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겼다.
박범신의 [은교]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몰스킨' 노트가 뭔지 약간 궁금했지만, 바쁘니까 책만 후다닥 읽은 후 닫아두었다. 우연이었다. 회의 시작 전, 사람보다 먼저 한 자리잡고 있는 수첩과 노트에 문득 시선이 갔다. 젠장, M-으로 시작하는 어디선가 낯익은 이름이지 않은가. 헉, 그렇게 유명한 노트일 뿐더러 나도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었더란 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 연말연시에 선물 받곤 했던 기억이 새삼 났다. 젠장. 그렇게 가까이, 쬐끔 흔하게 봤던 것이었더란 말이냐. 회의 시작 전에 이 무식한 나를 위해 그 사람은 앞장서서 이 브랜드에 대해 얘기해주더라. 알고 봤더니 그 사람 이 브랜드 빠 수준이더만. 단, 그 사람, 만년필은 쓰지 않는다. BIG 펜으로 수첩에 끄적거리면 제법 간지나는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다.
난 이런 노트, 수첩,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 선물로 받더라도 다른 이에게 주거나 그냥 쌓아둔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징크스라면 징크스인데, 날짜 박혀진, 스케쥴러가 있는 수첩이나 다이어리는 절대 쓰지 않는다. 그 공란들이 난 불길하다.
나는 대신 스프링 달린 기자수첩을 쓴다. 핸드폰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불편함은 없다. 이 막 대하는 수첩이 1년이면 대 여섯개 정도 된다. 이것도 ... 짐이다. 가끔... 대외적으로 계면쩍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상하게... 미팅 때 펼쳐놓는 노트나 수첩, 다이어리도 그 사람을 읽게 하는 것이라 내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오래된 습관이고 마음이 편한 쪽을 따르는 게 낫다.
브랜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은교]의 마지막에 은교는 시인 이적요가 남긴 노트를 불에 태워버린다. 그리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한다.
"할아부지요. 몰스킨에다...... 만년필로 썼네요. 자기만 멋 내구......"
"......노트요. 내가 갖고 싶었던 노트......"
...... 시인 이적요는 검은 인조가죽 표지로 된 몰스킨 노트에,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서 그것을 남겼다. 그러나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은, 노트를 묶도록 된 검정 끈뿐이었다. "좋은 건데...... 노트만은 아까워요......" 그녀가 말했다.
[은교]의 마지막 부분이다. 은교에게 이적요는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처럼 '아티스트' 간지를 가진 어떤 환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환상은 이적요에게 품고, 서지우와는 실제적 쾌락을 나눈다?
브랜드. 명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