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노 나쓰오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권해서 예전에 [아웃]을 본 적이 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옹호했던 그 사람 만큼은 아니지만 치밀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필력이 좋다라는 생각은 했었다. 그 때도 이 작가 생각보다 지독하다고 느꼈다. 여자 작가인데도 어둠을 밀어부치는 정신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최근에 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여기저기 보이던 차에 함께 소개되곤 하는 그의 소설들 중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이 [다크]라는 책부터 손에 들게 됐다.  

일요일 내내 읽다가 잠들다 했는데, 어찌나 어둡고 참담하던지 독서가 우울했다. [아웃]도 그렇고 이 책도 주인공이 여자인데 불행을 타고난 인물로 조형되어 있다. 어떤 평범함도 허락되지 않고 오로지 불행만이 인생에 놓여있는 그런 여자들을 다루는 듯하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들을 보려면 어느 정도 세상의 어둠, 세상의 밑바닥, 파탄난 인물들의 정신, 심리를 마주할 각오를 해야한다.

[다크]는 썩 잘 쓰여진 작품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는 데 애를 먹는 듯한데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과거가 소개되며 할애된다. 인물들의 절망스런 과거가 쌓여 작품의 볼륨을 만들고 있는 형국인데 참담한 현실들의 다른 판본이 계속 된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이다지도 어두울 수가 없다.  

'여성 탐정 하드보일드'라는 건 그야말로 관심독자를 낚는 광고문구가 아닌가 싶다. 탐정은 주인공이 한때 했던 일이었다고 소개될 뿐, 이 소설은 탐정이 활약하는 추리물이 아니다. 주인공 무라노 미로라는 여자의 조형도 어수선하다. 양아버지를 죽게끔 방관하는 그 분노가 기필코 이해되는 것은 아니며, 도망의 와중에 서진호라는 남자에게 그토록 빠져드는 심리도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아웃]에서도 주인공 마사코가 지극히 의심스러워 하면서도 자꾸만 끌리는 남자를 놓고 어찌해야 하는지 곤혹스러워하는 스릴이 있기는 하다. '지켜내야 할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강해진 것인지 약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그 마음. 기리노 나쓰오의 여자 주인공이 겪는 불행의 도미노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인 듯도 하다.  

또 한 명의 지독한 여자, 히사에라는 인물도 처음 소개될 때의 인물과 이후 인물간의 이질적 모습이 있어 동일 인물로 받아들이는데 한동안 애를 써야 한다. 도모베라는 인물의 혼돈스러움은 말할 나위 없다. 물론 도모베라는 인물이 '혼돈'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인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미로를 쫓는 또 한 명의 인물 '데이'가 갖게 되는 '급작스런' 이유 추가도 끝내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 구성 상 미로를 쫓아야 하는 절실한 동기 하나를 추가하는 역할 정도로 보여졌다. 

놀랍게도 이 소설에는 1980년 광주가 나온다. 서진호가 광주로 들어가 겪게 되는 과거 얘기가 있기 때문인데 서진호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사이다. 서진호 뿐 아니라 나오는 인물 모두의 불행의 총합은 그로테스크한, 그래서인지 총체적으로 어둠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다크, 전방위가 가늠되지 않아서 오히려 진공같은 비현실감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아이(하루오)가 '미로'라고 칭얼거리듯 부르는 장면은 머리가 쭈뼛설 정도로 잔인했다. 이 작가, 진짜 지독하다.  

펼쳐지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상황이나 심리묘사도 많은 편이라서 필요이상으로 길어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 묘사들이 소설의 '무게'를 이루느냐가 중요할 듯한데 어둠을 계속해서 덧칠하여 막막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걸치적거리는 측면도 분명 있다. [아웃](1998)은 훨씬 더 간결했던 것 같은데 미로 시리즈의 최신작(2002)이라는 [다크]는 왜 더 장황해졌을까?,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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