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그림과 책 만듦새 땜에 혹해서 읽게 된 두 책.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설득]과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오만과 편견]이 대학 시절 우연히 하게 된 스터디에서 채택된 텍스트였기에 대충 내용만 아는 정도(다른 학생이 이 소설을 맡았다.), 그 외 오스틴의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영화도 본 적이 없다. 별로 내 취향이 아니라서 관심이 없었다.   

헨리 제임스는 [아메리칸]과 [나사의 회전]으로 알 뿐이다. [나사의 회전]은 영화도 봤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이 보고 싶어서 보게 된 케이스.   

[데이지 밀러] 펭귄문고판에는 데이비드 로지의 해설이 있어서 참고가 많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사람이 좀 덜 됐던 지라, 연애, 결혼 뭐 이따우 것들에 눈도 돌리지 않았던 얼척없는 시절이 있었다. 인간의 달달한 감성을 믿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냐하면 ...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조금 변한 정도? 사랑이나 로맨스, 결혼이 무작정 계약만은 아닌 것 같고, 그 계약을 통해 인간의 아주 심오한 감정이 작동하는 어렵고도 힘겨운 삶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도? 잘 몰러. 나이들수록 참 어려운 것 같다. 

헨리 제임스는 데이지 밀러가 어떤 종류의 여성의 전형처럼 받아들여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읽다보면 싫어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규범이나 풍속, 암묵적 계율 등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고 즐거운 일탈을 하고 있는 듯한 여자 앞에서 억압과 금기, 망설임으로 어정쩡하게 있는 남자의 구도란 언제봐도 흥미롭고 안타까움이 있다. 그 남자의 회한이 가슴을 울리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도? 

[설득]은 과연 오스틴다운 재미를 선사한다. 이제 시대, 신분과 계급, 풍속,남녀의 차이 등의 맥락에서 오스틴의 소설을 읽는다는 건 싱거운 소리를 하게 되는 것 같고... . 어긋나고 오해가 쌓이며 이게 닿을까 말까 애태우던 독자들에게 끝부분의 웬트워스의 편지는 마치 자신이 앤이 된 듯 그 고백의 황홀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한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이런 설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헛웃음을 쳤다. 이와이순지 감독의 <러브레터>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독서카드 뒤에 그려진 그림. 그 때의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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