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이 많은데 시동이 잘 안걸린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을 읽으며 주말을 보냈다. 아직 약 250여 페이지 남았다. 다 읽지 못했다. 현대사를 컨텍스트로 삼은 장대한 서사극은 참으로 오랫만에 읽는 것 같다. 내가 정말 나이가 드는 것인지 차마 읽기가 겁나는 장면도 많았다. 대학 때 남미의 혁명운동사도 읽었었다. 그때도 끈질긴 저항과 그 결과에 따른 참혹한 대가들의 사례를 많이 접하긴 했었다. 그러나 그때 남미의 마약 카르텔에 대해서 자세히 다뤘던 책이 있었나 잘 기억이 안난다.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건 그 심각성을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 조직력과 자금력으로 국가를 사고팔 지경에까지 이르는 그 지경을 말이다. 그땐. 세월이 흘러 이렇게 소설로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이르는 중남미 정치사회사를 만나게 되니 여러 생각이 든다. 결말까지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돈 윈슬로 라는 작가, 아마 이런 소설 다시 쓰기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압도적이다.
개의 힘, 시편에 언급된다는 이 힘, 악의 힘, 머리는 셋이고 꼬리는 뱀의 형상을 한 지옥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가 파수견이 아니라 안내자이듯이 한번 발을 들이면 도저히 떨칠 수 없는 그 힘, 사악한 힘, 그 힘의 자장에 갇힌 인물들의 비극성도 강렬하다.
우리 소설은 무엇을 하는가.
전 씨가 뭘 했다고? 이런.... 이건 아니잖나. 이래서는 안되잖나. 보자 보자 하니까 보아 넘길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책에 몰두해 있다가 일요일 오후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아찔했고, 검찰 하는짓도 참아 보아주기 힘들었다. 이젠 뭘 듣고 보아도 심드렁해진 것 같은데 가끔은 일순간 온몸을 훑으며 떠오르는 화기에 화르륵거리기도 한다. 여전히 그러기도 한다.
유로 2012 시작된 후 전후반 경기를 다 본 건 어젯밤 스페인vs이탈리아전이 유일하다. 너무 졸려서 전반전 보기도 힘들어서 다른 경기들은 보다가 포기했다. 아, 어제의 경기는 축구는 이런 것이다는 것을 너무나 오랫만에 느끼게 해준 경기였다. 유럽 리그들을 평소에 보지는 않으니까 프로구단들의 경기력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난 국대경기가 더 흥미롭다. 순수하게 국대경기를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리그들보다는 하나 더 요구되는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