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제 나도 서서히 이념, 거대담론, 정치 같은 주제들에 물리는 모양인가. 관심도 예전같지 않고, 이제는 뭘 봐도 시큰둥할 지경이다.  

최근에 영화 두 편을 보면서 내게 뭔가 변화가 생긴 건가, 아니면 두 영화가 그저 그런 건가, 헷갈리며 판단하기 어려웠다. 관련 기사나 리뷰를 보니 다들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린 평들만 보이는데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전쟁의 작동방식' '파시즘적 주체형성' 같은 현란한 평이 난무하는 미하엘 하네케의 <하얀리본>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이 영화에 대해 한마디씩 한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의 리딩말들은 대충 이렇다. '억압 속에 가려진 위선, 폭력' '강요된 순수, 위선' '순수와 도덕이라는 광기'.... 미안하지만, 이 정도의 감상을 얻기 위해 2시간 20여 분 되는 시간 동안, 흑백화면에 자막마저 종종 화면에 먹혀 보이지 않는 데다, 이야기 다 해주는 내레이션을 끊임없이 들어야하고, 인물들이 대사로 다 설명한다든지 웬만하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음직한 인물들, 사건들을 꼭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것도 엄숙하게 말이다.  

강우석 감독의 <이끼>. 웹툰으로 보았을 때의 강렬함이 영화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영화는 배우 보는 맛이 있었다. 아직도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장이 자신을 잡아넣으려면 '대한민국 전체를 청소해야할끼다'라는 말로 이해되는 맥락을 말하고자 한 건지, 아니면 이장 천용덕이 류목형에게 '너는 신이되려 했나, 나는 인간이 되려 했다'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천착한 건지(이건 도저히 아닌 것 같고), 원작과 결정적으로 다른 결말은 ... 전혀 세공을 들이지 않은 채 내놓은 생식같았고, 관객들이 이 결말에 정말로 서프라이즈하는지, 한 방 먹은 듯한 묵직한 엔딩으로 느끼는지 궁금하다.  

이런 것들 보다는 요즘은 다음 주에 개봉하는 <인셉션>같은 류의 이야기에 더 관심 간다. SF가 부쩍 당기는 요즘인데, 아무래도 낯선 세계,용어, 작가가 상상하고 있는 이야기 속 시스템을 머리속에 그리는 데는 꽤나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인셉션> 

필립 K. 딕의 [유빅]은 이제 겨우 기나긴 독서의 끝을 보려고 한다. 사실 [유빅]은 오랫동안 읽었다 중단했다 다시 읽기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읽는 중이라 읽었다고 하기엔 무색한 면이 있겠다.    

 

 

 

 

 

 

 

9월 개봉 예정인 <The Adjustment Bureau> 도 필립 K. 딕의 단편 [The Adjustment Team]이 원작인데, 영화는 '로맨스 스릴러'로 표방하는 모양이다. 원작과는 다른 영화가 될 듯 싶다. 웹진 '판타스틱'에서 이 단편을 볼 수 있다. (http://cafe.naver.com/nfantastiqu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90)  



<어드저스트먼트 뷰로> 

<인셉션>은 꿈을 통해 어떤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의도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생각을 '조정'하려는 세력, 시도로 시작한다면, <어드저스트먼트 뷰로>는 어떤 특정 시간과 공간을 '탈에너지de-energized'시킨 후 의도대로 '조정'을 거친 후 다시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미지의 조직과 맞닥뜨린 주인공의 위기를 다룬 얘기다. 필립 K. 딕의 단편은 단편다운 앙증맞은 결말이 재미있었는데, 영화는 다른 톤의 이야기일 듯 싶다.    

또 얼마전에 역시 필립 K. 딕의 자전적 내용이 담긴 소설을 영화화한(필립의 딸도 제작에 참여했다.) <스캐너 다클리 Scanner Darkly>를 봤는데 내용 보다는 '로토스코프' 기법이라고 하는 실사로 찍은 후 애니매이션화하는 영상기법이 신기했다. 이 영화에 대해 뭐라 한 마디씩 쓴 네티즌들 중에는 왜 이런 '중노동'을 해가며 '그런 짓을 했을까' 한심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시각적 쾌감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도 실사와는 다른 묘하게 보는 맛이 있었다. 뭐랄까, 한꺼풀 덮인 뒤에 있는 실제 배우 또는 사물들을 상상하는 맛 때문일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스크램블 슈트'라는 위장복의 개념과 애써 연결지으려면 못 지을 것도 없겠다.   

 

<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은 이 이야기가 "자신이 한 일에 비해 지나친 처벌을 받은 이들에 대한 얘기'라고 한 모양이다. 그렇다.

3D도 그렇고 이런 '로토스코프' 기법 같은 시각적 쾌락에 대한 무한도전은 계속 된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가 <인셉션> 관련해서 레퍼런스 영화로 언급한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Inland Empire>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도 볼 생각이다. <인랜드 엠파이어>는 무려 179분이다. 이런 제길, 왜 이다지도 긴 영화를 만든단 말이냐, 엉?  

 

<인랜드 엠파이어> 

 

 <스파이더>  

120분이 넘는 영화는 일단 의심한다. 왜 120분 안에 만들지 못하는가. 이야기 규모라든지 보여줄 게 많아서라든지 같은 따위는 '비겁한 변명 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도 뭐, 120분 넘는 좋은 영화도 많지... 지난 달에 극장에서 본 <대부>는 175분 여 되는데도 좋았다. DVD로도 열 번 넘게 봤던 거지만 극장관람형태는 또다른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정성일이 극장개봉한 <대부>를 보고선 '이게 바로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마지막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십분 동감한다. 그런, 그렇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기는 다 지나갔고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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