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마지막 책은 W. G.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다.
신형철의 '올 해의 소설'이다.
소설을 소설이게 하는 건 글이라는 것, '소설적인 문장'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는 것, 제발트의 글은 '소설적인 문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고뇌한 흔적을 품고 있는 문장'으로 '경건할 지경인 벽돌같은 문장을 써나간다'고 신형철은 이유를 들었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서술자와 인물의 내면이 뒤섞이는 자유간접화법을 거의 혐오'하는 듯한 제발트의 스타일을 소개했다.
그래 한 번 읽어보자. 자유간접화법을 혐오하고 경건할 지경인 벽돌같은 문장들로 된 글을 한 번 읽어보자,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의욕이 생겨났고 구입했다. 월요일에 받아들었으나 이 일 저 일에 치여 몇 장 읽어보지 못한 상태로 두었다.
표지 이미지는 황혼의 밝음이 잘 살아나있지만 실제 책 표지는 더 어둡다. 개와 늑대의 시간도 지나 이제 본격적인 어둠이 습격하기 전의 밤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들어오는 표지 속 인물의 이미지가 어쩐지 연말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로슈한계라는 개념이 있다. 위성이 모행성의 기조력에 부서지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 거리를 일컬는 말인데,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유성체의 작은 입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괸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단다.
서양에서 토성은 우울 기질과 상관있는 행성이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고, 토성이 위성들을 싸잡아 모조리 파괴하여 잔해들을 고리로 거느린다는 건 그 자체로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 같다. 뭐, 위성이 한계를 넘어서서 자꾸만 접근하려던 위성의 욕망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모성의 인력이 분명 강했기에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여튼 토성과 그 고리는 그런 슬픈 작용을 담고 있는 존재들이다.
주인공 나는 방대한 작업을 끝낸 어느 여름 끝무렵 공허감에 휩싸여 막막한 벌판으로 되어 있는 영국 동부 써퍽 카운티를 도보로 여행한 뒤 꼭 일년 뒤에 온 몸이 마비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낀 나는 현실을 되찾기 위해 써퍽 지역을 걸어다녔던 기억을 되살리며 글을 쓰는 것이다.
이런 소설을 나는 잘 읽을 수 있을지 자못 나를 시험하듯 몰아대고 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이제 늙음을 걱정해야 하고 어쩌면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들을 떠나보내야 할 날이 가까워옴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 시점에 나는 왜 새삼 소설로 나를 시험하는 데 마음이 쏠리는 것일까. 위로받고 싶은 까닭이다. 사람에게서 받지 못하는 위로를 나는 소설에서 찾고 있는 모양이다. 허망하고 가당치 않는 일이라 해도 그렇게라도 가슴과 영혼을 채우는 느낌을 갖고 싶다. 사람과 만나고 돌아서서 돌아오는 그 길의 외로움을 좀체 채울 길 없었다.
세밑에 김근태 선생의 부음을 듣다. 아침에 눈물바람했다. 유난히도 창백한 안색을 가지셨던 분. 많은 분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일 계획이 무산됐다. 너무 쓸쓸하지 않게, 고독하지 않게, 가련하지 않게, 세밑 보내기. 다가올 새 해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