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도 정신없고, 사회도 어수선하고.  

요즘들어 부쩍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순리'에 대해서도. 고리타분한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도 이러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몸의 변화이기 때문에 왠만해선 몸이 변함에 따라 생각도 변하는 걸 막기는 어렵겠다...이런 생각이 든다. 단지 몸의 변화만을 얘기하려던 건 아닌데,... 산다는 건 몇 년 주기로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며 끝에 이르는 거 아닐까 싶다. 연로하신 내 부모님, 거리에서 만나는 노년의 삶들을 보면서 늙는다는 거, 시간을 더 산다는 거에 대한 경외감... 한편으로 피로감과 슬픔을 느끼곤 한다. 중년의 사춘긴가? 

"세상에서 가장 끔직한 건 순진하게 살다가 뒤통수 맞는 인생이다."  

오현종의 소설 [거룩한 속물들]의 카피다. 순진하게 산다는 게 어떻게 산다는 건지, 속물처럼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했을 때를 말함이다.  

이 소설을 몇 주 전 일요일 아침에 읽었다. 2주 전인가? 책이 참 슬프더라. '속물들'의 모습이란 게 예전엔 어떤 층위의 사람들이나 참 보기 드물게 노골적인 사람들에서나 볼 수 있었다. 속마음이야 어땠을 지 몰라도 대놓고 물적 욕망에 솔직한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진 않았다. 소설에는 주인공이 소개팅했던 남자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대목이 있다. 집이 어디냐고 묻고, 여자가 대답했을 때 남자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도중에 내리고 만다. 그걸로 그 남자와는 끝이다.  여자가 사는 동네, 주거 형태 등이 이 남자의 리스트에서 차지하는 순위와 기대치에 맞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이 여자를 만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역, 동네 구획적으로다가 가치, 가격이 매겨져 있으므로 참 편리하긴 하겠다. 목표하는 곳만 공략하면 시간, 노력, 자금을 줄이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대화 속에서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견적을 딱 뽑아내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걸 하등 이상하거나 계면쩍어하거나 민망해하지 않고 당연하게 내뱉는 모습을 보면서 아, 왠만한 사회학자 보다 사회를 꿰뚫고 있구나 ... 그런 생각을 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속물적 세계에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고는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하면서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대학졸업자, 20대 여자,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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