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노동자들이 베토벤을 듣고 즐기게 하자는 것이다.

 - P. 312 -

 
   

 

 

 

 

 

 

 

[베토벤평전 -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 (박홍규, 가산출판사.2003)

베토벤을 듣는 노동자.

새삼 내가 베토벤 평전을 찾아보게 된 계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를 읽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호시노라는 청년이 우연히 들르게 된 클래식이 흐른 찻집에서 듣게 된 음악이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피아노삼중주, op.97)이다. 호시노는 장거리 트럭운전사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 좀 놀았지만 그래도 졸업은 했고,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전전하다 자위대입대, 그리고 사회에 나와 대형 트럭운전사가 되었다고 하루키는 그의 이력을 소설 속에 밝히고 있다.

그런 호시노이니 클래식을 좋아해본 적도 좋아해보려는 의식을 가져본 적도 없는 '노동자'인데 우연히 듣게 된 베토벤에게 제대로 꽂혔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도서관'에 가게 된 호시노는 [베토벤과 그 시대]라는 전기를 골라 읽게 된다.

이 책은 분명 하루키가 본 책이었을 것인데 물론 제목이 실제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다. 하루키는 호시노의 전기 감상을 빠트리지 않는다.

   
 

(생략)

베토벤은 자존심이 강하며, 자기 재능에 대해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귀족계급에게 일절 아부하지 않았다.(중간생략) 그의 음악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비약적으로 폭이 넓어지고, 그와 동시에 조밀하게 내부로 집중되어 갔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었던 건 베토벤이나 되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비범한 작업은 그의 현실의 인생을 계속 파괴해갔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으며, 그러한 격무를 견뎌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위인이란 것도 무척 힘든 것이군" 하고 호시노 청년은 도중에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깊이 감탄했다. "

                  - [해변의 카프카], 제40장 도서관 금지구역에서 나눈 밀담, p.282~283 -

"그래요, 꽤 힘든 인생이었어요" 하고 청년이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대개는 본인 책임이라구요. 베토벤이라는 사람은 원래 누구와 협조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머릿속에는 온통 자기 일과 자기 음악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사람이 실제로 가까이 있으면 견디기 힘들 겁니다. 나 같아도, '야, 루드비히, 제발 나좀 봐주라' 하고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요. 조카가 정신 이상이 된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음악은 훌륭합니다.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거든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 [해변의 카프카], 제40장 도서관 금지구역에서 나눈 밀담, p.285~286 -

 
   

 박홍규 교수가 베토벤 평전을 쓰면서 희망했던 것이 호시노 청년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 아니었을까?

박홍규 교수는 지금까지(2003) 나와 있는 베토벤 전기나 평전 등을 소개하면서 각기 지닌 특성과 한계, 국내 출판 상황을 점검한다. 그런데 하루키가 들고 있는 [베토벤과 그 시대]라는 책과 일치하는 제목은 알 수 없다. 대신 가장 주목할만한 책으로 소개한 메이나드 솔로몬의 1977년 전기는 지난 2006년 한길아트에서 번역 출판되어 있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메이나드 솔로몬 Maynard Solomon, 한길아트, 2006)

솔로몬은 미국 출신으로 음악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이라는 프리즘으로 베토벤의 생애를 들여다본 전기라고 한다. 도서관에도 있었는데 기회가 되면 나중에 보고자 한다.

책 말미에 음악감상은 음악만을 듣는 것이지, 다른 일을 하며, 또는 다른 생각을 하며, 음악을 장식으로 듣는 것이 아니다 고 한다. 오직 음악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겠지. 그럴 필요가 있겠다 싶다.

저자는 베토벤이 음악사에서는 처음으로 작품을 창조적 노동의 산물로 생각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또한 개인이 홀로 서야 하기에 너무나 외로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2세기가(베토벤은 1770에 태어나 1820년에 죽었다) 지난 지금 이땅에서도 똑같이 시대의 아픔을 살고 있기에 그에게 베토벤은 최초의 현대인이고 동시대인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그가 보는 베토벤의 음악은 어둡고 격렬하다. 시대와 상황에 타협이나 예찬으로 일관한 삶이 아니라 갈등하고 반항했던 '부랑아'로서 베토벤이였기에 그의 음악이 감동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베토벤의 음악은 낭만파 음악에 속한다. 현실과 무관하게 꿈꾸는 낭만이 아니라, 끝없는 갈등을 낳는 현실을 박차고 나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초월을 꿈꾸는 것, 책의 부제가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이다.

베토벤보다 14세 연상이었던 모차르트(1756~1791)와의 차이가 저자에게는 주요한 사고의 맥이었던 듯 하다.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에 속했다. 혁명 전야의 어지러운 시절을 산 모차르트는 도덕적으로 당연히 자유를 추구했으나, 혁명 후의 베토벤은 혁명에 충실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엄격해야 했다. 그러나 곧 혁명의 배반을 목격한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같은 자유가 아니라 갈등을 경험했다. 그의 도덕도 갈등으로 번민했다. 그의 음악도 갈등으로 시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는 반항했다. 그리고 그 초월을 위해 끝없이 고뇌했다.(P30)

작곡가의 삶은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음악에 대한 분석과 설명은 쉽지 않은 듯 하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더욱 어려웠을 듯도 하다. 그에 대한 언급도 빠트리지 않고 있긴 하다.

마지막에 저자 나름대로 대표작 30곡을 정리해 놓았는데, 참고할만 하겠다.

첫째, 교향곡. 교향곡은 모두 9곡이나, 처음 2곡은 모차르트의 영향이 강해 베토벤답지 않다고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를 제외하면,

<제3번 영웅>,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 <제7번>, <제8번>, <제9번 합창>

둘째, 피아노 소나타. 중요 작품은 40세 이전에 쓰여졌다.

<제8번 비창>, <제12번 장송>, <제14번 월광>, <제28번 전원>, <제29번 해머클라비어>, <제53번 발트슈타인>, <제78번 테레제>

셋째, 현악4중주곡

<제7~9번 라주모프스키>, <제10번 하프>, <제15번>

넷째, 현악4중주 외의 실내악, 바이올린 소나타로는 <제5번 봄>, <제9번 크로이처>, 첼로 소타나로는 <제3번>

다섯째, 콘체르토(협주곡). 피아노협주곡으로는 <제5번 황제>, 피아노 3중주로는 <제7번 대공>, 바이올린 콘체르토는 유일한 <작품 61번>

여섯째, 오페라는 <피델리오> <콜리오란 서곡>과 <에그몬트 서곡>

일곱째, 종교음악. <장엄미사곡>

여덟째, 가곡 <멀리있는 연인>

대표곡으로 정리한 것일 뿐 저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베토벤이 수용되는 국내외,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유익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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