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한겨레신문 읽다가 동감하는 칼럼이 있기에 옮겨놓는다. 여튼 마지막 말들에 적극 공감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한겨레 2011. 2. 8. [세상 읽기] 복지‘국가’만으로는 부족하다 / 이원재 

자동차가 달리려면 기름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기름만 넣는다고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빠르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움직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욱 생각할 것이 많다. 차체가 튼튼하고 안전해야 하고, 운전기사도 유능하고 선량해야 하며, 지도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내기도 해야 한다. 나를 잘 모시겠다면서 기름만 찾고 있는 운전기사는 어쩐지 불안하다.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 복지와 재정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며 받는 느낌이다.

‘의무급식’에서 시작해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 정책과 관련된 논쟁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 논란의 축은 이제 ‘돈’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재정이 많이 드는데, 그러려면 돈을 써야 하는 국가가 기존 재정을 아끼거나 세금을 더 거두어 재정 여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국가가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하게 하면, 복지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게 보인다.

나는 한국 사회에 복지가 늘어나야 하고, 가능하면 그 복지는 보편적 성격이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그 논의가 국가의 재정과 역할에 대한 것으로만 집중되는 것은 어쩐지 불편하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고방식의 문제다. ‘재정’은 ‘복지’라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투입’이다. 그런데 좋은 정책을 설계하려면, 성과를 중심에 놓은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정부는 몇조원을 들여서 사업을 벌인다고 발표하면서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돈이 원래 목적한 성과를 얼마나 냈는지는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흔하다. 복지 재정을 확충해 복지국가를 만들더라도, 이런 투입 중심 사고방식이 성과 중심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 재정이 실제 성과인 ‘복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역할 인식의 문제다. 복지는 국가의 것만은 아니다. 기업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함께 생각해야만 논리가 완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중소기업 임직원들의 복지는 납품 대기업과의 거래관계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 원가를 절감하면, 대기업이 납품가격을 더 깎아 버리고 기술까지 가져가곤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지는,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국가의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임금이 늘어나더라도, 시장은 이 증가분을 언제든 도로 빼앗아 올 수 있다. 복지국가에서도 복지는 지체되거나 오히려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충분히 인식되고 실행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시민사회의 역할도 매우 크다. 책임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그 물건을 사는, 깨어 있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기업을 변화시킨다. 이들을 깨우는 게 바로 시민사회의 소임이다. 시민사회가 직접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명 중심 기업 역시 기업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 
  

셋째, 전략의 문제다. 사업에는 늘 공감이 먼저다. 돈은 나중이다. 어떤 위대한 사업도 재정계획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먼저 뛰어들고, 헌신하고,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 다음, 투자자와 후원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돈이 모였고, 성과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보편적 복지는 이제 막 국민들에게 소개됐다. 이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공감을 얻는 게 먼저다. 누군가 뛰어들어서 그 비전으로 국민을 먼저 감동시켜야 한다. 돈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는 것은, 스스로 확신이 부족하다는 인상만 키운다.

지금의 복지 논쟁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 것인가를 다시 정의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그 대접에 대해 사회 전체가 토론하고, 서로 공감과 합의를 만들어내는 장이 건국 이래 최초로 열린 셈이다. 그래서 더욱 정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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