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게 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다. 3백여 페이지 정도만 됐어도 그럭저럭 봐줄만했을 거고, 이런 소설도 있군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나는 하루키가 설명과 묘사의 역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의 태도를 지지한다. 설명이나 묘사가 많을 수록 이야기 진행은 더뎌지게 마련인데 단 소설전체의 '무게'를 느끼게 또는 지탱하게끔 할 때는 공들여 묘사한다는 태도. 잘 구사된 설명과 묘사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나 감성을 이끈다. 내게 [살인의 숲]의 지지부진한 설명과 지문, 묘사는 좀 끔찍했다.   

2008년 각종 미스터리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살인의 숲]은 2007년 정도에 완성된 것이라고 보면 될텐데 이게 몇 년 안되는데도 이미 상당히 뒤처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의 정도에 기반한 형상화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절정부분에서의 두 여자의 대담하고도 교활한 결투는 그럭저럭 봐줄만 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갖긴 어려웠다. 어린 시절 치명적인 외상을 갖고 성장한 주인공 애덤 라이언의 이야기는 뭔가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안개만 피워대다 만 듯하고(그런 의미에서 한국판 표지는 딱이다. 기대는 잔뜩하게 하잖아. 뭔가 있대니까...일단 들어와봐...) 뭐 인물들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일랜드에서도 벌어지는 보존 대 개발의 대립을 끌어들이는 것은 거의 변죽만 울릴 뿐이고, 여튼 이게 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다. 좀더 타이트하고 콤팩트한 소설이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나쁜 얘기를 하진 않고 넘어갔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원제는 Snakes in Suits)]가 아마 내가 처음 사이코패스에 대해 읽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