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영화 관련 책을 읽었다. 역시 누군가 잘 솎아 놓은 서사와 평을 읽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The Rhetoric of Korean Films] (박유희/다빈치/2008)

최근의 한국영화 수사학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금했다.

<타짜>를 무협서사로 분석하면서 각 고수들의 위계와 특징들을 통해 영화의 전략과 문제의식을 짚는 것이라든지, 봉준호, 허진호 영화에 대한 작가주의적 분석, <오래된 정원>, <화려한 휴가>, <별빛 속으로>, <국경의 남쪽> 같은 영화를 대상으로 대중성과 역사성을 다루는 한국영화 최근 경향까지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황석영의 원작이나 영화 모두 보지 않아서 덧붙일 수 있는 여지가 많지는 않으나 그의 영화를 좀 본 나로서는 저자의 80년대를 '잊고자 하는' 감독이 "이분법적 구도에 여전히 천착하고 있는 영락없는 386"이라든지 "그가 '쿨함'에 집착하는 것도 1980년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신경증적 증후의 한 형태인지 모른다"라고 결론 맺는 것에 동의할 수는 있었다.

한 때 중국5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문혁'에 대한 그들의 비판적 태도가 불편했었던 적이 있었다. 90년대였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달리 좀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 그렇게 잔혹하고 자괴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까댔던 그들은 지금 어떤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별빛 속으로>(황규덕 감독)은 대체 어떤 영화인지 모르겠다. 전혀 소리 소문없었던 것 같은데, 스폰지 제작.배급이었으니 마케팅에서 밀렸을 것이다.

저자는 이 영화가 <효자동이발사>(2004) 이후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시도에 성공하며 드문 성취를 이룬다"고 평했다. "'사실적 재현'을 내세우며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어떤 영화보다도 '역사적인' 이유이며, 대형 자본과 진부한 관습이 판치는 한국영화계에 별빛과 같은 희망을 던진 이유"라고 찬한다. 이쯤되면 꼭 봐야할 듯 하다.

<천년학>(임권택)과 <국경의 남쪽>(안판석), <황진이>(장윤현) 같은 영화들은 또 역시 보지 못한터라(정확히 말하면 굳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달리 할말은 없지만,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흥행과 관객성은 다른 차원에서 다뤄야겠지만 영화서사와 수사가 관객들이 서사에 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이 책이 끝으로 갈수록 이 부분에 대한 정치한 분석이 엷어진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다.

이와 관련해 시나리오만으로 스토리텔링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책으로 [스토리텔링의 비밀](마이클티어노)는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다시 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특이할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쓰면서 당시 상연되는 왠만한 드라마공연을 다 보거나 읽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귀납적 방법으로 [시학]을 추출한 것이라는 점이 내게는 무엇보다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개인적인 얘기다.)

 

 

 

 

 

 

거기다 [소포클레스비극전집]과 [아이스퀼로스비극전집]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으니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어린 시절 이런 것들 읽으면서 한 없이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뭔 말이여...,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력과 감수성이 대체로 좀 달렸던 건 아닌가 싶다. 번역의 문제만 핑계로 하지 않는다면 ... .  

 

 

 

 

 

 

 

시간과 돈만 좀 있으면 언제든지 파묻힐 의향이 있는데 ... .

이상은의 노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 "처럼, 공부만할 수 있는 때 그때 딴 데 보지 말고 (책을) 즐겨야했던 것을 ... .

그나저나 영화 <별빛속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신동일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