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발발한지 2년 뒤 1941년 6월 히틀러의 독일군은 소련을 침공했다. 파죽지세로 진입해 들어가던 독일군은 그해 9월 레닌그라드 포위작전을 실행한다.

이미 대공포시기에 갖은 이유로 엮어 처형하고 총살하고 고문하고 수용소로 보내는 등 군 장성과 지휘관들을 솎아낸 스탈린에게 히틀러의 독일군은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적이었다. 스탈린은 전쟁 개시 초반에 모든 걸 포기했었다. 그때 스탈린을 제거할 수도 있었지만 각료들과 군은 그를 다시 불러내 앞에 세웠다.

이후 레닌그라드는 872일간 인구 250만명이 57만 5천명으로 줄어든 채 견뎌냈고 마침내 연합군과의 공조로 2차대전의 승전국의 도시가 됐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가 1917년 10월 혁명으로 노동자의 나라가 되자 이 도시는 페트로그라드가 되었다가 레닌 사후 그를 기리는 도시 레닌그라드가 되었다. 레닌의 꿈이 영영 무너진 후 소비에트에서 다시 러시아가 되자 이 도시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다.

 

미하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바로 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줄리언 반스가 이미 썼듯이 그는 윤년을 특히 두려워했었던 모양이다

촉망받던 음악가였던 그는 스탈린이 장악한 나라에서 언제 죽음을 맞이할 지 모를 요주의 인사가 된다.

체포될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간단한 짐을 담은 가방을 꾸려놓고 베란다에서 잠을 청했다지 않나.

간당간당한 삶을 이어가던 그에게 2차대전 발발은 구원이었을까? 자신이 살던 고향 레닌그라드가 적에게 포위당한 채 하루하루 옭아들어오는 공포 속에서 교향곡 7번, 일명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탈출행렬에 나서 레닌그라드를 떠난 후 곡을 최종 완성하고 전쟁의 폐허속에 잠긴 조국과 고향을 위해 교향곡은 연주된다. 미국을 위시한 유럽에서도 그 곡은 전쟁의 비참함에서 인간이 되고자 한 인간들의 희망처럼 퍼져나갔고 결국 이 곡은 연합군의 연대를 강조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어찌됐든 조국을 구하는 영웅의 역할을 떠맡았다.

 

그러나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서도 스탈린의 저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음악은 금지곡이 되었고 교수직에서도 쫓겨났다.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의 전쟁에서 승자는 쇼스타코비치였다. 스탈린은 1953년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레닌그라드가 포위당한 후 벌어진 참사는 인간의 조건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M.T. 앤더슨은 작가이며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현대사와 레닌그라드 포위상황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다만 이를 다루는 것과 쇼스타코비치를 다루는 데 있어 균형이 좀 어긋나 있다. 쇼스타코비치를 알기 위해서는 이책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줄리언반스의 소설에 나왔던가, .... 쇼스타코비치가 말년에 겪었다는 틱장애 같은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언급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들도 함께 들었다. 대충의 느낌, 분위기라도 알며 읽기 위해서. 

그렇잖아도 음알못인데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대해서 다룬 대목들이 내게는 그다지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어서 다른 책을 통해서 보충해야 한다.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또 한가지, 번역도 대체로 만족스럽긴 한데 걸리는 부분이 있다.

뭔 넘의 '일기작가'들이 그렇게 많나. 아마도 일기 자료들을 인용하며 쓴 말인 것 같은데 굳이 '작가'를 붙인 건 정말 일기작가라는 특정 작가들이 있는 것인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악보가 들어있는 마이크로칩을 조심스럽게 미국으로 옮기는 '배달원들'의 존재는?
자꾸 저 '배달원'이란 단어를 읽을 때마다 마이크로칩이 든 택배상자를 든 택배 아저씨를 떠올리게 되는 이 망극한 상황은 어쩌란 말인지. 그런 아주 사소한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흥미롭게 읽었다.

포위된 채 872일간 살아간 레닌그라드의 사람들 이야기가 워낙 강해서 다른 이야기들을 압도한다.

쇼스타코비치가 참여한 레닌그라드 교향곡 초연은 1942년 3월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 연주로 쿠이비세프에서 열렸고, 이후 6월과 7월 영국과 미국에서 연주되어 라디오방송을 통해 세계시민들은 음악을 들었다. 정작 주인공인 도시 레닌그라드에서는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가족 중에 굶어죽거나 병들어죽지 않은 이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듯 레닌그라드 라디오방송국 오케스트라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굶주리고 병약해져서 그들이 연주를 위해 다시 모였을 때 트럼펫 연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폐에 힘이 들어가지 않네요."

 

 

 

1942년8월 9일 레닌그라드 라디오 방송국 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교향곡 연주.

 

거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죽어도 시체를 옮겨 묻어줄 힘이 남아 있지 않던 사람들, 식인이 횡행하던 .. 말을 입에 담는 게 참담한 겨울을 보내고 음악을 듣기 위해 기꺼이 표를 구입했다.

M.T. 앤더슨의 [죽은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읽는 일은 바로 이 평범해보이는 사진에 담긴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 인간의 일을 읽는 일이다.

 

세상은, 현재는, 역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죽음 위에 세워져있다.

우리의 지금. 남북한이 다시 만나려고 하는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었나.

다시는 인간의 조건을 시험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처하는 그런 날을 만들지 않기를 .. 

러시아를 가본적이 없고 레닌그라드, 즉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가본적이 없는데, 레닌그라드를 알고난다면 그곳 거리 어느 한곳 회한없이 볼 수 있을까.

작년이 러시아10월 혁명 100주년, 올해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어쩐지 소설은 잘 안읽히고 역사서나 인물평전 들이 더 읽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올해 우리는 한국전쟁 종전의 해를 맞게 될 것인가. 1950~2018.

 

 

 

 

 

 

 

 

 

 

 

 

 

 

 

솔로몬 볼코프가 쓴 [증언 : 쇼스타코비치 회상록]에 대해 앤더슨은 신뢰하지 못한다고 밝힌다.

볼코프가 진짜로 쇼스타코비치의 회상을 받아적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고 따라서 교차검증해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 내용 정도만을 인용했다고 한다.

그러니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

나의 능력은 정말 놀라워서, 작년에 분명 읽은 이책이 어쩜 이렇게 완전 처음 읽게 될 책같은지.

기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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