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 비가 오긴 오는건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주문했다.
어제 받은 책을 잠시 미뤄두고 오늘 밤부터 이 책을 읽으리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
[폭풍의 언덕]을 언제 읽었을까. 아마 고등학생 때쯤이었으리라. 아주 아득한 시절이다.
전혀 무감동. 딱 싫어하는 얘기였다.
영화 개봉했다는데 영화도 볼까? 평생 관심 가져본 적 없는 이 책에 이번엔 왜 이다지 관심이 가는 걸까?
황량함. 뼈가 시리게 황량해지는 몸과 마음의 묘사가 어떤지 궁금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지금까지, 밤에 정말 비가 내릴까 기대할 수 없을만큼 쨍한 더위 속에서 폭풍을 기다린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는 히스클리프 1인칭 시점으로 생동감을 잘 보여준다는 이동진의 평이다. '바람이 탄식하고 들풀이 호소하는 멜로'란다. 광포한 사랑을 전통적인 이야기체를 따르지 않고 연출했다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하지 않기도 하고, 아직까진 그렇다.
이동진은 예전엔 아웃오브안중이었는데, 요즘은 그 성실함과 꾸준함을 믿는다.
오랜 세월 꾸준히 아주 성실하게 자신의 할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요사이는 새로 보인다. 내가 더 젊었을 때, 그들의 무던함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을지 모른다. 우직한 사람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중고교 시절에 읽었던 소설들을 수십년이 흐른 뒤, 그러니까 중년도 훌쩍 넘겨서, 다시 읽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라는. 운이 좋은 사람들일까. 축복받은 사람들일까. 더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어, 돋보기를 쓰고 다시 500페이지 넘는 소설을 읽을 수 있다면 분명 축복받은 생을 살았다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죽음이 평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