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로쟈님 서재에서 그리고 오늘 우석훈님 블로그에서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이런 소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관계로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두번이나 소개를 받다보니 미리보기를 통해 몇 페이지를 읽어봤다.
길지 않은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2003년 한국에 돌아온 저자 목수정은,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며 월드컵의 후끈한 열광을 마친 후의 한국에서 먼저 거리에서 가슴을 뛰게 하는 여자를 보고 차 한잔 하자고 말을 거는 남자들이 사라진 현상에 주목한다. 거기서부터 이 책이 목적하는 주제를 향한 항해가 시작된 모양이다. 자못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궁금해서 조만간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쫌만 생각해보면 거칠게나마, 거리에서 차 한잔 하자는 수작이 없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같은 지역 내에서도 구, 혹은 동별 구획에 따라 이른바 '레베루'가 딱 정해져 있는데 아무 거리에서나 아무(물론 마음에 드는 사람이어야 하지만)에게 다가가 수작하는 게 쉬울리가 없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흔히 수작의 주동자인 남자들의 '루저'감성이 어느 정도는 만연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루저'... 이 단어에 내포된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내내 '위너'였다가 언제부터가 '루저'가 된 것이다. 거리에서 '저기... 차 한잔..' 이럴 수 있는 사람은 남자들이었다. 남자이니까 그게 가능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선한 의미에서 여자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이게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는. 서열로 구획된 '레베루'가 있는 상황에서도 지레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이 줄줄이다. 점장이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앞날이 예상되는 스펙과 견적을 두고 감히 젊음의 도전 운운하기엔 이 사회에서의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들]에서처럼 버스를 타고 가다 '저 여기에서 내려요...'하면 여기? 아, 이 동네에서 사는구나, ... 어쩌구, 딱 견적 나온다. 아, 삭막하구랴. 나이트클럽이나 홍대같은 구역에서 만난다면 이 또한 일단 딱 견적 한 번 뽑아보고, 더 캐봐야하는지 어쩐지도 가늠하게 된다. 이런 것도 연애라면 연애로 인정해야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나온 로맨틱코미디 <시라노:연애조작단>가 그나마 추석연휴 개봉영화 중 선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 로맨틱코미디로 관객 200만을 바라본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굉장히 주목해야 할 사항인데, 그만큼 영화에서 로맨틱코미디나 멜로 장르가 성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이야기만으로는 TV 드라마의 막장을 따라잡기 힘들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난 올드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물론 감독 김현석의 역량과 제작사의 기획능력을 믿긴 했고 시나리오보다 연출이 잘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요새 젊은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볼까, 혹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하긴 했다. 200만을 바라본다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케팅 힘만으로 200만이 되지는 않으니까. 김현석 감독은 남자들의 연애매뉴얼과 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추석연휴에 만난 연인들이 갈 데 없이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기도 하고. 그럼에도... 별로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다. 아, 놔, ... 이런 영화 별로 안좋아한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