한 조명이 켜진 지하 작업실에서 술 취한 채 들었던 니체는 내용보다는 철학서와 어린 친구라는 참으로 허세스런 조합으로 내 기억에 오래 남게 됐다.

 

잊고 살았는데 니체와 힐링이 묶이는 걸 얼마전부터 보게 되면서 다시 니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김정현의 [철학과 마음의 치유: 니체, 심층심리학, 철학상담치료]도 계속 보관함에 있는 책인데, 읽을 자신이 없어서 그냥 두고 보고만 있다. 김정현은 이미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을 저술했기에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오래되었고 깊어가는 모양이다.

 

 

 

 

 

 

 

 

 

 

 

 

 

 

 

 

게다가 몇 주 전 책 관련 글들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 글에는 펭귄판(홍성광 역)) [차라투스트라...]가 쓰였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민음사(장희창 역)의 것이다. 완전 소장용이다. 펭귄판의 [차라투스트....]를 구입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표지 때문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니체의 이 책과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지, 이건 그냥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펭귄은 잘 맞지 않는데(펭귄클래식 번역본 중 제대로 읽은 게 없다, 흑) 그래도 일단 구입해뒀다. 그러고 보니 민음사판 표지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사용했는데 펭귄판만큼 인상적이지 않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니... 제법 어울린다. 

 

 

 

 

   

 

 

 

 

 

 

 

 

 

 

 

 

진은영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도 함께 구입했는데, 진은영은 철학을 전공했고 니체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데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열세살 때 구백팔십원으로 서점에가서 골라 산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문고책이었다고 한다. 진은영은 열세살 때 자신의 길과 만난 운 좋은 사람이었네.

 

 

 

 

 

 

 

 

 

 

 

 

 

웅진주니어에서 나온 이 책은 '책읽는 고래' 시리즈 중 하나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고전을 쉽게 해설해주는 시리즈라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일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을 대상을 얼마나 생각하고 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지금 누구에게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읽히게 되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는가.

물론 나는 읽었고 '더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추천까지 해줘서 박찬국의 [전통도덕에 도전하다 니체의 도덕계보학]까지 주문했다. 이 책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이란다.

 

 

 

 

 

 

 

 

 

 

 

 

 

 

이런 책은 누가 읽냐고? 나 같은 사람이 읽는다. 정작 이 책의 대상이라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 책을 읽을까? 읽어야 하나?

기회는 많다. 그 기회에 가 닿을 수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누군지 궁금하다.

 

정작 니체의 원저서는 읽어본 적이 없고 참고서적만 보고 있는 격이다. 지금부터 약 10여 년 전에 읽은 고병권의 저서는 쉽고도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 니체를 다시 들여다 본적이 없다.

 

 

 

 

 

 

 

 

 

 

 

 

 

 

니체와 치유의 철학이라는 주제가 이 시대에 먹히는 주제가 된다는 게 재밌다. 아, 물론 소수에게 이겠지만.

진은영의 저 책을 주말 걸쳐 읽으면서 아, 젊은 책이구나, 젊은이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는 있겠구나,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이라는 부제가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열정을 강요하고 열정마저 착취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에 불행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망치, 열정, 이 시대 핫코드 아닌가? 일단 조심스럽게 읽어볼 일이다. 고병권이 '위험한 책'이라고 한지 10년이 지난 뒤다. 여전히 위험한 책일지.

 

이 책, 칭찬이 많긴 하던데,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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