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김훈의 글을 펼쳐봤다. 새로 낸 소설 [흑산] 때문이다. 정약전을 중심으로 한 소설인 모양인데, [풍경과 상처]에 실린 <정다산에 대한 내 요즘 생각>이라는 글에서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뭐 아님 말고.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자산이라 쓰고 있었다. 자는 흑 자와 같다.
- [자산어보 서] -
정약전의 '무서움'은 정약용의 '치욕'과 비교된다. 현실의 무서움과 통절한 절망이 '고등어 가자미 노래미 오징어 꽁치 병어 꼬막을 들여다보게 하는 모양이다'고 쓴 대목에 이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대상을 언어로 순정하게 정리하는 자세로 대상의 '핵심적 진실'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모양이라고 썼다. 예를 들어 고등어에 관한 언어로 조립된 구조물이 고등어의 핵심적 진실과 만나게 되기를 염원했으리라... 뭐 이런 식이다. 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자라니... .
[자산어보]는 대상을 언어화할 수밖에 없는, 버려진 자의 외로움의 기록으로 읽힌다. 절해 고도의 유배지에서 인간의 언어로 고등어를 설명하는 자가 되느니, 차라리 원양을 헤엄쳐 다니는 등푸른 고등어가 되는 편이 더 유복했으리. 정약전은 섬에서 죽었다.
- [풍경과 상처] , 49페이지 -
[자산어보]를 읽어보지 못하고 대신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재밌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자산' '현산'에 대한 견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잘 생각나지 않고 이 역시 예전 메모를 찾아봐야 할 모양이다.
기대되는 면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