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제야 읽었다.

기대했던만큼 만족스러운 책은 아니었다, 죄송. 대충 설렁설렁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울컥했던 대목이 딱 두 군데 있었고, 지나온 내 과거가 생각나서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한 대목이 있었다. 이 정도면 그리 나쁜 책은 아닌가? 나쁜 책이라는 말이 아니라 기대한만큼의 내용이 담긴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뜨겁게 울컥했던 부분은 광주가 나온 대목이었다.

 

80년 5월 이화여대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회의를 연후 모임이 파한 후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붙잡혔다. 

 

곧바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산하 경찰청 특수수사대로 끌려가 그곳에서 두 달을 보냈다.

서울 관악경찰서, 수도군단 계엄보통군법회의, 안양교도소를 거쳐 논산훈련소와 강원도 화천의 백암산 소총중대, 철책선 소초, 서울 서빙고 보안사령부 대공분실까지 두 번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을 전전했다. 크게 다치거나 죽지 않은 것은 때로 비겁하게 처신한 덕분이었다. 그때 어떤 상황에서도 정말 용감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은 광주의 전라남도청에서 목숨을 잃었다. (p.26)

 

강제입대 후 계속되는 괴롭힘과 고문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군 생활을 버텨나가며

 

왜 사나 싶었다. 휴교령이 내리면 모든 도시에서 동시에 민중봉기를 일으키자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오직 광주의 대학생들만 그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그곳에서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 있었다. 학살을 저지른 자들의 훈계를 들으면서 구차하게 살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것은 절망감이었다. (p.81)

 

지난 대선 또한 한번의 대통령 선거일 뿐, 선과 악도 아니고 단지 선거전략과 운동의 성공이나 실패일 뿐이라고 정리하면 되는 것이고. 저 광주에 기대 빌어먹고 있는 정당도 있으니 광주가 더 쓸쓸하다. 

이제 돌아와 앉으니 죽음이 더 가까운 초로의 한 인간이 더 크게 보일 뿐이라 한 개인으로 그리 자족하며 살겠다는 데 그것도 그리 인정하면 그뿐. 좋겠다.

 

내게 정치는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성과 감정, 둘 모두 끝없이 소모되는 가운데 나의 인간성이 마모되고 인격이 파괴되고 있음을 매일 절감했다. (p.238)

 

인간성이 마모되고 인격이 파괴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내면이, 이성과 감정이 마모되고 갉아먹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일을 했던 적이 있어서 나는 저 말을 읽는 순간 다시 예전의 내가 생각났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었고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막상 뛰어들자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음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내게 집중하며 견딜 수 있는 재능이 없음을 절감해야 했던 그런 일.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생각났다.

매일매일 고달팠고 열등감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들에 시달렸다.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을 내가 가지지 못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아픔은 상상외로 컸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고 그로부터 멀찍이 도망쳐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아픔 없이 그 시절을, 그 일을 떠올리지 못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패퇴'했다고 나는 말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까지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운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로하지만

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위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상화된 나, 찬란한 나'를 저 위에 설정해놓고 진짜 나를 불신하고 열등함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가엾은 생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유시민처럼 편안히 돌아와 거울 앞에 앉지 못했다. 물론 아직 그때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이미 적지 않은 나이다.

여전히 소모되는 느낌........은 없는 듯하지만 시간낭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시달리긴 하고 

어서 유시민 정도의 '마음이 설레고 일상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 정도의 편안함은 찾았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